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A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국내 언론들은 비슷비슷한 소식을 전한다. 누가 가장 상을 많이 받았고, 누구의 퍼포먼스가 관객을 압도했으며, 해외 스타는 누가 참가했는지 등등. 굳이 현장에 가지 않고도 보도자료만으로 충분히 작성할 수 있는 기사들이다. 그런 ‘팩트’를 굳이 확인하러 홍콩까지 간 건 아니었다. 게다가 평소 아이돌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 아닌지라 더더욱 그들의 공연을 보러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왜? 두 가지 이유에서다. 올해 MAMA는 ‘크리에이터스 포럼’이라는 이벤트를 신설했다. 세계 각국의 음악 서비스 업체, 공연 기획사, 음반 제작자 등이 모여 음악 산업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가 기조연설을 맡았으며 저스틴 팀버레이크, 미시 엘리엇 등과 작업한 팀밸런드도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그들의 이야기보다 흥미로웠던 건 아시아 각국 산업 관계자들의 시간이었다. 현재 음악 산업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돈의 시대에 놓여 있다. 약 100년간 산업을 주도해왔던 ‘음반’의 시대는 진작 끝났고 그 뒤를 이은 다운로드 시장도 하향세다. 스트리밍이 산업을 주도하고는 있지만 음반이나 다운로드와는 달리 이용자들의 월정액 지불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 이전과는 성장률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건 한국 시장만의 화두일까? 그렇지 않았다.
중국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규모를 산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불법 복제의 천국이었지만 위챗, QQ 같은 SNS와 연동한 QQ뮤직이 출범하고, 텐센트 페이먼트를 통한 간편 결제가 일상화되면서 디지털 음원 시장은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QQ뮤직은 1년 동안 유료 사용자 1300만명을 유치했으며 매 분기 300만명씩 가입자가 늘고 있다. 지금은 하루 평균 1억명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과연 대륙의 스케일이라 할 만한 규모이자 속도다.
QQ뮤직 대표인 앤디 응이 이날 발제에서 이야기한 것은 ‘스트리밍 이후의 시장’이었다. 이 화두는 비단 중국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타이완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음원 사업을 하는 KK박스의 조셉 챙, 유튜브 아시아·태평양 총괄인 토니 앨리슨 등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이후의 대안을 논했다. 대안의 결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스트리밍이라는 온라인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이끄는 방법이었다. 그 공통점은 바로 공연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중음악의 역사는 복제에서 출발한다. 음반이라는 복제물의 탄생은 음악 감상이라는 행위를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그 이전에 인간이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공연을 보는 것 말고는 없었다. 특정한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했고 특정한 공간에 가야 했다. 하지만 음반의 출현으로 집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게 가능해졌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의 성장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반을 보급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음반을 듣게 됨으로써 스타 시스템의 규모 또한 커졌다. 음반에서 다운로드로,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산업의 축이 옮겨질수록 복제된 음악의 전파력 또한 커진다. 음악을 쉽게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하는 가수의 실물과 육성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 욕망도 커진다. 복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즉 공연 시장을 키우는 것이 성숙 단계에 이르고 있는 스트리밍 이후의 정답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래서 QQ뮤직도, KK박스도 중·소규모의 공연장을 지역마다 만들고 있으며 유튜브는 팝업 스페이스를 세워 사용자들이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는 듯한 경험을 가능케 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있다.
음악 접근의 용이성은 또 다른 현상을 만들고 있다. 바로 파편화와 세계화다. 팀밸런드는 한국 가수 에릭 남과의 협업을 소개하며 말했다. “세계는 잘게 쪼개지고 있다. 더 이상 미국 출신이라고 국제적 규모의 스타가 되기는 힘들다.” 크리에이터스 포럼이 끝난 후 열린 MAMA 본시상식에서 그의 말은 증명됐다. 출연한 가수 대부분이 한국 아이돌이었는데도 출연자를 소개하는 MC가 따로 없었기에 무대에 오른 아이돌 가수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객석의 아시아 관객들은 전주가 울림과 동시에 환호했다. 엑소와 방탄소년단의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거기엔 국적이 없었다. 오직 취향의 경계가 있을 뿐이었다. 갤런트, 팀밸런드, 위즈 칼리파 등 서구 스타들이 공연할 때 오히려 객석이 조용했다는 사실이 그 단편적 증거다. 20세기 음악 산업의 진리와 같았던, 전 세계 배급·홍보망을 가진 음반사가 세계의 취향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진작 끝났음을 한국의 아이돌과 아시아 관객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세기의 음악팬에게 영어가 팝을 이해하기 위한 열쇳말이었듯, 지금 케이팝 팬들에겐 한국어가 이와 같은 존재였다. 행사가 거의 끝날 무렵, 혼잡을 피해 먼저 나왔다.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해 로비에서 귀동냥을 하고 있던 20대 초반 여성이 내 목에 걸린 프레스 비표를 가리키며 말을 걸었다. “그거 줄 수 있어요?” 꽤 그럴싸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싱가포르에서 온 엑소 팬이었다. 국경 없는 팬심의 시대가, 온몸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