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는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갤럭시 노트7은 ‘위탁 수하물로 부칠 수 없으며, 항공기 내에서는 전원을 끄라’고 안내한다. 일부 항공사에서는 기내 반입 자체를 금지한다. 화약·도검류에 버금가는 위험물질 취급이다. 천문학적 개발비를 투입한 신제품이 판매 중단으로 치달아 최대 5조원(지난해 순이익의 30%에 해당) 규모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삼성전자의 요즘 사정은 어떨까? 주가가 치솟고 있다!

삼성전자 주식은 12월8일 현재 주당 179만원(종가 기준)으로 역대 최고다. 삼성 스마트폰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을 따돌렸던 2012~2013년보다 20만~30만원 정도 높다. 신제품의 패망으로 수익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데도 주가는 오른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의 변동 추이를 관찰해보면 상승 요인은 뚜렷하다. 바로 ‘주주가치 제고’다. 지난 11월29일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선언하자, 당일 167만7000원이었던 주가가 이튿날 174만6000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시사IN 이명익12월6일 박근혜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주주가치를 높인다(제고)’는 선언은, 기업의 수익금 가운데 좀 더 많은 돈을 주주에게 할당한다는 의미다. 기업은 사내에 쌓인 수익금을 경영 방침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임금을 인상하거나 하청업체 납품가를 올릴 수 있다. 새로운 사업 및 기술개발에 투자하기도 한다. 배당금을 늘리거나,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인 뒤 소각해서(자사주 매입:총주식 수가 줄어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주주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삼성은 사내 수익금을 투자에 사용하는 비중이 높았다. 주주에게 후한 기업은 아니다. 이런 삼성그룹이 지난해 7월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이후 수차례에 걸쳐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렸다. 급기야 주주가치를 올리는 쪽으로 기업구조를 개편한다고 선언하니, 대표 상품이 실패해도 주가는 치솟는다. 이런 기현상의 배후에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정치·경제적 전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첫 번째 이해관계자는 이건희 회장 일가다. 이 회장 일가의 목표는,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글로벌 거대기업 삼성전자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력도 굳혀야 한다. 어려운 과제다. 삼성전자가 대단히 비싼 회사이기 때문이다. 12월8일 현재 시가총액은 252조원. 지배력을 1%만 높이려 해도 무려 2조5000억여 원이 든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은 4~5%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른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갖게 하는 방식(모두 합쳐서 17% 정도)으로 지배력을 유지해왔다.

야당 의원들, 상속에 불리한 법안 발의 중  

지난해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상속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다. 당시 이건희 회장 일가는 제일모직의 전체 주식 가운데 무려 42%를 갖고 있었다.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은 고작 1.4%(계열사 지분까지 합쳐도 13.99%). 그러나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4.1%나 갖고 있었다. 제일모직에 넘쳐나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삼성물산(나아가 삼성전자 지분 4.1%)으로까지 확산시키는 방법이 합병이었다. 당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주식 7.12%를 몰래 사들인 뒤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이 불공평해서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이 회장 일가의 손을 들어주면서 합병은 가결된다. 현재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합병 삼성물산(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회사)’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31.1%에 달한다.

상속을 위한 다음 시나리오는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한 뒤 삼성물산(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회사)과 합병시켜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시사IN〉 제475호 ‘왕좌 지켜줄게 회사만 넘긴다면’ 기사 참조). 이 회장 일가가 다스리는 지주회사가 다시 삼성전자 등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인적분할은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에 대한 이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큰돈 들이지 않고 굳힐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이 회장 일가가 아무리 세계적 부자라지만, 직접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여 충분한 지배력을 확보할 만큼은 아니다. 합병 이후 삼성이 배당금을 올리고 자사주 매입을 확대해온 것은 상속 추진에 주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일 터이다. 다만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지난 4월 총선으로 여소야대를 이룬 야당들이 내년 정기국회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의 계획에 영향을 미칠 법안들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해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정치인들이다. 야권 지지자 가운데는 재벌 일가 및 대기업 집단에 비판적인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야당 의원들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상속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법안을 발의해놓은 상황이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인적분할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자사주(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전자의 주식)는 전체 주식의 12.8%에 달한다. 그렇게 해놓은 이유가 있다. 자사주는 인적분할이 단행되는 경우, 이건희 회장 일가로부터 ‘삼성전자 사업회사’로 지배력을 전달하는 고리 구실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박용진·제윤경 의원 등이 자사주의 이런 기능을 무력화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연합뉴스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삼성 갤럭시 노트7 휴대 제한과 관련한 국토교통부의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 현행법에서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을 20%(상장회사의 경우) 이상 보유해야 한다. 이 비율을 30%로 올려버리면,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는 데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삼성전자 지분을 10% 더 보유하는 데 필요한 돈은 무려 25조원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 등이 내놓은 법안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상속 시나리오를 추진하기 전에 분쇄해버릴 방안도 있다. 현재 이 회장 일가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경로는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가운데 7.75%를 보유한 대주주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토해내게 하면 이 회장 일가의 지배력 고리가 상당 부분 끊어진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현행 보험업법에서 보험사는 총자산의 3%까지만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삼성생명의 총자산(9월30일 현재)은 242조원이니 그 3%인 7조2600억원까지만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삼성생명은 과거에 삼성전자 지분 7.75%를 6000억원(취득원가)에 사서 보유 중이다. 이 7.75%의 가치는, 그동안 삼성전자 주가의 상승으로 현재 20조원에 달한다. 법률적으로 허용된 액수(7조2600억원)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도 위법이 아닌 이유는, 삼성전자 주식의 가치를 시장가격(20조원)이 아니라 취득원가(6000억원)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종걸 의원의 제안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가치를 시장가격으로 계산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20조원 가치의 삼성전자 주식 가운데 12조7400억원 상당을 의무적으로 팔아야 한다.

 

 

 

ⓒEPA지난 10월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위)은 삼성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런 법률 중 다수가 내년 상반기에 실제로 통과된다면, 삼성그룹의 해체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삼성그룹 처지에서는 ‘다급한 정세’로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다시 링에 올랐다.

세 번째 이해관계자인 엘리엇의 목표는 금융수익의 극대화다.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는 상속, 야권 정치인에게는 인기가 다른 모든 사안들을 압도하는 목표라면, 엘리엇은 금융수익 극대화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다. 엘리엇은 야심적이고 명석하며 끈덕지다. 궁지에 빠진 상대방의 멱살을 거머쥐고 벼랑 끝까지 끌고 가 승리를 쟁취하는 데 능하다. 아르헨티나를 국가부도에 빠뜨리고,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인질로 삼아 오바마 정부로부터 거액을 뽑아냈다. 당시 인질이었던 거대 부품업체 델파이의 본사를 영국의 저세율 지역으로 이전시키기도 했다(〈시사IN〉 제406호 ‘엘리엇이 나타났다’ 기사 참조).

엘리엇 황당 요구에 쩔쩔매는 삼성

엘리엇은 지난 10월5일, 삼성 경영진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번에는 웃는 얼굴이었다. 이 회장 일가가 오매불망 갈망했을 인적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을, 엘리엇이 도리어 제안한 것이다. 등 뒤로 감춘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30조원의 특별 현금배당, 그리고 앞으로 삼성전자가 벌어들일 잉여현금흐름(기업이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 세금·영업비용·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한 현금) 가운데 75%를 주주들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3인 이상의 (경영자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는 이사’를 요구한 이유는, 이 같은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삼성 경영진에게 강제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11월29일 삼성전자 이사회의 ‘주주가치 제고’ 선언은 엘리엇의 제안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다. 2016년과 2017년 잉여현금흐름의 50%를 주주에게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총배당 규모도 지난해보다 30% 증가한 4조원 정도로 늘릴 계획이다. 이사회에도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를 한 명 이상 받아들일 의향을 밝혔다.

12월6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는 “(삼성그룹은) 기업가치보다 지분과 세습에만 관심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럴 것이다. 다만 과거 이건희 회장은 ‘가문의 영광’이라는 ‘사적 동기’를 위해서라도 삼성전자를 발전시켜야 했다. 선진국 기업들이 사내에 쌓인 수익을 주주들에게 배분할 때 삼성전자는 기술개발과 사업 확장에 투자했다. 그 덕분에 1990년대의 ‘2류 기업’에서 현재의 글로벌 거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 상황에서는 이 회장 일가의 ‘사적 동기’가 1990~ 2000년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궁지에 몰리자 ‘가문의 영광’을 상속하기 위해 엘리엇과 손을 잡고 주주가치 제고 쪽으로 경영 기조를 트는 낌새다. 11월29일 이사회의 선언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제도적 틀을 갖추게 되면, 삼성전자의 ‘기업가치(주주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배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상승할 것이다. 다만 투자보다 주식시장에서의 인기몰이에 골몰하면서 1990년대 이후 보여준 혁신성을 상실하는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신제품의 유례없는 패망에도 불구하고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가치 제고로 주가를 올릴 수 있는데, 굳이 불투명하고 골치 아픈 투자에 목맬 필요가 있겠는가.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