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는 뚜렷했다.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그간 8·15 경축사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건국’이라는 단어를 썼다. 60주년도, 70주년도 아닌 67주년에 굳이 ‘건국’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사진)는 당시 그 경축사를 듣고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직감했다. ‘저 논리를 받아줄 것은 국정 역사 교과서밖에 없다. 정부가 곧 국정화 작업에 들어가겠구나.’ 지난해 10월 초, 한 교수가 대표로 있던 역사정의실천연대를 중심으로 480여 개 시민사회·역사교육 단체가 모여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를 꾸렸다. 정부 발표보다 먼저였다.

ⓒ시사IN 이명익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위)는 지난해 10월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를 꾸렸다.

예상대로 지난해 10월12일,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했다. 다른 과목 새 교과서와 달리 국정 역사 교과서만 유일하게 박 대통령 임기 안에 학교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규정도 바꾸었다. 1년여간의 밀실 집필로 완성된 국정교과서 내용은 세간의 예측을 깨지 못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23회나 언급된 이 교과서를 두고 역사학계는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원념을 담은 ‘효도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국정 역사 교과서는 꽤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게 생겼다’라는 다수의 전망과 달리 교육부는 “원래 계획대로 추진한다”라는 방침을 바꾸지 않고 있다. 국정화저지네트워크의 대표로서 지난 1년간 맨 앞에서 싸워온 한 교수는 이런 ‘버티기’에 놀라지 않는다. 매일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에 나와 “폐기” 구호를 외치면서도 한 교수는 “정부는 결코 국정교과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본다. 12월13일 서울 운니동 연구실에서 만난 한 교수가 그 징후들을 읽어줬다.



정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국정 역사 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박 대통령은 1970년대 국정교과서가 건재하던 시절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면서 그 효력을 누구보다 몸소 체험한 사람 아닌가. 우연히 이뤄진 정책도 아니고 여러 정책 가운데 하나도 아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쓴 업무일지에도 적혀 있듯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의 ‘신념’이다.

박 대통령의 그 신념을 읽어 교육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걸까?

교육부는 자기 주체적으로 정책을 집행한 적이 한순간도 없다. 자기들이 통과시킨 검정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며 국정으로 간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다. 애초 교육부는 마지막까지 검정제 강화를 검토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8종이 아닌 2종 정도로 검정 통과 수를 줄이는 것이다. 자기네들 입맛에 맞는 것 하나, 아닌 것 하나 정도로. 그런데 그 생각을 대통령께 전달 못했다고 하더라. 대통령의 국정 전환 신념이 워낙 강하니 조용히 편승한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상황에서 국정교과서를 추진할까?

그렇지 않다. 현재 집권 세력의 한 축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국정교과서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다. 한 축이 무너졌으니 나머지 한 축은 어떻게든 지키려 들 수밖에 없다. 국정교과서가 무너지려면 황교안 체제도 같이 무너져야 한다. 즉 황교안 체제가 무너지기 전까진 국정교과서도 끝까지 갈 것이다.

국정교과서 강행이 현재 집권 세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정부로서는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여서 손해 볼 게 없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5% 나올 때 국정교과서 찬성 여론은 17% 나왔다. 여기에 조금만 더 살을 붙이면 보수를 결집할 수 있는 효자 상품인데 왜 포기하겠나. 그들에게 국정교과서는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아니라 위기를 타개할 방책인 것이다. 더 본질을 보자면, 정치적으로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은 이루어졌지만 박정희 프레임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아직 남았다. 이 프레임은 이번 정권과 집권 세력의 핵심이다. 그 핵심을 그대로 담은 국정교과서를 쉽게 포기하리라 생각하는 건 이 정권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연합뉴스12월14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했다.

박정희 프레임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경제발전을 위해 독재가 불가피했다’는 논리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경제 발전의 하위개념으로 만드는 논리이기도 하다. 제헌헌법은 그렇지 않았다. 제헌헌법 제5조와 제84조에 나타난 ‘경제민주화’ 조항은 경제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못 박아놓았다. 이 조항들을 박정희가 삭제하거나 훼손했다. 먹고살게만 해준다면 독재든 뭐든 따라야 해, 교육부 공무원 나향욱의 개·돼지론이 여기서 나온 거다. 그런데 이 프레임을 깨는 힘을 바로 최근의 촛불집회에서 보았다. 이제까지는 국가주의가 사회를 눌렀다면, 이번에는 사회가 확장돼 국가를 눌렀다. 진정 나라의 주인임을 자각한 국민들이 나서서 민주주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외쳤다. 이렇게 깨져서 공동화된 박정희 프레임의 껍데기를 붙들고 버티는 게 지금 교육부의 꼴이다.

결국은 국정교과서가 폐기될 것 아닌가?

세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 교육부가 고시 개정으로 당장 국정교과서를 폐기하는 방법이다. 가장 손쉽지만 가능성이 높지 않다. 두 번째, 행정부의 실책에 입법부와 사법부가 나서는 것이다. 국회에서 폐기법안을 만들거나 헌법재판소를 통한 위헌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교육 주체들의 당사자 운동이다. 교사들이 안 가르치겠다, 학부모들이 안 사겠다, 학생들이 안 배우겠다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 교육 현장에서 이 당사자 운동이 매우 바람직하고 중요하다고 본다. 촛불집회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장이 학교 현장에서 꽃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로서 지난 1년간 국정교과서에 앞장서 싸운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국정교과서 사태를 거치며 나를 비롯한 여러 역사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만 쓰던 연구자들이 시민과 힘을 모아 싸우면서 살아 있는 역사를 체득했다. 학자로서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다. 촛불집회를 지켜보며 역사학자로서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 5·18… 이 모든 역사에서 쌓인 에너지의 총결집이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라고 본다. 앞으로 우리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고도 생각한다. 만약 최순실 사태가 터지지 않았어도 교육 현장에서 국정교과서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역량이 성숙해 있었다는 걸 이번 촛불에서 발견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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