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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지키는 법

촛불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했다고 보았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광장의 참여가 정치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제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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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에너지의 폭발 후에 거대한 불확실성이 찾아왔다. 광장의 압도적인 힘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지만, 이후의 전개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대선이 언제 치러질지조차 아무도 모른다. 광장의 에너지를 어떻게 해석할지부터, 탄핵 이후의 정치 지형이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대선의 의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개헌론이 분출할지 미풍으로 그칠지, 답은 없고 물음표만 넘쳐난다.

<시사IN>은 학계와 현장에서 손꼽히는 젊은 연구자들을 만났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치학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선두주자다. 계량 분석을 적극 활용해 정당 일체감, 세대 균열, 무당파 등 한국 유권자의 투표 행태를 밝히는 연구를 왕성하게 진행해왔다. 감각적 예측 대신 데이터와 구조를 밝히는 글쓰기로 칼럼 필자와 논평자로도 주가가 높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여론조사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전문가다. 2012년 대선 때는 당시 정설처럼 되어 있던 투표율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예측에 이의를 제기했고, 2016년 총선 때는 대세에 반해 “새누리당 과반은 물 건너갔고, 제1당도 불확실하다”라는 도발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둘 다 적중했다.

다음 단계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그려낼지를 놓고 백지를 받아든 지금, 원로들과는 다른 경험을 토대로 다른 지평을 보는 최전선 현역의 눈으로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봤다.

ⓒ시사IN 이명익
12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서 거대한 파도를 연출하고 있다.

촛불집회를 어떻게 봤나?

박원호(이하 ‘박’):광화문광장이라는 데가 세종대왕 동상에 이순신 동상에, 아주 위압적인 공간이다. 그 큰 공간을, 차도를 걷는다는 건 묘한 해방감이 있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동료 시민을 발견했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아 우리한테 힘이 있구나 하고 시민들이 느낀다. 학자들 용어로 ‘정치적 효능감’이다. 이들이 앞으로 정치 참여와 투표 행태에서 달라진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정한울(이하 ‘정’)
:벌써 데이터로도 잡힌다. 내가 관여하는 어느 여론조사에서 대선 관심도를 물었다. 탄핵 이후 조사다. 2012년 대선 때 20대와 30대는 매우 관심 있다는 응답이 30% 언저리였다. 선거 직전이 아닌 한 젊은 층은 이 정도 나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조사에서는 20대와 30대가 70%에서 80%까지 나오더라. 여러 조사 데이터를 오래 봐왔지만 이런 급격한 변화는 처음 본다. 선거 관심도가 투표율을 예측하는 선행지수라고 본다면, 광장의 참여가 투표 참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내가 정치 기사를 나보다 더 많이 보고, 정치학자가 그것도 모르느냐고 구박한다(웃음). 한국 유권자들이 정치 시스템에 갖는 신뢰는 매우 낮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치 제도가 응답했다. 정치적 효능감이 올라갈 계기가 마련됐다. 1990년대 초반 자료를 보면 특히 젊은 세대에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높게 나온다. 1987년 6월 항쟁에서 어쨌거나 승리를 거둔 후에 나왔던 결과다. 2016년 이후도 비슷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치에서 지금이 상당히 주목할 만한 변화의 시기다.

:‘광장과 제도정치의 관계맺음’이 핵심이라고 본다. 2008년 촛불이 꺼진 후 참여한 사람들을 연구한 적이 있다. 이 사람들은 효능감은커녕 좌절을 느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 사건 촛불집회나 2004년 노무현 탄핵반대 촛불집회와 비교해보면, 2002년에는 대선, 2004년에는 총선이 광장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이게 효능감으로 이어졌는데, 2008년에는 제도와의 관계맺음이 없었다. 2016년 광장은 아직 절반의 성공이다. 제도는 탄핵소추안 가결로 광장의 요구를 일차 수용했다. 하지만 대선에서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내지 못할 경우 정치혐오가 분출할 경로도 열려 있다.

ⓒ시사IN 윤무영
박원호(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왼쪽)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가 있으니 개헌하자?
전형적인 박정희식 해법이다.”

정한울(고려대 평화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오른쪽)
“광장과 제도의 관계맺음이
중요하다. 대선까지를 연속된
과정으로 봐야 한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백가쟁명이다.

:대선까지를 제도가 광장에 응답하는 연속된 과정으로 봐야 한다. 여기도 두 차원이 있다. 광장의 일차 요구인 정권 심판은 정권 교체를 하면 달성 가능하다. 하지만 대선에서 유권자는 과거 심판 말고도 미래 비전을 요구한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 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가 양극화·청년실업·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위기를 느꼈다. 유권자들은 눈에 띄는 정책 한두 개가 아니라 구조개혁 플랜을 요구하는데, 대선 공간에서 답을 준비하는 것이 제도정치의 책무다. 거기까지 가야 제도가 광장의 요구에 부응했다고 할 수 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꼭 짚어야 할 핵심은 ‘정당의 실패’라고 본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관료제의 전문성과 선출 권력의 정당성이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 정당성은 선출 권력에 있는데, 정작 이 선출 권력이 제멋대로 통치를 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경험했다. 그렇다고 전문성은 있지만 정통성이 없는 관료제에 통치를 맡겨버릴 수도 없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게 정당이다. 대통령이 자기가 잘나서 개인으로 선출되는 게 아니라 정당의 공천을 받아서 선출되고, 그 정당이 잘 배열되고 연속성 있는 정책 꾸러미를 갖고 통치를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기능을 정당이 아니라 대선 캠프가 해버린다. 아무런 공적 책임성도 없고 당원도 아닌 대학교수니 후보의 경제 가정교사니 하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정책을 만든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소속당만 같을 뿐 정책이나 구성원으로는 그냥 다른 정부였다. 당은 간판이고, 본질은 ‘선거 캠프 정부’다. 정부의 내용과 구성원이 굉장히 비공식적으로 충원이 되는데, 그런 비공식 체제가 극단으로 간 것이 최순실 사건이다. 정당이 강하면 대통령이 사적 라인을 작동시킬 공간이 크게 좁아진다. ‘정당의 실패’를 문제로 인식하고 해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정당의 실패가 근본 원인이라는 데 동감한다. 다만 최순실 사건은 좀 더 별종이라고 본다. 대통령 이름을 업고 나선 것을 넘어서, 실제로 대통령이 비선의 민원을 해결해주려 움직였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정당의 실패라는 토양 위에 유난한 별종인 이번 정부가 결합되었다.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개헌론도 분출하는데.

:개헌 여론은 높은 걸로 나오는데, 데이터를 보면 찬성 여론이 4년 중임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로 다 갈린다. 그런데 세 제도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는 사실상 공통분모가 없다. 다 합쳐서 개헌 여론이라 부르는 건 어색하다.  

:4년 중임제 지지 여론이 좀 더 많다가 최근에는 떨어지는 추세다. 박근혜 게이트가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만약 재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면 이번처럼 제보자가 줄줄이 등장하고 사실이 파헤쳐졌을까, 이런 생각에 여론이 중임제를 덜 지지하게 된 것 같다.

ⓒ시사IN 윤무영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

:헌법에 대통령이 제왕적으로 통치하라고 써놓은 건 아니다. 헌법이 아니라 법률 차원의 문제, 혹은 더 미시적인 문화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제왕적 권력의 핵심이 검찰권인데, 이 문제는 법률 차원에서 먼저 풀어볼 일이다. 또 중요한 축이 청와대 비서실이다. 우리는 진짜 내각을 사실상 청와대 안에 차리는 시스템이고, 대통령 참모에 불과한 청와대 수석이 국무위원인 장관보다 힘이 센 기형적 구조다. 이것도 헌법까지 갈 것 없는 문제다. 제왕적 대통령 문제가 왜 곧바로 개헌론으로 이어지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 몸담고 있던 연구원에서 역대 청와대 참모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임기 중에 총선이 끼면서 사실상 중간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임기 중·후반에 총선이 들어오면 당정 관계가 무너지면서 식물 대통령이 된다는 게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래서 자꾸 중임제를 얘기하는 것 같다. 임기 말년의 권력 공백 없이 두 번은 집권해야 집권 어젠다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지금 짚어주신 그 대목이 개헌론 관점에서는 더 설득력 있다. 우리 현실에서 개헌론은 제왕적 대통령 견제가 아니라 오히려 국정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5년 단임제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좀 장기적으로 통치가 작동하도록 하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진지한 내각제론자의 논리도 이것이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 비판을 내건 개헌론은 정치적 슬로건에 가까워 보인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막기 위해 내각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제도 원리로 보면 맞지 않다. 내각제는 집권당이 입법권과 행정권을 동시에 갖는, 훨씬 더 통치력이 강하고 연속성 높은 시스템이다. 우리의 통치 관행을 생각하면 지금 대통령보다 더 센 제왕적 수상이 탄생할 수도 있다. 개헌론은 국정 연속성과 효율성을 근거로 주장하는 게 옳다.

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 하도록 하자는 이원집정부제는 어떤가?

:보통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권력의 속성상 내치 권한과 외치 권한을 나누려 할까? 또 하나는, 현실적으로 내치와 외치의 구분이 되나? 가령 한·미 FTA는 내치 문제인가 외치 문제인가? 내치 권한이 없는 대통령이 외치 문제라며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개헌 논의는 성급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안정화되어서 변화의 동력이 별로 안 보인다. 통일을 제외하면, 개헌은 몇 안 남은 동력이다. 함부로 쓸 카드가 아니다. 권력게임 관점에서야 두 달이면 개헌한다. 하지만 개헌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개혁을 촉발하려면 오랜 준비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동의한다. 개헌 방향에 대한 여론의 합의 수준도 낮고, 학계의 논의 수준도 숙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든 생각은 따로 있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20년 가까이 한 사람인데 왜 이런 행태를 우리가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유권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 그 책임은 박 대통령을 공천한 새누리당, 검증에 실패한 보수 지식인 그룹, 그리고 언론이 함께 져야 하는 것 아닐까? 정당·지식인·언론이라는 사회 시스템의 주요 축이 모조리 작동을 안 한 게 사태의 핵심인데, 이런 문제를 개헌으로 어떻게 해결하나?

:한국 사회가 특히 그런 성향이 강하다고 느끼는데, 어떤 문제를 민간 영역의 미시적·점진적·자율적인 조정 프로세스로, 시간을 들여서 풀어보려는 생각을 안 한다. 방금 하신 지적처럼, 정당과 지식인과 언론을 튼튼하게 해서 국가를 견제하자, 뭐 이런 식으로는 접근을 안 한다. 거의 언제나 톱다운 방식, 국가주의적 방식, 법적인 방식으로 한 방에 풀겠다고 덤빈다. 꼭 뭔가 법을 만들고 규칙을 바꾼다. 삐져나오면 칼로 잘라버리자는 식인데, 이게 잘려나가는 순간 다른 데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가 있으니까 개헌을 해서 대통령을 약화시키자? 제도 원리로도 맞지 않지만, 특히 이게 전형적인 박정희식 해법이다. 문제 있어? 법 바꿔서 한 방에 해결해! 박정희 시대를 최종적으로 보내는 장면까지 박정희식으로 하려 든다.

요즘 국면에서는 지식인이든 언론이든 더 급진적이고 단호하고 혁명적으로 이야기할수록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런 걸 ‘리셋 노이로제’라고 부른다. 전부 아니면 전무, 이 기회에 모든 걸 다 바꾸자는 주장. 당장 듣기에는 통쾌한데, 실은 우리 정치가 과거와의 연속성을 전면 부정하면서 작동하는 모습과 닮았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를 아예 부정하며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면 정치와 정책의 연속성이 증발하고, 사회에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쌓이지를 않는다. 5년마다 국가 비전을 완전히 새로 짜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선거 캠프 정부’와 ‘리셋 노이로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구조나 제도를 바꿀 논의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눈에 안 띄더라도 있는 시스템을 잘 굴릴 궁리부터 하는 게 순서라는 얘기다. 방송사 이사회, 대학 총장, 뭐 이런 언론과 지식인 사회에까지 대통령이 끼치는 힘이 너무 크다. 언론과 지식인은 사회의 자율적 조정 메커니즘에 중요한 보루 아닌가. 이런 걸 차단해서 자율 조정 기능을 복원하는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너무 쉽게 ‘최종 해법’을 들고나온다.

:2004년 정당 지구당 폐지가 얼핏 보면 별 일 아닌 것 같은데, 그 효과가 12년씩 쌓이니까 한국 정당의 기초체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런 눈에 잘 안 보이는 데서부터 오래 걸릴 각오를 하고 출발할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
5월29일 오후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이 풍산 류씨 종택인 양진당을 둘러보고 있다.
탄핵 가결 이후 새누리당이 안으로는 분열 위기, 밖으로는 지지기반 와해 위기다. 일시적인 현상인가, 구조적 위기인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단발성 이벤트는 아니다. 정당체제의 변화 가능성, 변화의 조건은 성숙한 단계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하지만 야당이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면 여당 기반이 복원될 수도 있는 거고. 데이터를 보면, 허물어진 새누리당 기반 중에서도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의 궤적이, 그리고 50대와 60세 이상의 궤적이 다르다. 부산·울산·경남과 50대는 상당히 심각하게 흔들리고 복원의 징후가 아직 없다. 이 층은 최순실 사건 이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부산·울산·경남의 젊은 층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새누리당을 싫어한다는 정서(이건 대구·경북 젊은 층에도 적지 않게 있다)를 넘어서 더불어민주당에 정서적 일체감을 형성하는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하다 보면 민주당을 ‘우리 편’으로 보는 장면들이 나온다. 중대한 변곡점일 수 있다. 가설로는, 국민의당이 빠져나가면서 민주당에 호남색이 약해져서일 수 있고, 또는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부산·경남 야당 세력이 오래 기반을 닦아온 결과일 수도 있다.

:한국과 같은 단순다수 선거제도에서는 정당 몰락이 어렵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단순다수제에서 한번 임계점을 넘으면 단번에 확 몰락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영국 자유당이 그랬듯이 한번 양당 체제에서 탈락하면 복원이 안 된다. 예측이라기보다는 가능한 시나리오를 짚어본다는 차원으로, 새누리당의 두 축인 국가주의 보수파와 자유지상주의 보수파가 분열할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총선 이전에 박근혜 정부를 가장 고립시켰던 이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였는데, 자유지상주의 보수파 관점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정책이다. 2016년 총선 자료를 보면,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투표했다가 총선 때 국민의당으로 빠져나간 층 중에 교과서 국정화에 강한 반감을 표한 사람이 제법 있었다. 이 층을 대변할 만한 사람들, 이를테면 새누리당 비박계와 국민의당은 정치 엘리트의 이념 좌표로만 보면 함께 가는 게 부자연스럽지 않다. 민주당을 한 축으로, 그리고 반대편에 이런 식으로 새로 재구성된 보수당을 한 축으로, 이렇게 양당제가 재편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이념적 중첩성 차원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지층을 생각하면 현실적 딜레마가 있다. 국민의당의 주력 기반인 호남이 새누리 비박계와의 연합을 용인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비박계는 생존전략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서 찾지 않을까.

최순실 사태 이전까지는 반기문 지지층이 공고해지는 추세였다. 사태 이후에는 어떤가?

:덩달아 흔들렸다. 반기문 지지층에는 두 축이 있는데, 하나는 당내에 이렇다 할 차기 주자가 없는 새누리당 지지층이다. 또 하나는 무당층인데, 이 층은 특히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이력에서 국가적 자부심을 느꼈다. 두 축으로 버텨서 지지층이 공고했던 건데, 지금은 둘 다 빠졌다. 새누리당 지지층은 자체 크기가 쪼그라들다 보니, 반기문 지지세도 따라서 쪼그라들었다. 또 반 총장이 임기가 끝나가면서 외신들이 종합 평가 기사를 쓰는데,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부터 해서 혹평이 자꾸 들려온다. 이러면 국가적 자부심을 북돋기는커녕 훼손한다. 만약 새누리당이 이렇게 무너지지 않았다면, 국제적 자랑거리라는 이미지를 당에서 보호하면서 선거를 완주하는 전략이 가능했을 수 있다. 이제는 보호막 없이 뛰어야 하는 조건, 꽃가마 타고 선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바탕 실력이 문제가 된다. 정말 정치적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호막이 없으니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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