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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기지는 가고 김정은은 오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보수 강경 인물들로 내각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관련 정책은 전향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이익과 맞는다면 북한과 평화협정도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제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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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진면목은 과연 무엇일까?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온갖 막말로 반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보수 강경 인사들의 전진배치로 또 다른 네오콘 정권 아니냐는 시비에 휩싸였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법무·국방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인선을 지켜본 국내 일부 언론은 트럼프가 ‘거꾸로 선 네오콘’에 불과하다며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보수 강경 인사’의 전진배치 이면에 전혀 다른 모습도 감지된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대선 승리 후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를 논의하기 위한 비공식 자문그룹 회의가 가동되어왔다. 이 자리에는 전 정부의 대외정책 경험자부터 공화당 계열의 학자·전문가 그룹 등이 참여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및 국제관계 우선순위와 외교·안보 인사 인선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한반도 문제뿐 아니라 나토 문제 등 주요 국제관계 현안이 거론됐다.

우리의 관심사는 한반도 관련 논의 내용들이다. 특히 두 가지 대목이 눈에 띈다. 대북정책과 사드 문제다. 그동안 국내 언론은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나 맥파랜드 부보좌관, 마이크 폼피오 CIA 국장 등이 대북 강경 발언을 해온 초강경 인사들이라는 점을 들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뛰어넘는 초강경 대북정책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그러나 내부 논의 내용은 좀 달랐다고 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강경 대응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단, 조건이 있다. 북한이 먼저 도발을 할 경우다. 그렇지 않다면 먼저 대화를 시도해보겠다. 압박을 할지 어떨지는 그다음의 일이다.’

ⓒEP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유세 기간 타국의 내정과 국제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물론 맨입으로 대화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대화에 응하도록 압박할 수단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북한에 식량과 원유를 지원하는 중국이야말로 북한을 통제할 능력을 가진 나라라고 주장했다. 즉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 카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을 대북 지렛대로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에서 12월2일 트럼프가 37년의 금기를 깨고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전화통화 회담을 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대북 문제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은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타이완 카드를 흔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다면 트럼프 진영이 염두에 두고 있는 대북 협상 카드는 무엇일까. 트럼프의 저서 <불구가 된 미국>에 따르면 협상에 임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은 이쪽의 패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지난해 11월 출판된 <불구가 된 미국>은 트럼프가 대선 행보를 시작하면서 출사표 격으로 내놓은 책이다). 그런데 대북 문제에서는 이미 미국이 쓸 수 있는 패가 매우 한정되어 있다. 지난 20년간 대북제재부터 선제공격론까지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봤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바로 평화협정 체결이다. 트럼프 진영의 내부 협의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지난 20년간 미국 대북정책은 철저히 실패했다고 본다. 클린턴-부시-오바마 행정부까지 모두 실패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 핵무기·핵기술·핵시설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일부 인사는 여기에 핵 자원(우라늄)을 추가하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서 평화협정 체결 외에 무슨 다른 선택이 있나 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AP Photo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위)과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만남이 성사될지 관심을 모은다.
“김정은과 햄버거 먹으며 대화하겠다”

트럼프 자신이 바로 이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선 기간 그는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를 시작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미국에 온다면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이 즉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평화협정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얘기다. 앞의 소식통은 “트럼프 자신이 왜 미국이 지난 20년간 북한에 매달려왔나. ‘Peace Treaty(평화협정)’ 하면 끝나는 것 아닌가 얘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당근도 채찍도 필요없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20년간 미국 역대 정부가 평화협정을 선뜻 맺지 못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동아시아 전략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들이 가로놓여 있다. 당장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 내지는 철수 문제가 걸린다. 또 정전협정이 폐지되면 정전체제를 존립 기반으로 해온 유엔사령부가 해체 절차를 밟게 된다. 유엔사 해체는 다시 주일 미군의 일본 내 주둔군 지위를 위협한다. 현재 주일 미군은 유엔사 후방 지원기지라는 자격으로 일본에 주둔해 있다. 그 전제는 한국의 정전체제이다. 정전 상태가 해소되면 유엔사뿐 아니라 유엔사 후방 기지인 주일 미군 주둔 근거도 사라지게 된다.

역대 정부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이 엄청난 도미노가 트럼프 정부에서는 문제가 안 된다. 그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의 국가 채무다. 미국 국가 채무는 19조6500억 달러로 늘어났다. 현재 미국의 상황은 구소련 붕괴의 전야와 마찬가지라는 게 트럼프 측의 인식이다. 냉전 이후 미국이 국제관계에서 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이미 대선 유세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한·미 동맹, 미·일 동맹 등 기존 동맹정책을 유지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지금까지처럼 국제분쟁에 개입하거나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동맹국을 동원해 중국이나 러시아를 포위하거나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이미 유럽에서는 나토에 대한 관여를 줄이겠다고 밝혔고, 아시아에서는 오바마의 재균형 전략(Rebalancing 또는 Pivot to Asia)을 계속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미국의 보호가 필요하다면 실수요자 부담 원칙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평화협정과 관련한 트럼프 진영의 생각은 매우 명쾌하다. 평화협정만큼 북한과 미국이 서로 동의하고 안정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느냐는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해서 미국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유엔사는 어차피 외국과 연합 군사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과 어긋난다. 주한 미군 철수 역시 미국으로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다. 다만 한국이 불안하면 주둔 비용을 더 내라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을 한국이 지불하기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과 별개라고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시사IN 조남진
트럼프는 한반도 사드 배치에 부정적이다. 위는 김천시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

트럼프의 외교·안보 진영 인선을 보고 부시 정권 초기의 대북 강경 정책을 연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선된 이들의 과거 행적에서 월가의 호전적 투기자본과 연결된 네오콘·군산복합체 연합과 겹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싱턴 소식에 밝은 전문가들은 주로 군 출신으로 과거 이슬람과의 테러 전쟁에서 선두에 섰던 것은 사실이지만 네오콘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물론 현재 네오콘들이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을 필두로 선을 대기 위해 극성이고 또 이들의 강경 이미지 때문에 같은 편이라고 믿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는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는 이들의 성향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역시 트럼프 진영의 정책 방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드 문제를 거론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 트럼프 진영은 사드 배치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다. 트럼프 자신부터 지난 7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일본 등에 MD 시스템이)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실질적으로 쓸모가 없었다”라며 ‘MD 무용론’을 주장했다. 무엇보다 사드는 타국의 내정이나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대외 전략 구상과 충돌한다. 과거 정권들과 달리 동맹보다는 중국·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트럼프로서는 특히 그렇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유난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중동 정책에서 푸틴 대통령과 손을 잡고 IS(이슬람국가)를 제거하고 시리아를 안정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중국에 대해서는 통상 불균형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만 해소되면 외교·안보적 충돌이나 내정간섭,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즉 트럼프 처지에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미국에 실익도 없이 중국과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일련의 비공식 회의에서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은 “대선 기간에 다른 나라에 개입과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사드 같은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트럼프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사드 배치를 철회하겠다고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한국 차기 정부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내버려두겠다는 쪽이 강하다. 즉 박근혜 정부 다음에 야권이 집권하면 사드 배치를 철회하려 할 것인데 그때 굳이 미국이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사드 배치 얘기는 미국 내에서 쑥 들어간 상태라는 것이다.

사드 문제는 한 단면일 뿐이다. 트럼프의 군비 증강 정책을 보면 그 이면에 국제분쟁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 네오콘·군산복합체 연합의 이권 구조를 깨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불구가 된 미국>을 보면 2012년부터 시작된 미국 정부의 국방비 축소 이후 미군의 장비가 형편없는 수준이 됐다고 통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래서 자신은 군수산업에 투자를 확대해서 미군을 다시 강력한 군대로 키워 위대한 아메리카의 초석으로 삼겠다고 강조한다. 군수공장 가동을 통해 제조업 일자리도 창출하겠다는 뜻이다.

군수산업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군산복합체 이익에 부합한다. 한편으로는 기존 이권 구조를 흔드는 측면이 있다. 그동안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월가의 호전적 투기자본 및 네오콘과 손잡고 동맹국 내정에 관여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수법으로 막대한 무기 시장을 창출해왔다. 국방비 삭감 이후 그 행태가 더욱 극성스러워졌다. 이들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국제분쟁을 야기하면 그 뒷감당을 미국 정부가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 부채가 치솟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미 네오콘이 주도한 아프간, 이라크 전쟁에서 5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지출됐다. 오바마 정부에서 리비아와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면서도 이 같은 행태는 계속되어왔다.

분쟁 개입 않고 정부 주도로 군수산업 육성


트럼프는 유세 기간 타국의 내정과 국제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커니즘을 차단 내지 축소해야 가능하다. 정부 주도의 군수산업 육성이 그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군수업체에 어느 정도 이익을 보장해 무기 판매를 위한 국제분쟁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이 막강해지면 싸우지 않고도 분쟁을 제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문제는 지금도 막대한 국가 부채로 허덕이는 미국 정부에 군수산업에 투자할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점이다. 그 비용을 바로 미국의 군사 보호를 받는 독일·사우디아라비아·한국·일본 등 ‘돈 많은 동맹국들’이 좀 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상이 생각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정권의 앞날은 사실 지금부터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와 정치권 주변에서 세를 유지하고 있는 네오콘과의 관계가 관건이다. 대선 기간에 네오콘은 트럼프가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고 푸틴 대통령에게 우호적이며 국제분쟁 개입을 반대한다는 점 때문에 반트럼프 운동을 벌였다. 제3후보론을 주장하거나 클린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은 과거 부시 정권 초기처럼 어떻게든 트럼프 진영에 파고들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존 볼턴이나 뉴트 깅리치처럼 개인적으로 참여한 인사들은 있으나 아직은 이들이 흐름을 형성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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