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국의 성(전 2권)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검은숲 펴냄한국의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수년 동안 눈 빠지게 기다려온 작품이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요즘 보기 드문 ‘본격 미스터리(공정한 수수께끼 풀이)’의 공식을 끈질기게 견지해온 작가다. 본격물이 빠지기 쉬운 무미건조한 딱딱함이나 피범벅의 자극을 넘어 논리와 재미를 슬기롭고 능란하게 조율할 줄 안다.몇 차례에 걸쳐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예기치 않은 살인 사건을 만나게 된 탐정 그룹(대학 추리소설 동호회)이 이번에는 산속 오지마을의 신흥 종교 본부에 격리된다. 이런 비일상적 공간에서 불가사의한 연속 살인이 벌어지고 젠체하는 탐정의 ‘합리적 설명’을 듣는 과정은 뻔하지만 비일상적이어서 흥미롭다.

바꾸어라, 정치마누엘라 카르메나 지음, 유아가다·유영석 옮김, 푸른지식 펴냄사법부총평의회 대변인 시절부터 그랬다. 관용차를 거부했다. 비행기는 일등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탔다. 심지어 대변인에게 제공되는 서류 가방마저 거부했다. 회색 비닐봉지에 서류를 넣고 다녔다. 주인공은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시 마누엘라 카르메나 시장. 그녀는 2015년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71세의 나이로 시장이 됐다.시장 취임 이후 특권과 권위를 거부하는 보폭은 더 넓어졌다. 시 소유 골프장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시민들과 소통한다. 정치인은 정당이 아니라 시민을 대표해야 한다는 소신을 매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전한다. 

펜타메로네잠바티스타 바실레 지음, 정진영 옮김, 책세상 펴냄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민담’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아라비안나이트〉나 〈캔터베리 이야기〉, 심지어 조선시대의 〈고금소총〉 같은 ‘민담 채록집’도 마찬가지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음란하며 거칠고 기괴하며 폭력적이다. 〈펜타메로네〉는 17세기 당대의 이탈리아 구전 민담을 집대성한 액자소설이다. 모두 50편의 ‘썰’을 담고 있다. 친오빠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손을 잘라 보내는 처녀, 자신의 살가죽을 벗겨 젊어지려 하는 노파 등 근대적 합리성 이전의 비합리적 욕망과 주술들로 충만하다. 이런 민담들이 유럽을 자극해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설공주〉 〈라푼젤〉 등 ‘세계적 동화’를 탄생시켰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엄기호 지음, 창비 펴냄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와 강남역 살인사건, 구의역 사고를 지나 ‘박근혜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우리에게 망각을 요구할 뿐이다. ‘싹 다 망하는 것’만이 한국 사회에서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공평함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망함’을 기원하는 목소리에서는 남녀노소나 지역의 차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현실을 바꿀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현실을 날려버리는 것(reset)만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즐거운 상상이 된다.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많은 것이 바뀌어왔다. 책은 1987년의 민주주의가 멈추었던 자리를 살피고 그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을 검토한다. 

개가 가르쳐주었다오쓰카 아쓰코 지음, 유은정 옮김, 돌베개 펴냄일본 시마네 현에는 ‘사회복귀촉진센터’가 있다. 자잘한 범죄를 저지른 초범 2000여 명이 모여 갱생 훈련을 받는다. 2009년 봄, 이곳에 생후 두 달 된 작은 강아지 세 마리가 들어온다. 재소자들이 할 일은 단순히 개를 키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강아지들은 미래의 맹인 안내견을 꿈꾸는 훈련견이기 때문이다. 책은 이 센터가 2009년부터 교정 프로그램 중 하나로 운영하고 있는 ‘안내견 강아지 육성 프로그램’의 성과를 다룬다. 작은 강아지가 성견으로 자라서 세상으로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보다 더 많이 변하는 사람의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개는 재소자는 물론이고 지역 주민의 삶을 함께 변화시켰다. 한국에도 도입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목격자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옛 소련의 벨라루스에서 전쟁을 경험했던 어린이 101명의 목소리를 묶었다. 벨라루스는 소련 서쪽 경계선에 위치한 까닭에 우크라이나·리투아니아와 함께 다른 어떤 지역보다 더 극심한 참상을 겪었다. 벨라루스의 마을 628개는 주민과 함께 불살라졌고, 인구의 4분의 1이 사라졌으며, 1945년 전쟁고아의 수는 2만5000명에 달했다.저자는 그 속에서 가장 작고 무기력한 어린이라는 존재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들은 전쟁이 가져온 잔혹하고도 참혹한 폭력을 지켜보기만 했던 건 아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 책은 아이들이 자신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전쟁 기록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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