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2분, 100m 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번번이 막혔던 길이다. 세월호 유가족, 촛불 시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은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혔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 관저 앞 100m 이내의 집회·시위를 금지했다. 경찰은 경호상 이유를 내세워 확대 해석했다. 청와대 200m 앞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만 집회를 허용했다.

그 길이 합법적으로 열렸다. 경찰이 금지 통고한 청와대 앞 100m 집회·시위를 법원이 허용했다. 12월3일 열린 6차 촛불집회를 하루 앞두고였다. 서울행정법원 6부(부장판사 김정숙)는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시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권리다”라고 결정문에 명시했다.

12월3일만이 아니었다. 11월5일 열린 2차 촛불집회부터 법원은 꾸준히 경찰의 금지 통고를 취소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양홍석 변호사(38) 등이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이끌어낸 숨은 주인공이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집회는 신고제지만 경찰이 금지 통고를 내리면서 사실상 허가제 양상을 띠었다. 경찰은 교통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고, 압사 등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집회를 금지한다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양 변호사는 이번 촛불집회만은 합법·평화적으로 열려야 한다고 생각해 소송팀에 참여했다. 그래야 가족·연인·친구 등이 부담 없이 촛불집회에 나올 수 있다고 여겼다.
 

ⓒ시사IN 이명익

11월4일 2차 촛불집회 금지 통고가 나온 날부터 매주 경찰과 법리로 치열하게 다퉜다. 경찰은 집회 하루 전날 오후 2시에야 금지 통고를 내렸다. 가처분 결정을 이끌어내기에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이었다. 급한 대로 오후 5시40분 양 변호사는 경찰 금지 통고가 부당하다는 서면을 써서 법원에 제출했다. 다음 날이 집회인데, 토요일이라 심리가 열릴 가능성이 낮았다. 그래도 법원에 가처분 신청서를 냈으니 재판부에 배당해달라고 요청했다.

11월5일 토요일 새벽 퇴근하면서 광화문광장을 둘러보았다. 서울 김장문화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양 변호사는 ‘김장축제는 되고 촛불집회는 안 된다니, 집회가 김치보다 못한가?’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오전 11시 법원에서 연락이 왔다. 세 시간 후에 심리가 열린다는 통보였다. 이례적인 토요일 가처분 심리였다. 심리가 잡혔다는 것 자체가 좋은 신호였다.

경찰은 행진을 허용하면 교통 소통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는 새벽에 봤던 김장문화제를 예로 들며 반박했다. 그는 “김장축제로 2개 차로를 통제하고 72시간 차량 통제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촛불집회를 교통 방해라는 이유로 막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지적했다. 1시간 가까이 경찰과 변호인 사이에 공방이 오갔다.

민주주의 국가임을 증명하는 방법

촛불집회 시작 1시간 전 서울행정법원 4부(부장판사 김국현)는 양 변호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교통 소통의 공익이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에 비해 크다고 보기 어렵다. 집회·시위가 금지되면 불법 집회·시위로 보여 자발적 참여하는 국민의 표현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 새벽에 현장을 둘러본 게 변론에 큰 도움이 되었다.

2차 촛불집회는 평화롭게 끝났다. 경찰은 이후에도 집회 금지 통고를 했다. 매주 재판부는 바뀌었지만 결정은 똑같았다. “이번 집회는 다수가 자발 참여해 집시법상 제한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할 게 아니다. 오히려 집회를 조건 없이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11월12일 서울행정법원 6부).” “집회 자유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다.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근본 요소다(11월25일 서울행정법원 12부).” 경찰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뜻이었다.

12월3일 6차 촛불집회를 앞두고 경찰은 테러방지법과 통합방위법을 근거로 청와대 100m 거리 집회를 금지했다. 청와대는 국가 중요 시설이니 시위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는 “정말 황당했다. 해당 법은 ‘적의 침투나 도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을 띤다. 시민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주장이라 조목조목 따졌다”라고 말했다.

집회 때마다 그는 홀로 현장을 살펴보았다. 법원 심리에 대비하기 위한 점검이었다. 경찰이 내세울 현장 상황을 반박하는 데 매번 도움이 되었다. 발품이 빛을 발하는 순간도 있었다. 청와대 100m 앞 집회가 불가하다고 주장하는 경찰은 “서울강북삼성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가야 하는 응급차가 시위대에 막혀 이태원 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빨리 이송되지 못해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느냐”라고 말했다. 곧바로 양 변호사는 “직접 살펴보았더니 경찰이 막던 청와대 바로 앞길을 열어주면 그 어디로 가는 것보다 빠르다”라고 반박했다. 그날 변론도 변호인 쪽의 승리였다.

경찰과 법리 다툼에서 매번 승리한 양 변호사는 “집회는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헌법 제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양 변호사는 “집회의 자유는 내가 자주 되새기는 헌법 가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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