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만화가로서 재능이 별로였던 그는 동업자의 캐릭터를 가로채 자신이 디자인한 것처럼 홍보했다. 새 회사 이름에 형과 자신의 이름을 모두 올리겠다던 약속은 “간판 격인 이름 하나만 올라가 있는 게 더 신뢰감을 준다”라는 말로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그는 직원들을 착취했고, 영화를 홍보할 때면 감독 이름 대신 제작자인 자신의 이름을 제일 크게 걸었다. 반공주의 광풍이 불었던 말년엔 FBI의 비밀요원으로도 활약했다. 파업을 주도한 스튜디오 직원부터 평소 자기가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들까지 죄다 공산주의자라고 몰아세웠다는 대목쯤 되면 욕이 절로 나온다. 아, 뭐 이딴 인간이 다 있어. 그런데 이 남자가 월터 일라이어스 디즈니, 월트 디즈니라니.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 추악하고 초라한 사생활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그리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혼외 자식인 리사가 찾아오자 “나는 무정자증”이라며 양육 책임에서 벗어나려 했던 스티브 잡스, 병적인 결벽증 때문에 말년을 은둔하며 보낸 하워드 휴즈 같은 예도 있지 않나. 디즈니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인들의 기억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월트 아저씨’로 남아 있는 월트 디즈니는, 실제 삶에선 “고통스러울 정도로 숫기 없고 소심하며 자학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미국인들이 원했던 푸근하고 선량한 얼굴로 남기 위해 디즈니는 수줍고 불안하며 때론 우울했던 자신을 철저하게 감춰야 했다. 가면이 버거웠던 디즈니는 친구에게 이렇게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월트 디즈니가 아니야. 그라면 절대 안 할 일들을 난 한단 말이지. 월트 디즈니는 담배 같은 거 안 태워. 난 태우지. 월트 디즈니는 술도 안 마셔. 난 마시지만.”

ⓒ이우일 그림
어쩌면 병적인 완벽주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디즈니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를 만들며 난쟁이 ‘도피’ 역에 딱 들어맞는 목소리를 찾지 못하자 안 어울리는 성우를 기용할 바에는 차라리 아예 말을 안 하는 캐릭터로 만드는 게 낫다며 대사를 죄다 없애버린 위인이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에 애니메이터들에게 “이만하면 됐다” 이상의 칭찬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대 관객들에게 선량하고 목가적이며 환상적인 이상향을 선보이고 싶어 했고, 그 이상을 훼손할 만한 것들은 죄다 뒤로 숨겼다. ‘월트 디즈니’라는 가면의 완벽함을 해칠 만한 요소들, 미키 마우스를 디자인했던 동료 어브 아이웍스나 회사의 공동 경영자였던 형 로이 디즈니 같은 이름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그림 실력, 노동 착취의 결과로 불거진 애니메이터들의 파업 같은 건 되도록 안 보여야 했다. 가면으로서 월트 디즈니가 정교해질수록, 인간 월트 디즈니는 괴물이 되어갔다.

“이만하면 됐다” 이상의 칭찬을 해본 적 없어

하지만 그랬기에 지금의 디즈니가, 장편 애니메이션이, 놀이공원이 존재할 수 있었다. 창작자가 화면 위 모든 요소를 뜻대로 통제할 수 있는 영상 예술은 당시로선 셀 애니메이션밖에 없었다.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관객들에게 완벽한 환상과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월트 디즈니의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아니었다면, 애니메이션은 아직도 기껏해야 영화 본편 상영 전 서비스로 틀어주는 단편 처지를 못 벗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완벽을 향한 그의 집착은 초당 24프레임이라는 애니메이션의 기초 문법을 확립했고, 필름 9장을 겹쳐 화면의 심도를 확보하는 당대 최고의 신기술을 개발했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공원이 필요하다는 그의 결벽증은 디즈니랜드로 이어졌다. 전 세계 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이란 뻔한 교훈을 심어준 것도, 버림받은 공주와 석탄투성이 난쟁이들과 동물들이 갈등 없이 어울려 지내는 열린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심어준 것도 완벽한 가치만을 보여줘야 한다는 디즈니의 집착에서 비롯됐다. 좋아하려야 좋아하기 어려운 삶을 산 남자가 그 대가로 전 세계에 남긴 건 꿈과 희망이었다. 1966년 12월15일, 예순다섯 번째 생일 열흘 뒤, 월터 일라이어스 디즈니는 폐암으로 숨을 거뒀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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