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집회가 끝난 새벽 광장에 뒹구는 은행잎을 보았다. 푸른 잎이 노랗게 변한 모습이 어쩐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노랑이 우리와 함께 해주는 것 같아 고맙고 미안했다. 우리가 노랑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나무들도 다 알 텐데 싶어.
그리고 다시 집회, 집회…. 불빛이 커지는 걸 보았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나비 떼가 강하고 지혜로운 날갯짓으로 끊임없이 불씨를 키우는 걸 보았다. 앞으로 닥칠 혼란과 환멸 안에서, 때론 잔잔해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불을 보며 걸은 이 겨울의 경험이 우리 내면에 남긴 것은 누구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세대를 거듭하며, 역사의 어두운 혈관 속을 도는 노란빛으로 이어질 거다. 불씨처럼, 유전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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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간데없고 유령만 날아다니네
동지는 간데없고 유령만 날아다니네
고재열 기자
2월24일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유령 시민들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시민이지만 시민이 아닌 이들이, 시위지만 시위가 아닌 퍼포먼스를 했다. 실제 시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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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겼던 말의 투쟁
끈질겼던 말의 투쟁
천관율 기자
의회는 내전을 대체하는 제도다. 총칼로 싸우지 않고 대표를 보내 말로 싸우는 제도가 의회다. 정치학계의 석학 아담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란 우리가 서로 죽이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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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들’이 던지는 메시지
체르노빌‘들’이 던지는 메시지
이문재(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체르노빌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우크라이나라고 답한다면 그는 미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체르노빌은 특정 지역이 아니다. 1986년 4월26일 이후 체르노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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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라는 훈장 [편집국장의 편지]
블랙리스트라는 훈장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화면에는 비치지 않았다. 지난주 월요일(12월26일) SBS는 문화 언론계 블랙리스트를 보도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 언론사 7곳은 좌파 성향으로 분류됐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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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온도계 [편집국장의 편지]
촛불 온도계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2008년 촛불 때 광장에 나가지 못했다. 검찰청사에 갇혀 있었다. 출입처가 검찰이었다. 광화문광장과 서초동 검찰청사는 그 거리만큼 분위기도 달랐다. 검찰 반응으로 그 열기를 가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