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난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가세가 기울어 반지하 셋방으로 밀려난 가족의 막내였다. 한번은 구청인지 어딘가에서 쌀을 준다기에 갔다. 기념사진을 찍더니 정부미 한 포대를 내게 안겼다. 그 사진은 뭘 기념하는 것이었을까? 자신의 빈궁을 증명한 대가로 쌀을 얻은 청소년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기념?

어느 여름에는 하수도 물이 역류해 반지하 우리 집을 삼켰다. 책이며 공책들이 개울 위 낙엽처럼 방 안을 둥둥 떠다니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젖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정성껏 말렸지만 덕분에 몇 배로 불어난 책의 두께는 어찌할 수 없었다. 교실에서 그 두툼한 교과서를 펼치던 날. 한 녀석이 “아이씨, 냄새!”라고 소리쳤을 때, 아마도 짝꿍의 방귀 냄새를 놀려댔을 게 분명한 그때, 나도 모르게 킁킁 혼자 책 냄새를 맡았다. 혹시 하수도 냄새가 밴 건가 싶어서.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열 때마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던 기억. 정갈하고 세련된 친구들의 반찬 앞에서 마냥 촌스러워 보이던 나의 콩자반. ‘GUESS’ 점퍼가 유행하기에 몇 날 며칠 엄마를 조른 기억.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당신이 사오신 점퍼 등짝에 ‘GEUSS’라고 적힌 줄도 모르고 입었다가 망신당한 나의 오후. 가난의 기억은 그렇게 디테일하다. 그리고 집요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 쉽게 지워지지 않는 하수도 냄새, 내 도시락 반찬만 건너뛰던 친구들의 젓가락과 내 등을 가리키며 킥킥대던 녀석들의 손가락. 수시로 떠오르는 그 사소한 열패감들이 나를 자꾸 주눅 들게 만들었다.

다행히 내가 겪은 가난은 짧았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내 가난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과 또 다른 누군가에겐 끝까지 내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두 개의 돌덩이 밑에서 기어 나오니 겨우 좀 살 것 같았다.

연민은 ‘선별적 복지’, 연대는 ‘보편적 복지’

올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나는 두 번 보았다. 두 번째는 안 울 줄 알았는데 두 번째도 펑펑 울어버렸다. 특히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가 푸드뱅크에서 허겁지겁 통조림을 따는 장면. 배고픔과 수치심으로 울먹이는 엄마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딸 데이지. 그리고 밑창 떨어진 신발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받았다고 데이지가 말하는 또 다른 장면. 딸을 품에 꼭 안아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해줄 게 없는 엄마.

가난의 기억은 데이지에게도 디테일할 것이다. 수시로 떠오르는 사소한 열패감들이 아이를 자꾸 주눅 들게 만들 것이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내 빈곤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과 또 다른 누군가에겐 끝까지 내 곤궁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두 개의 돌덩이에 짓눌린 아이의 꿈은 점점 납작해질 것이다. 불행히도 데이지의 가난은 짧지도 않을 것 같다. 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이미 영화 안에 있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연민을 자아내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대사도 기억에 남지만, “우릴 도와주셨죠? 저도 돕고 싶어요”라는, 연대를 실천하는 데이지의 한마디가 나는 더 좋았다. 연민이 ‘선별적 복지’의 언어라면, 연대는 ‘보편적 복지’의 언어. 나의 실패와 비참을 쉼 없이 입증하도록 강요하는 현 제도는, 이 영화의 강력한 라스트신 앞에서 그만 무용해지고 만다. 그리하여 생텍쥐페리가 〈야간비행〉에서 던진 이 질문이 곧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질문이 된다. “우리는 항상 마치 무언가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는 듯이 행동하지. 그런데 그게 무엇인가?”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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