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이문열 지음
나남 펴냄
‘그’가 엄청난 작가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드문 듯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모든 문학 소년들의 우상이었다. 그의 작품 〈젊은 날의 초상〉의 주인공을 흉내 내 술과 현학으로 세월을 탕진하는 풋내기 대학생도 많았다. 소설가 이문열 이야기다.

지금 돌이켜보면, 1970~1980년대의 그는 시대와 불화하는 작가였다. 군부독재의 폭력성과 대중의 순응을 비판하고(〈필론의 돼지〉), 상류층의 일상을 삐딱하게 고찰했으며(〈서늘한 여름〉), 더 나아가 (성)윤리의 절대성에 도전했다(〈익명의 섬〉). 감옥(〈어둠의 그늘〉)이나 군대(〈새하곡〉) 같은 ‘금기의 성역’까지 용감하게 작품 소재로 삼았다. 이른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이 허구적으로 대립하던 그 시기에 이문열이 없었다면 한국 문단은 더욱 참혹했으리라.

그랬던 이문열이 어쩌다 날개도 없이 추락해버렸는지 모르겠다. 1990년대 초 일종의 세태 비판 소설인 〈오디세이아 서울〉에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주도해 ‘지역감정을 선거에 악용’한 초원복국집 사건의 프레임을 ‘도청이 더 나빠’로 뒤집더니, 조선 시대에나 통용될 법한 자신의 여성관을 공격적으로 드러내고(〈선택〉), 200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터무니없는 정치 관념을 ‘구원’ 같은 종교적 주제에 덧입혀(〈호모 엑세쿠탄스〉) 소설이라고 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 이문열을 ‘수구꼴통’만으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한국 문학의 한 절정이었던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줬으면 한다. 한 권만 추천한다면 단연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맑은소리, 개정판)이다. 이토록 다양한 장르를 고아하고 아름다우며 재미있는 다른 색깔로 변주할 수 있는 작가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아아, 생각하면 쓸쓸한 우리 작가….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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