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국적 대기업들은 탈세도 대범하게 저지른다. 해외에서 번 돈을 미국으로 반입하지 않고 버틴다. 국제적 기업정보 업체인 스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지난 8월 현재 애플은 미국 내외에 걸쳐 모두 2315억 달러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미국 내에 있는 돈은 166억 달러에 불과하다. 나머지 2149억 달러는 해외의 조세도피처 등에 묻혀 있다. 미국 역대 행정부는 초국적 기업의 해외 자금을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골머리를 썩여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초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초국적 기업들의 해외 자금에 대해 파격적인 특혜를 베풀기로 했다. 미국으로 들여오는 경우, 법인세를 10%만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미국에 본사를 둔 업체)’이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 35%(법인세율)를 세금으로 걷는다. 미국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올린 수익에도 원칙적으로 법인세율 35%를 적용한다. 예컨대 구글이 프랑스에서 인터넷 광고 영업을 통해 1억 달러 수익을 얻는 경우, 3500만 달러를 미국 국세청에 법인세로 내야 한다. 물론 프랑스에 이미 1000만 달러를 세금으로 냈다면, 미국 국세청은 해당 금액을 제외한 2500만 달러만 납부받는다(‘이중과세 방지’ 원칙). 다만 구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은 그렇게 호락호락 세금을 내주지 않는다. 각국 세금제도의 사각지대를 활용한 교묘한 방법들을 통해 조세도피처에 설립해둔 자회사 법인으로 거의 모든 수익금을 몰아준다. 법인세율이 사실상 0%인 조세도피처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더욱이 미국 국세청은 자국 기업이 해외 자회사를 통해 올린 수익은 미국으로 송금할 때까지 납세를 연기해준다. 극단적으로, 해외 자회사가 수익금을 미국 내의 본사로 영원히 송금하지 않는다면, 합법적으로 단 한 푼도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다. 결국 천문학적 수익을 기록하는 초국적 대기업들은 어떤 나라에도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

〈파이낸셜 타임스〉(5월21일)가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5년 말 당시 미국 기업(금융사 제외)들의 ‘현금 보유’는 1조7000억 달러에 달한다. 그중 1조2000억 달러가 해외에 쌓여 있다. 현금 보유 기준으로 5대 기업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시스코, 오라클 등이 해외에 축적한 현금은 지난해 말 4410억 달러에서 올해 말에는 50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아래 〈표〉 참조).

더욱이 이런 기업들은 아무리 현금이 절실해도 해외 자금을 미국으로 반입하지 않는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주로 기술투자와 인수합병에 돈을 썼다. 주주들에겐 매우 인색했다. 이런 잡스가 2011년 세상을 떠난 뒤부터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는 애플 등 미국의 IT 대기업에 ‘현금을 배분하라’며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 배당금을 올리고 자사주를 매입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미국 대기업들은 해외에 묻어둔 자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오로지 주주들에게 현금을 주기 위해 따로 돈을 빌렸다. 그 덕분에 5대 기업의 채무는 2012년의 460억 달러에서 지난 9월 말에는 2590억 달러로 급증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지난 8월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법인세율이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되기 전에는 해외에 보유한 현금을 들여오지 않겠다”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와중에 사업가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트럼프 경제정책의 기조는, 미국 내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활성화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이 바로 세금제도 개혁이다. 먼저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15%로 대폭 내리겠다고 공약했다. 법인세에 관한 한 OECD에서 가장 높은 세율을 유지해온 미국을 ‘저세율 국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기업이 멕시코나 중국 등 해외의 생산 공장에서 만들어 다시 미국 시장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대해 관세율을 35%로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에서 100달러에 팔리는 제품이 135달러로 폭등하면 가격 경쟁력이 치명적으로 손상될 수밖에 없다. 결국 초국적 기업들의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이야기다. 중국 현지에서 애플 아이폰 등을 조립해온 타이완 기업 폭스콘은 최근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 당시, 법인세 5%만 징수하기도

초국적 기업들의 해외 자금에 대해서는 ‘세금 휴일(Tax holiday)’을 제안했다. 정해진 기간(‘세금 휴일’)에 미국 내로 반입한 자금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10%만 징수하는 특혜를 베풀겠다는 것. 미국 정부는 세수를 늘려서 좋고 해당 기업들 역시 높은 법인세 때문에 해외에 묶어두었던 자금을 미국 내에 투자해서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초국적 기업들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다. 휴렛팩커드의 CEO 메그 휘트먼은 방송에 나와서 “그 정도의 세율을 적용해준다면, 휴렛팩커드가 해외에 보유한 현금을 미국으로 들여와 투자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AFP PHOTO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12월14일 IT업계 최고 경영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가 실현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2004~ 2005년 한시적인 ‘세금 휴일’ 제도를 시행한 바 있다. 초국적 기업들이 해외 자금을 들여오면 고작 5%만 받았다. 파격적 조치다. 다만 반입 자금의 사용처를 규제했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보다 실물경제에 투자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고용률을 높이려는 고육책이었지만 당시의 ‘실적’은 변변치 않았다. 무디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의 세금 휴일 당시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해외 자금을 보유한 9700여 기업 가운데 843개 업체만이 참여해 모두 3620억 달러를 미국으로 들여왔다”. 특히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시스코·오라클 등 5대 기업은 당시 해외에 보유했던 750억 달러 가운데 67억 달러 정도만 반입했다. 무디스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 시절의 변변치 않은 실적이 규제 때문이라며, “반입 자금에 제한과 조건을 달지 않는다면 상당수의 해외 보유금이 미국으로 들어올 것이다”라고 권고했다.

반면 빈민 구호 국제 NGO인 옥스팜은 트럼프의 세제 개혁 자체에 매우 비판적이다. 이 단체가 12월12일 홈페이지에 올린 자료에 따르면, 50대 미국 대기업들은 탈세 목적으로 해외에 설립한 1600여 자회사에 2조4000억 달러를 묻어두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대기업들의 탈세를 징계하는 대신 오히려 10%의 ‘특혜 세율’로 포상하려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공화당 실세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둘 다 조세도피처 문제를 언급도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트럼프의 세제 개혁이 “(미국 내에서)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는 가난한 국가들 사이의 세금 인하 경쟁을 부추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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