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현상금이 걸렸다. 국정조사 출석요구를 받은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최대 징역 3년 또는 벌금 1000만원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출석요구서를 수령한 뒤 출석하지 않은 경우에만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 우 전 수석은 이 같은 허점을 악용해 출석요구서를 수령하지 않고 보름 넘게 자취를 감췄다. ‘법꾸라지’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봉주 전 의원이 200만원을 내걸며 추적 레이스가 시작됐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합세해 현상금은 2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누리꾼 수사대가 출동했다. 〈시사IN〉도 추적에 나섰다.
 

누리꾼들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찾는 공개수배 포스터.


12월13일 오전 11시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ㅎ아파트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게시판에 올라온 정보는 매우 상세했다. ‘강릉 홍제동 ㅎ아파트 ◯◯◯동 △△1호. 차량 포드 ◯◯모 ××××. 새벽 2시 차량서 남자 1명과 (우 전 수석이) 내리는 것 목격. 변장 안 했음.’ 페이스북에 텔레그램 아이디를 공개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손혜원 의원실 김성회 보좌관에게도 비슷한 시각, 같은 내용의 제보가 입수됐다. 강릉에 사는 제보자가 정봉주 전 의원에게 제보했고, 정 전 의원에게 제보를 전해들은 누리꾼들이 주식갤러리에 이 내용을 올렸다. 정 전 의원은 〈시사IN〉과 전화통화에서 “거의 확실한 제보 같다”라고 말했다. 강릉으로 출발했다.

서울 외곽을 벗어날 무렵, ‘우 전 수석이 5차 청문회에 출석한다’는 연합뉴스발 속보가 떴다. ‘누리꾼 수사대가 자신을 쫓고 현상금까지 걸린 상황이 부담스러워서’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우 전 수석은 언론에만 의사를 표했을 뿐 국회에는 출석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청문회 출석요구서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우 전 수석의 소재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강릉 ㅎ아파트에는 이미 취재진이 여럿 와 있었다.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동 △△1호 벨을 눌렀다. 바로 문이 열렸다. 신생아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살았다. 잘못된 제보였을까. 수소문 끝에 강릉에 사는 최초 제보자와 연락이 닿았다. 근처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우 전 수석을 목격할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새벽 2시 그 아파트 옆을 지나가다 우병우와 운전석에 탄 남자가 내리는 걸 봤다. 분명히 우병우였다. 두 사람이 내린 후 5분 뒤에 ◯◯◯동 △층에 불이 켜졌다. 밖에서 봤기 때문에 아파트 호수는 1호가 아니라 2호일 수도 있다.” 1시간쯤 대화를 나눴을까, 제보자는 예상치 못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병우를 본 건 내가 아니라 지인이다. 지인이 언론에 나서길 꺼려 내가 대신 나왔다.” 지인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며 입을 굳게 닫았다. 헤어질 무렵에서야 그는 조심스럽게 지인이 누구인지를 밝혔다. “그냥 다 말하겠다. 내가 소통하는 신(神)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나에게 신호를 준다. 그분이 신호를 보냈다. 우병우가 거기 있다고.”

 

 

우 전 수석은 출석요구서를 받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12월14일 낮 12시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의외로 우병우 전 수석은 가까운 곳에 은신했을 수도 있다. 우 전 수석의 자택인 압구정 ㅎ아파트를 찾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계단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도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한 언론사 수습기자였다. 그는 2주 동안 우 전 수석 집 앞에서 뻗치기(‘무작정 기다린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를 했다. 하지만 출입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현관 앞에는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국회 출석요구서 봉투가 놓여 있었다.

우병우 전 수석의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이 사는 논현동 ㅇ빌라로 이동했다. 우 전 수석의 집과 장모 집은 차로 10분 거리다. ㅇ빌라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경비가 삼엄해 빌라 내부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변 탐문 취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우 전 수석의 장모 집에서 키가 178㎝ 정도인 젊은 남자가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정보였다. 우 전 수석의 아들 사진을 보여주니 “100% 맞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또 보면 연락을 달라’며 취재원에게 명함을 건넸다. 기자가 빌라를 떠나고 5분 후 전화가 왔다. “지금 막 (우병우 전 수석) 아들이 다시 집에 들어갔다.” 출석요구서는 가족에게 전달해도 효력이 발생한다. 국회 국조 특위에 이를 알렸다. 담당자는 난색을 표했다. 2차 청문회 당일에도 국회 입법조사관이 장모 집에 동행명령서를 가지고 방문했지만 경비원에게 막혀 진입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사IN 신선영12월7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잠적한 장소로 의심되는 장모 김장자씨의 자택 앞 모습.


12월14일 밤 9시30분
전라남도 무안군 ㅎ면 A펜션

김성회 보좌관이 의원실로 온 제보를 전했다. 전남 무안군에 있는 A펜션을 우 전 수석이 자주 찾았으며 지난여름에도 이곳에서 휴가를 보냈다는 것이다. 지금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신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했다. 그 길로 KTX 호남선에 몸을 실었다. 최순실씨의 얼굴을 최초 보도한 조남진 사진기자도 동행했다. 조 기자는 카메라 두 대를 양 어깨에 메고 400㎜ 망원렌즈까지 챙겼다. 바주카포처럼 생긴 이 렌즈만 해도 무게가 4.5㎏이었다.

전남 무안군 A펜션은 숨기 알맞은 곳이었다. 해안가 도로가 끝나는 지점, 바닷가를 마주보는 곳에 있어서 외부의 시선이 완전히 차단됐다. 주변에는 인가도 드물었다. 하지만 우병우 전 수석은 없었다. 비성수기를 맞은 펜션에는 주인 내외뿐이었다. 펜션 주인은 우 전 수석은 한 번도 온 적이 없다고 했다. 주인은 펜션 곳곳을 보여준 후 수고한다며 커피까지 대접했다. 최초 제보자에게 연락하니 “우 전 수석은 모르겠고 여름에 문고리 3인방이 다녀갔다는 소식을 접했다”라고 했다. 여러 사람을 거쳐 의원실로 제보되는 과정에서 소문이 부풀려진 거였다. 또 허탕이었다.

12월15일 오후 3시30분
서울시 ㄱ대학교 경영관 OOO호 강의실

5차 청문회 날짜가 12월22일로 잡혔다. 국회증언감정법에 따르면 출석요구서는 청문회가 있기 일주일 전에 송달되어야 한다. 즉 이날까지 우병우 전 수석에게 출석요구서가 전달되어야 출석 의무가 생긴다. 국회 입법조사관은 우 전 수석의 딸에게 출석요구서를 전달하기 위해 ㄱ대학교로 향했다. 딸이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을 본다는 제보를 받은 것이다. 기자도 ㄱ대학교로 향했다. 대형 강의실에 학생 100여 명이 시험을 치고 있었다. 우 전 수석의 딸에 대해 아는 건 이름뿐이었다. 시험을 끝내고 일찍 나오는 학생들을 붙잡고 우◯◯ 학생이 시험을 치러 왔느냐고 물었다. 다섯 번 만에 딸을 아는 학생을 만났다. 이 학생은 딸이 출석했다고 확인해준 후 인상착의를 알려줬다. ‘빨간색 후드티. 예쁘장한 얼굴.’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이런 학생은 찾을 수 없었다. 타이밍을 맞춘 듯 김성회 보좌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국회 입법조사관이 ㄱ대학교로 가는 도중 우병우 전 수석한테 연락이 왔다. 우 전 수석이 출석요구서를 문자로 받겠다고 해서 문자로 보냈다고 한다.” 우 전 수석의 소재지는 끝까지 비밀로 남게 되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