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동자,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 영정 사진을 꼭 쥐고 있는 다섯 살 아이(왼쪽 사진). 그해 이 사진이 찍힌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도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는, 내게 솜이불과 이 사진으로 기억된다. 봄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목화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주었다. “6·25 때도 솜이불이 총알을 막았다.” 솜이불을 더 이상 덮지 않게 되었을 때, 사진은 독일 〈슈피겔〉에 실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 사진은 역사다.


1987년 6월 중학교 3학년생에게도 세상은 달리 보였다. 지금 내게 6월 항쟁은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된다. 1987년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한국일보〉 고명진 기자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며 달려가는 사진은 6월 항쟁을 압축했다(오른쪽 사진). 지난 12월3일 촛불 시위에 나선 부산 시민들은 문현로터리까지 행진을 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상징한 그 장소에서 2016년 민주주의를 외쳤다. 사진은 기록이다.

지난 한 해 ‘촛불 민주주의’를 예고한 사건이 많았다. 의회 민주주의 체험장으로 기록된 필리버스터(2월), 여성혐오와 차별을 수면 위로 드러내게 만든 강남역 살인사건(5월), 죽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를 낱낱이 보여준 구의역 김군 사고(5월) 등 우리는 1년간 노동과 민주주의, 인권을 체험하고 예습했다. 11월과 12월, 주권자들은 광장으로 나섰다. 헌법을 무기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이 거대한 촛불 민주주의도 사진으로 기록되고 또 기억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을 지면에 초대한 이유다. 내로라하는 유명 사진가까지 27명이 〈시사IN〉과 협업했다. 큐레이터 역할을 한 홍진훤 사진가가 있어서 가능했다. 김애란 김세윤 김훈 김현 서명숙 손희정 송경동 엄기호 은유 이문재 조남주 진선미 최은영 황현산 등이 글을 보태며 지면을 더욱 풍성하게 꾸릴 수 있었다.

사진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는 일부러 담지 않았다. 불친절해 보일 수 있다. 사진은 각자 해독하는 매체다. 독자가 자신의 해석으로 여백을 채워 나가기를 기대한다. 시사 주간지로서는 파격적인 ‘콜라보 기획’이다. 이 사진을 통해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내다보기를 바란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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