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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실력’인 미국의 교육정책

미국 뉴욕 시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가정의 80%는 사립학교 1년 학비도 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한다. 이 같은 빈부격차는 사립·공립학교 간 편차를 나타낸다. 향후 트럼프 정부의 교육정책은 격차를 더욱 가속화하리라 보인다.

김혜영 (컬럼비아 대학 교육대학원 박사과정) webmaster@sisain.co.kr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제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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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학교 시스템은 흔히 ‘K-12’라고 불린다. 이는 유치원(Kindergarten)부터 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12학년까지를 일컫는 말로, 미국의 의무교육이 미치는 범위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유치원 이전의 교육은 사설 기관에서 맡고, 의무교육의 범주에 속하는 K-12는 크게 공립학교(Public School)와 사립학교(Private School) 시스템으로 나뉜다.

미국에서 사립학교가 갖는 의미는 다소 상징적이다. 미국에서 사립학교란 단순히 학교의 운영 권한이 공립 기관이냐 사설 기관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경제력·교육수준·학교 명성·교사의 질 등을 바탕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의 개념에 가깝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국내 유명 사립초등학교 동문회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와 비슷하다.

전 세계 부의 집결지라 할 수 있는 미국 뉴욕 시는 이러한 사립학교의 상징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뉴욕 시 한 사립학교의 경우 1년 평균 학비는 2만 달러(약 2400만원)에서 3만5000달러(약 4000만원)이며, 이것도 방과후 활동을 제외한 금액이다. K-12 전 교육과정을 뉴욕 시 사립학교에 보낸다고 가정할 때 순수 학비로만 45만 달러(약 5억3000만원)가 소요되는 셈이다. 반면 뉴욕 주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통계자료에 따르면, 뉴욕 시 공립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의 약 80%가 무료급식 수급자이다. 뉴욕 주에서는 연간 소득이 가구당 인원수 대비 일정 금액 이하인 가정에 한해 무료급식을 지원한다. 이를테면 3인 가구 기준 연봉 3만7296달러 혹은 4인 가구 기준 연봉 4만4955달러 이하에 해당하는 이들이 무료급식 대상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뉴욕 시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가정의 80%는 사립학교 1년 학비도 채 안 되는 금액으로 생활한다는 이야기다. 뉴욕 시에 만연한 빈부격차의 심각성과 더불어 미국 사립학교와 공립학교 간의 편차를 알 수 있다.

ⓒAvenue:The World School
뉴욕에 위치한 사립학교 애비뉴는 한 해 수업료만 4만9550달러에 달한다. 10년 이내에 세계 주요 20여 개 도시로 캠퍼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2012년 미국 사립학교의 상징성을 극대화하는 초호화 기업형 사립학교가 등장했다. 바로 뉴욕 시에 자리 잡은 애비뉴(Avenue). 한국에서는 톰 크루즈의 딸 수리 크루즈가 다니는 학교라고 소개된 바 있다. 애비뉴는 조기교육센터(Early Learning Center), 초등학교(Lower School), 중학교(Middle School), 고등학교(Upper School)로 구성되어 있는 영리형 사립학교이다. 사실상 대학 이전의 모든 교육을 담당하는 이 거대한 학교의 1년 학비는 최소 4만9550달러(약 5800만원)이다.

애비뉴는 ‘세계학교(The World School)’라는 타이틀로 전 교육과정에 이중 언어 교육을 포함시킴으로써 여타 사립학교와 차별화한다. 학생들은 중국어 또는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으며, 각 언어를 담당하는 교사들은 언어와 더불어 문화도 함께 가르친다. 애비뉴는 10년 이내에 세계 주요 20여 개 도시로 캠퍼스를 확장한 후 교환학생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세계화에 대비한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야심찬 이념이 반영된 커리큘럼이다. 이 학교는 초호화 사립학교답게 학생들에게 물질적 지원 역시 아끼지 않는데, 그 예로 유치원생에게는 아이패드를, 고등학생에게는 맥북을 제공한다.

뉴욕 시 공립학교의 80%가 무료급식 대상자라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애비뉴는 그 존재만으로도 상당한 위화감을 조성한다. 애초에 공교육은 특권층의 교육 기회 독점을 막기 위해 도입되었다. 교육의 기회는 평등하고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욕 시처럼 빈부격차, 그리고 그에 따른 공교육과 사교육의 질적 수준 차이가 현저한 경우에는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애비뉴와 같은 호화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더 많은 교육 자원과 기회에 노출이 되는 반면, 일반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교과과정, 시설, 교구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기회균등의 장이어야 할 학교가 부의 세습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

ⓒAvenue:The World School
사립학교 애비뉴는 학생에게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위는 애비뉴의 학생 식당.
계급화된 학교 체제 만드는 트럼프 교육정책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차기 교육장관 벳시 디보스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교육개혁 계획은 위험천만하다. 전형적인 사업가 및 경영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 둘은 미국의 학교 시스템을 사기업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학교 선택권(School Choice)’을 통해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는 애비뉴와 같이 탄탄한 자본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영리형 사립학교를 선택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모는 공교육에 의존할 것이다. 부모의 선택권이라는 미명 아래 계급화된 학교 체제를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이러한 학교 체제는 그나마 교육을 통해 열려 있던 균등한 기회마저 앗아갈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세습 자본주의가 탐욕스럽게 똬리를 틀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변되는 미국은 오랜 시간 기회의 땅이었다. 설령 그것이 인종, 장애, 성 정체성 등에 의한 차별을 호도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했을지언정 기회균등을 표방하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담겨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향후 트럼프 정부의 교육개혁은 기업·효율성·자본의 원리로 이 최소한의 가치마저 뒤엎으리라 예상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서민층의 꿈이 무산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기회의 땅은 아틀란티스와 같이 전설 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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