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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척하거나 바보인 척하거나

박근혜 게이트 진상조사를 위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12월6일과 7일 열렸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국회의원들이 중복 질문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재벌 봐주기를 했다고 평가했다.

신한슬 기자 hs51@sisain.co.kr 2016년 12월 21일 수요일 제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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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정조사 청문회를 중계한 국회방송이 사상 최고 시청률(0.397%)을 기록했다. 135개 케이블TV 채널 중 4위의 성적이다. 국회방송 외에도 4개 종합편성채널, 포털 사이트, 인터넷방송도 일제히 청문회를 실시간 생중계했다.

<시사IN>은 정회 시간을 포함해 27시간 동안 진행된 1차(12월6일), 2차(12월7일) 박근혜 게이트 청문회의 뒷이야기를 날것으로 전한다. 박근혜 게이트를 추적한 <시사IN> 기자들이 모여서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솔직한 방담을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혼이비정상(혼):취재기자들은 아침 일찍 가서 재벌 총수들이 들어오는 걸 지켜봤다. 어땠나?

무거운얘기(무):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입장할 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두꺼운 패딩을 입은 무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시민단체와 유성기업 노조원이 플래카드를 펼치며 구호를 외치자 이들은 시민들의 안경을 날리고 현수막을 뺏고 손팻말을 찢었다.

ⓒ시사IN 신한슬
12월6일 청문회장 입구에서 정몽구 회장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시민들을 제압하고 있다.
참바쁜벌꿀(참)
:손팻말을 앞에서 막은 게 아니라 뒤에서 목을 잡아채고 질질 끌고 갔다. 점심시간에 정몽구 회장 뒤를 따라가는 기자를 뿌리치려고 어깨도 잡고 밀어냈다. 기자가 그들을 카메라에 담자 왜 찍느냐며 화를 냈다. 재밌는 건 국회 사무처도 그 사람들에게 열받은 것 같았다. 다 나가라고 쫓아내며 “여기가 어디라고 대우받으려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국민담와(담):1차 청문회를 보니 확실히 나이 들고 산전수전 다 겪은 회장님과 재벌 3세는 차이가 나 보였다. 흙수저가 금수저보다 나은 느낌이랄까. 이재용 부회장은 깜짝 놀랐다. 스마트한 이미지였는데, 막상 ‘데뷔 무대’는 그렇지 않았다. 발언 텍스트보다 영상이 충격이었으니 생중계를 안 본 분들은 꼭 봤으면 한다.

:연출이다. 바보같이 보여서 빠져나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질문에는 다 송구하고 부끄럽고 아랫사람 잘못이라는 식이었다. 의원들이 더 따져 물어야 하는데, 사람 이름 같은 기본적인 걸 틀리는 모습을 보였다. 제대로 준비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나마 가장 이슈가 된 삼성전자의 전경련 탈퇴나 미래전략실 해체를 모두 여당 의원이 이끌어냈다. 새누리당 비박계 장제원 의원, 하태경 의원이 돋보였다. 야당 의원 하면 잘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웃음). 그만큼 야당이 아쉬웠다.

:청문회 시작 전부터 야당 공조가 잘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와중에 자기 지역구 민원을 넣는 의원도 있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과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다. 이용주 의원(전남 여수갑)은 마지막 질의에서 “롯데는 여수에 화학공장 있는데 왜 지역사회에 더 공헌을 못하느냐. 잘 하실 겁니까?”라고 신동빈 회장에게 다그쳤다.

:더 웃긴 게 신동빈 회장이 그 말을 받아서 투자를 더 하고 싶어도 마트나 슈퍼는 규제 때문에 못한다며, 규제를 완화해주면 투자를 하겠다고 ‘역민원’을 넣었다.

ⓒ사진공동취재단
12월7일 박근혜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시간 아까운 장면이 많았다. 국민이 준 시간이고, 얼마나 궁금한 게 많았는데.

연쇄송구범(연):의원들 질문 시간 7분이 너무 짧다. 정치인 노무현을 청문회 스타로 만든 5공 청문회 질의 시간은 30분이었다. 또 지금은 1분30초짜리 영상 클립으로 의원들의 발언이 소비되기 때문에, 서로 협력해서 질문을 이어서 할 인센티브가 없기도 하다.

:특히 이완영 의원이 재벌 총수들을 ‘조기 퇴근’시켜주자고 한 장면에서 폭발했다. 체력·집중력 싸움인데 지쳤을 테니까 빼주자는 게 말이 되나. 결국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손경식 CJ 대표이사, 김승연 한화 회장 순서로 일찍 퇴근했다.

:구본무 LG 회장이 청문회장을 떠날 때 쫓아갔는데, 아주 밝은 표정으로 경보하듯이 가서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20대보다 빠르더라(웃음).

:점심시간 2시간 주고, 중간에 정회도 해주는데, 끝까지 앉아 있지도 못하면서 고도의 판단이 필요한 기업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총수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2차 청문회 하이라이트는 안 나온 증인들이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찾아서 국회 직원들이 논현동도 가고, 충북 제천, 경기 시흥도 갔다.

:자연스럽게 오전 10시부터 동행명령장 발부가 쟁점이 됐다. 맨 처음 발언한 하태경 의원이 최순실씨의 불출석 사유서를 공개하며 ‘공항장애’(공황장애의 오기)라고 썼다고 밝혔다.

:안봉근 전 수석은 사춘기 딸 때문에 출석할 수 없다고 했다.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정유라씨도 소재지를 알 수 없으면 송달을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갔다. 고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데, 안 나가고 그 대가를 치르면 끝이다. 이게 뭔가 싶다.

:그래서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강제로 구인할 수 있는 법안이다.

:오후에 장시호씨가 출석하면서 증인 불출석 논란은 좀 잦아들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을 벌어서 국정조사 대비를 한 게 아닌가 의심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김기춘 증인에게 “(세월호 시신 인양 반대 의혹 부분에 대해) 당신은 절대 천당 못 갈 거다”라고 소리쳐줬던 것이다. 보기에 따라 막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신 인양조차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하는 사람에게, 국민을 대신해서 저 정도는 화를 내줘야 하지 않나. ‘시신 인양 X, 정부 부담’이라는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다이어리 내용을 그대로만 다시 읽어줬는데도 열받더라. 김기춘 전 실장은 나중에 “시신을 인양하지 않으면 정부에 부담이 된다는 취지”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이 김기춘 증인한테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나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그만둔 뒤 좋은 자리를 마련해줬으면 이런 일 없지 않았겠느냐”라고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더라. 낙하산 장려도 아니고.

:고영태 증인이 밝힌 ‘옷값’ 얘기도 크다. 도매가 4500만원 상당의 옷을 최순실씨가 샀다는 정황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지불내역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이 말하기도 했다. 이게 사실이면 뇌물로 간주될 소지가 있다.

:<시사IN> 기사도 활약했다. 장시호 증인이 처음에는 대포폰을 쓴 적이 없다고 했다가, 장제원 의원이 <시사IN> 기사를 그대로 읽는 듯이 “하얀색 대포폰 두 개 쓰잖아요”라고 추궁하자 인정했다(제481호 “안심해, 대포폰이야” 기사 참조).

:마무리로 각자 이번 청문회 최고의 인물과 최악의 인물을 뽑아보자.

:최고는 여명숙. 유능하고 멋있어 보였다. 큰일 하실 분이다(웃음). “재갈을 물려도 알아서 뱉어내야 할 때다” 등등 명언을 남겼다. 최악은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재벌 총수들은 먼저 보내주고, 참고인으로 온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이사에게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냐”라며 물타기를 시도했다.

:최고는 포털 사이트. 국정조사 청문회가 포털 메인에서 생중계된 게 처음이었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드러내준 대표적인 장면이 아닐까. 그걸로 국회를 지켜본 감시자들을 최고의 인물로 꼽고 싶다. 최악은 역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일부러 그런 건지 실제 캐릭터인지 몰라도, 굉장히 책임 없는 태도였다.

:실력으로 보면 최고의 인물은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 아닐까? 막판에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몰아세우면서 장시호씨 사업 지원한 건 삼성전자 돈이라고 털어놓게 했다. 최악의 인물은 김기춘 증인이다. 결국 최순실 존재조차 모른다고 일관하다가, 물증 들고 압박하자 겨우 말을 바꿨다. 지인은 아니라고. 질리더라. 심지어 막판에는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데 팽목항을 평택항이라고 잘못 말했다. 말실수할 게 따로 있지.

:최고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손혜원 의원에게 김기춘 증인의 위증을 제보한 누리꾼이다. 쌍방향 청문회, 실시간 참여 청문회가 실현됐다. 최악은 역시 김기춘 증인이다. 국회 청문회가 처음이 아닌데, 그때마다 나이 들어서 기억이 안 난다는 식이다. 계산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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