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7일에 막 도착한 〈김광석, 다시〉를 듣는다. 이 글을 쓰기 전, 이 음반을 향한 비판조의 몇몇 글을 목격했다. 주된 논리는 대개 다음과 같았다. 첫째, 대기업의 상술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참여 가수들이 김광석과는 별 연이 없다는 것이다. 글쎄, 일견 고개를 끄덕였지만, 음악이라는 것의 ‘영향력’과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조금은 불공평한 시각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건, 결과물 그 자체일 테니까 말이다.
1번 곡 ‘너에게’를 듣고,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2번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다 감상했을 땐, 이 음반이 지향하는 기조를 충분히 감지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이 앨범은 ‘김광석 음악의 확장판’이다.
이 음반에서 대부분의 가수들은 기존 원곡에서는 들을 수 없는 몰아치는 현악과 연주로 스케일을 극대화해 음악적인 감동을 전달하려 한다. 여기에 김광석의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팝 쪽으로 말하자면 냇 킹 콜과 내털리 콜의 ‘언포게터블(Unforgettable)’을 앨범 전체로 구현한 케이스랄까. 확장이라는 개념은 여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광석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놀랍다. 10년이 두 번이나 지났음에도, 그의 보컬은 현대적인 편곡과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섞여 듣는 이들에게 강한 집중력을 끌어낸다. 사망한 아버지와 살아 있는 딸의 화음을 통해 그래미까지 석권한 ‘언포게터블’이 나온 게 1991년이었다.
그사이 신해철·윤상·이승환 같은 가수들의 노력으로 국내 레코딩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했고, 세상을 노래했던 김광석과 세상을 노래하는 가수들의 이런 만남을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이뤄지게 했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은 콘텐츠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 인생의 결 자체를 달라지게 한다. 스마트폰을 든 당신의 모습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라이브를 봤더라면
페이스북에 김광석을 그렇게 애정하진 않았다고 고백하자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 댓글들은 거의 한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해줬다. “라이브를 네가 못 봐서 그래.” 그래서 더욱 아쉽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나는 그가 광화문의 광장에 섰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더 깊어진 목소리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노래했을 것이고, 셀 수도 없이 많은 관객들은 그를 향해 더 커다란 목소리로 화답했을 것이다. 양희은의 ‘상록수’에 버금가는 전율스러운 순간이 분명 거기에 머물러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지금 〈김광석, 다시〉가 굉장한 걸작이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앨범에도 어떤 가치는 존재하고, 그걸 곱씹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상상해본다. ‘일어나’가 광장에서 그의 벼락같은 목소리를 통해 퍼져나갈 때의 감격을.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그의 노래를 대신해 앞으로도 불러줄 것이다. 노래는 계승되고, 삶은 이어진다. 모두에게 응원을. 파란 지붕 밑에서 의자에 앉아 머리하고 있을 한 사람만 빼고.
-
슬픔의 성지에서 들려오는 노래 [음란서생]
슬픔의 성지에서 들려오는 노래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매주 화요일,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해 음악을 한 곡 소개한다. 과거에는 나 혼자 출연해 가요든, 팝이든, 월드 뮤직이든 가리지 않고 음악을 두 곡이나 선택했다. 함께하는 게...
-
음악 스타일 바꾸니 우주의 기운 모이네 [음란서생]
음악 스타일 바꾸니 우주의 기운 모이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될성부른 떡잎’ 같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른바 ‘천부적 재능’이라는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일종의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음악을 듣다 보면,...
-
마음을 툭, 하고 떨어뜨리는 소리 [음란서생]
마음을 툭, 하고 떨어뜨리는 소리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바이닐(LP)을 샀다. 블루레이도 샀다. 책을 조금 샀는가 하면 새로 나온 만화책도 왕창 사버렸다. 못해봤던 게임들도 좀 샀다. 과연 나는 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무스(Homo ...
-
그들이 낮게 가도 우리는 높게 듣자 [음란서생]
그들이 낮게 가도 우리는 높게 듣자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답답하다. 국면이 해결될 기미가 좀체 보이질 않아서일까. 어느새 분노를 넘어 짜증이 밀려오면서 일상생활에서 내가 할 일에까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진실로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