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은 앞으로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까? 많은 매체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인쇄 매체는 지속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이 책의 미래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e북은 독자가 어떤 디바이스로 작품을 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종이책으로 인쇄된 그래픽노블은 작가가 최적이라고 생각하는 판형에, 작품에 어울리는 장정으로 독자에게 선보일 수 있다.

〈새내기 유령〉은 이런 면에서 돋보이고 신선한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단순하다. 유령으로서 첫 임무를 맡은 ‘새내기 유령’ 하나가 그만 동료들과 멀어진다. 이때 천문대에서 한 남자가 나와 유령을 도와준다. 그는 천체망원경을 이용해 밤새 밤하늘을 관측하며 별의 신비를 발견하고자 하는 이였다.

크레파스 질감, 부드러운 선이 만져지다

반면 유령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둘은 유령이 무엇을 할지 찾아 나서기로 한다. 다른 유령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다가, 동료 유령이 바이올린을 켜는 여자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고 충격받는다. 그런데도 이 남자는 아랑곳없이 새내기 유령에게 자기와 함께 별의 신비를 밝혀보자고 제안한다. 새내기 유령은 깊이 감동한다. 동료 유령들이 몰려오는 걸 눈치 챈 새내기 유령은 혹시 동료들이 그 남자를 데려갈까 두려워하고, 둘은 함께 도망치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은 다른 유령들로부터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별의 신비를 밝히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내용보다도 그림과 연출이다. 특히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작품 전체로 이어진다. 부드러운 선과 크레파스 같은 질감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유령이라는 존재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는 긴장감보다 편안함을 자아낸다. 차분하고 조화를 이룬 색감은 새내기 유령이 어둠 속에서 헤맬 때에도 칙칙하지 않고 산뜻하다.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칸 배치는 시선의 이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행동을 보여준다. 흔히 실험적인 작품에서는 파격적이고 복잡하게 칸을 구성해 시선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새내기 유령〉은 마치 독자를 새내기처럼 여기듯 시종일관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영국에서 태어나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작가 로버트 헌터는 인쇄와 판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작품 자체는 물론 책 전체가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새내기 유령〉은 디지털로는 표현할 수 없는 책의 장점을 잘 살렸다. 다양한 그래픽노블을 번역하고 소개해온 ‘해바라기 프로젝트’가 출판사로 변모해 처음 도전한 작품이다. 작품에 어울리는 종이를 찾고 제대로 색을 표현하려 수차례 감리를 보며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고 한다. 좋은 책을 만드는 물리적인 어려움과, 잘 만든 책이 전해주는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 그래픽노블이다.

 

〈새내기 유령〉 로버트 헌터 지음, 맹슬기 옮김, 에디시옹 장물랭 펴냄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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