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뉴스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접했다. 〈시사IN〉은 매년 고등학생 대상으로 무료 강연(리더십 포럼)을 진행한다. 그날 충북인재양성재단과 사전 미팅이 있어 내려가던 길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속보를 확인했다. ‘전원 구조’ 뉴스가 떴다. 사회팀장이었던 나는, 혹시 몰라 김은지 기자에게 모니터를 지시했다. ‘불행 중 다행이네.’ 미팅에 들어가며 휴대전화를 껐다. 끝나고 휴대전화를 켰는데, 손이 떨렸다. 사회팀 기자 전원을 취재 중인 현장에서 뺐다. 진도체육관으로, 안산으로 급파했다. 그날 저녁, 밥 생각도 안 났다. 안산 단원고 취재를 다녀온 송지혜 기자는 책상에 앉아 울기만 했다. 팽목항 현장에서 보고를 하는 후배들 목소리에도 물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모질게 후배들을 다그쳤다. ‘울라고 취재를 보낸 게 아니다’ ‘너는 액티비스트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다’. 그건 내게 한 독백이나 다름없었다.


후배들이 현장에서 건져낸 날것을 취합해 대표 집필을 했다. 아들 주려고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조 아무개군의 엄마 이야기 대목에서 나는 무너졌다.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지시에 따라 친구들과 대기하는 사진을 아빠한테 보냈던 현진군 이야기도 눈시울을 붉게 했다. 기사는 최대한 건조하게 썼다. 기사를 마감하고 퇴근한 나는 여섯 살 아들을 꼭 껴안아 주었다. 지금도 세월호 참사 당일만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답답하고 먹먹하다. 나도 이런데, 유가족들은 어땠을까?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이 낸 43쪽짜리 탄핵소추안을 읽어보았다. ‘생명권 보장 조항 위배’라는 항목에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직무유기 혐의가 포함되었다. 박영수 특검도 7시간의 진실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판단을 할 것이다. 이제 세월호 7시간은 논란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날도 평소처럼 혼자 밥을 먹고 ‘후까시 머리’를 했다. 평소에도 관저에 머문다고 한다. 전혜원 기자 취재에 따르면, ‘관저+집무실’은 박근혜 정부의 신조어다(〈시사IN〉 제481호 ‘청와대 출신들, 관저 집무실이 뭔가요?’ 기사 참조). 그날도 박 대통령은 출근을 안 했다. “최순실씨는 세월호의 노란색만 봐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고영태씨는 청문회에서 폭로했다. 정서적·경제적 동지 관계였던 박 대통령도 아마 ‘노란색 알레르기’ 증상이 있었을 것이다. 조대환 변호사를 민정수석 자리에 앉히는 데 사실상 마지막 인사권을 쓴 것도 이런 증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추천 몫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조 변호사는 특조위의 세월호 7시간 조사를 두고 “세금 도둑”이라고 비판한 장본인이다. 탄핵소추안 통과는 끝이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말처럼 “이제 시작이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이 지켜보고 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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