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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눈으로 슬픔을 구원하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7년 01월 06일 금요일 제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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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지를 준비하며 그 질문은 뺄까 했다. ‘올해 나온 책의 저자 가운데 꼭 한번 같이 책을 냈으면 하는 필자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매년 뻔한 답변이 왔다. 몇 년째 리스트의 1순위는 유시민 작가였다. 올해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1순위가 바뀌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출판인들이 꼽은 ‘올해의 필자’이자 편집자들이 ‘내 필자’로 탐내는 작가로 은유씨가 뽑혔다. <올드걸의 시집>(청어람미디어, 2012, 절판),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 2015)에 이어 올해 <쓰기의 말들>(유유)과 <폭력과 존엄 사이>(오월의봄),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서해문집)를 연달아 썼다. 출판인들로부터 “삶과 괴리되지 않는 부드럽고 단단한 언어로 자신과 타인, 세상을 엮어 이야기하는 귀한 작가” “단어와 문장의 밀도를 보면 내공이 엄청나다. 책을 읽다 보면 주춤주춤 생각하게 된다” 같은 평을 얻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유씨의 메일함에는 출판사가 보낸 기획안이 이틀이 멀다 하고 쌓인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뭐 잘못된 거 아니에요?”라는 은유씨의 웃음기 섞인 질문은 기자가 묻고 싶은 것이었다. 한편으론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은유씨의 글을 한번이라도 읽은 독자라면 알고 있으리라. 그의 글을 읽는 건 ‘글의 힘을 믿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말이다.

ⓒ시사IN 조남진
소수자의 눈으로 슬픔을 구원하다
은유씨가 자유기고가로 살게 된 건 삶이 선물한 우연이었다. 돌이켜보면 “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증권사 지점에서 일하던 중 분회 방문을 온 노조위원장에게 발탁됐다. 이유가 뭔지는 지금도 모른다. 노조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 그러자 했다. 지점 생활도 재미없고 이 일을 평생 할 수는 없겠구나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마치 ‘독립운동’ 하는 기분으로 지내던 때 만난 노동조합 덕분에 대학의 필요성을 따로 느끼지 못했다. “거기서 만난 선배들이 ‘대학 안 가도 돼’ ‘가도 이런 거 해’라고 말하더라(웃음). 공부와 성장이 동시에 가능한 환경이었고, 거기서 남편을 만나면서 결혼도 이른 나이에 하게 됐다.”

출산과 육아로 20대 후반과 30대 중반을 통과했다. 경력 단절이 당장 ‘나의 일’이 되었다. 여러 은행에 파트타이머로 지원했지만 연락 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하다못해 카페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려 해도 나이가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노조 선배를 만나 차를 마시고 나오던 중 길거리에 붙은 구인공고 전단지를 메모했다. “왜 이거 하려고? 그러지 말고 글 써”라는 선배 말에 웃었다. “선배, 나 고졸인 거 알지?” 선배는 무작정 글 세 편만 자신에게 보내라고 당부했다. 은유씨의 글을 처음 ‘알아준’ 선배였다. 그 덕분에 사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보가 주로 미담 취재잖나. 처음에는 재미있게 했는데 결국 기업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글은 쓸 수가 없더라.”

‘고졸인’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인문학연구소 수유너머였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다 모였다는 그곳에서도 ‘아줌마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다 글쓰기 수업도 하게 되고, 자유기고가로 이곳저곳에 글도 기고하게 됐다. 은유씨는 이 모든 과정을 두고 “흘러왔다”라고 말했다. 자격증과 졸업장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증’에 따라 강의료가 달랐다. 학력 문제는 계속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늘 전공을 물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소수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이는 사회학이나 여성학·철학을 공부할 때도 자양분이 되었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평생 해야 할 게 공부였다. 은유씨는 대학 대신 책에 의지했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7명의 목소리를 담은 <폭력과 존엄 사이> 작업은 힘든 일이었다. 은유씨에게도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라는 존재는 낯설었다. 피해자들이 경험한 시간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었다. 감당할 수 없겠다 싶은 순간도 자주 찾아왔다. 초벌 인터뷰와 법원 판결문, 피해자들의 진술서 사이를 오가며 1년을 보냈다. 현대사 공부를 완전히 새로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해놓고 나니 ‘잘했다’ 싶다. 한 피해자는 이 책에 대해 “사면증 같다”라고 말해줬다. “45년 만에 동창회에 나갈 수 있게 됐다”라는 말도, “무죄판결 받은 것보다 이 책이 더 좋다”라는 말도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르포나 인터뷰집, 서평집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은유씨가 보기에 사실 한국처럼 르포하기 좋은 나라가 없다. 약자의 목소리가 전달될 기회가 너무 제한적이고, 사건 사고도 참 많다. 하지만 그런 책은 공력이 많이 드는 데 비해 팔리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돈이 안 된다. 많은 편집자들이 르포에 대한 의지와 욕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책은 안 나오는 까닭이다. 독자들의 외면도 한몫한다. <폭력과 존엄 사이>도 고통스러울까 봐 못 읽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 서명할 때 쓰는 문구가 있다.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다.’ 슬프기만 한 삶은 없다. 감옥이든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에는 삶의 비밀이 다 있다. 고통이 가진 결을 미화하지 않되 읽히도록 잘 살리는 게 나의 숙제다. 당위로만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유기고가로 시작해 최고의 르포 작가로


얼마 전 한 출판사에서 받은 기획안은 부러 뽑아 오래오래 읽었다. 청년 노동 르포 제안서였다. 기획안을 읽으면서 우는 드문 경험을 했다. 여러 사례를 보여주는 것보다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보자는 취지였다. “거대한 구조 속에서 구체적인 고통 속에 있는 피해자들의 서사는 알려지지 않으면 계속 반복된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존재의 서사를 구성하는 일은 늘 내 관심사이고, 일의 순서를 따지자면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어서 수락했다.”

내년에는 한부모 가정 가장들과 글쓰기 수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한 차례 특강처럼 수업을 해봤는데 육아 대체자가 없어서 날을 잡기가 수월치 않았다.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구체적인 삶 앞에서 종종 무너진다. 이처럼 책상 위의 말이 현실에서 힘을 잃는다. 그 간극을 좁히는 게 은유씨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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