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밑에 살면서 듣는 새소리 중 가장 흥미로운 건 청딱따구리 소리다. 힛히히히히 하는 게 꼭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나랑 한번 붙어볼래?’ 하는 도전처럼 들리기도 해서 정신이 번쩍 난다. 녀석을 좀 자세히 보고 싶은데 이 무딘 눈에는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정말 선물처럼 〈청딱따구리의 선물〉을 만났다.

우리 그림책 수준이 세계적인 건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논픽션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취가 있다는 것도 언급되어야 한다. 자연·인문·사회과학 어느 분야든 논픽션은 픽션보다 어렵다. 과학적 사실에서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사실 이상의 아름다움과 의미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그 대상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가, 얼마나 꼼꼼히 관찰하고 연구했는가가 보여야 한다. 엄격한 과학적 지식 위에 따뜻한 감성과 열린 상상력이 더해진 논픽션은 픽션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청딱따구리의 선물〉은 그런 논픽션 중 하나다. 청딱따구리, 물까치, 박새, 울새, 뱁새, 곤줄박이…. 가까운 산에서 볼 수 있는 텃새나 철새들을 아름답고 정교한 세밀화로 보여주는 이 책은 도감 이상의 자리에 있다. 문제와 해결, 갈등과 해소, 해피엔딩 같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살짝 깔린 사랑스러운 스토리와 깔끔한 글 덕분이다.

〈청딱따구리의 선물〉 이우만 글·그림 보리 펴냄
섬세한 관찰이 금세 튀어나올 듯한 생동감으로

유난히 가문 봄날, 둥지를 만들다 지친 청딱따구리가 바위 밑에 조금 고인 물을 찾아낸다. 녀석은 물을 마시고 난 뒤에도 다른 새의 재촉은 아랑곳 않은 채 공사를 시작한다. ‘큰 돌을 부리로 쿡 집어 치우고, 젖은 흙은 호미질하듯 파헤’치는 작업 끝에 생긴 것은 작은 목욕탕. 청딱따구리가 떠난 자리에 다른 새들이 찾아와 마른 목을 축이고 지친 몸을 씻는다. 수다쟁이 뱁새들에게는 공중목욕탕이 될 만큼 넉넉하다. ‘자기가 욕심껏 만든 물웅덩이가 숲속 작은 새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되었다는 것’을 둥지를 완성한 청딱따구리는 알까? 글은 그렇게 맺어진다.

작가는 후기에서, 처음에는 다른 새들에게 양보하지 않는 청딱따구리가 얄미웠지만 작은 새들이 즐겁게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는 미안해졌노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이런 일을 눈앞에서 지켜볼 만큼 충분히 오래 새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 숨죽인 시간이 책 속에 겹겹이 쌓여 예사롭지 않은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뒹굴고 파닥이며 목욕을 즐기는 장면들은 금세 튀어나올 듯한 생동감을 선사한다. 새들이 놀라워하거나 초조해하거나 흡족해하는 표정, 결연하거나 골똘한 얼굴에, 작가가 그랬듯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진다. 이제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모습을 보려고 두리번거린다면 작가는 고마워할 것 같다. 책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일, 그것이 논픽션의 목표이자 보람일 터이니, 나도 청딱따구리를 목격하는 일에 끈기를 장착하고 다시 도전해볼 참이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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