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작았다. 40평 남짓한 공간, 의자와 책상만 보였다. 정면 벽에 텔레비전 10대가 눈에 띄었다. 기자들은 실망했다. 텔레비전 화면이 켜지고 설명을 듣고 나서야 감탄사가 쏟아졌다. 한반도 반경 360㎞ 이내에서 운항하던 군용기, 민간 항공기가 모두 텔레비전 화면에 표기되었다. 무작위로 항공기 하나를 클릭하자 속도나 진행 방향 정보가 화면에 바로 떴다. 선박 관제 시스템도 갖춰져 한반도 주변에서 운항 중인 함정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원래 1975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만든 지하 대피시설이었다. 방치되다시피 하던 이곳을 2003년 참여정부는 예산 16억원을 투입해 위기관리 종합상황실로 개조했다. 육해공군 작전사령부, 경찰청, 해양경찰청, 소방본부, 산림청, 한국전력 상황실 등 22개 기관이 전부 연결되었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던 첨단 상황실 같았다. 당시 이 시설을 열면서 언론에 공개했다. 그때 나도 참관했다.
13년 전 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 건 청문회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추궁했다. 프로포폴, 필러 시술 따위 의혹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딱 부러지게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분명한 사실은 그날 박 대통령은 ‘국가위기관리상황실’로 이름을 바꾼 지하벙커에 가지 않았고 관저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특히 청문회 때 귀를 의심한 대목은,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의 증언이다. 서면보고서를 보좌관(중령)이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가서 전달한다는 대목이었다. 비서동에서 관저까지는 도보로 5~10분이나 걸린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접 서류 쪼가리를 들고 뛰어다닌다니, 조선시대 파발마 통신을 연상케 했다.
그날 박 대통령은 국가위기관리상황실로 출근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청와대가, 구조에 나선 해경에 ‘VIP 보고용 영상을 빨리 보내라’고 다그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여기 와봐야 아사리판이야(평택해양경찰서)” “그러니까 중앙통제가 안 되고 있어(항공대)” 따위 구조 현장의 아비규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소중한 생명이 한 명이라도 더 구조되었을지도 모른다. 청문회를 거쳤지만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은 미궁에 빠졌다. 어쩌면 프로포폴도 성형 시술도 없었을 수 있다. 평소대로 박 대통령은 관저에 머물며 ‘혼밥’을 했고 머리 손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게 더 끔찍하다. 대통령이 아무것도 안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참사 당일 질서 있게 대처한 이들은 희생당한 학생들이 유일했다.
4월16일 그날의 진실을 쫓는 건 단지 유족들의 한풀이 차원이 아니다. 유족들은 처음부터 그날의 진실을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게 고장난 시스템을 바꾸는 첫 단추라고 말해왔다.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그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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