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 조사는 매번 요란했다. 평소 대면할 수 없었던 인사들이 포토라인에 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을 나갔다. 수사관들은 압수수색 상자를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부패 사슬을 끊겠지.’ 기대가 컸다. 그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압수수색 상자 안에는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포토라인에 섰던 인사들은 기소도 되지 않았다. 법원이 발부한 계좌추적 영장 가운데 일부는 집행도 하지 않았다. 1199개 차명 계좌에서 발견한 4조5000억원. 하지만 비자금은 한 푼도 찾지 못했다. 이 돈이 전부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피의자의 항변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팀은 실패로 끝났다.


세금 25억원을 쓴 특검팀 수사는 ‘이건희 재산 찾아주기’로 막을 내렸다. 불법 승계 수혜자에겐 오물 한 점 튀지 않았다. 포토라인에 정확히 멈춰선, 먼지 하나 묻지 않았던 이재용 부회장의 구두코가 내겐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기소도 되지 않았다. 검찰 내 부패상도 그렇다. 특검팀에 검사들이 파견 나갔고, 수사 정보는 대검찰청으로 흘러들어 갔다.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 김성호 국정원장, 이종찬 민정수석 등이 ‘삼성 장학생’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특검은 ‘떡값 검사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증거 불충분’ ‘공소시효 만료’라는 법률 용어로 포장되었다.

기소된 이건희 회장은 대법원에서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는 무죄, 조세포탈 혐의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구속은 면했다. 1년 뒤 이 회장은 ‘원포인트’ 사면을 받았다. 단 한 명을 위한 사면은 이례적이라고 언론이 비판하자, 법무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 등 4명이나 있었다고 ‘친절한’ 보도자료를 뿌렸다. 사면 보름 뒤 조준웅 특검 아들은 삼성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부활한다. 8년 전 특검이 단죄했다면 삼성의 악습은 뿌리 뽑혔을지도 모른다. 그 업보를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는 검찰 게이트다. 김기춘·우병우의 직무유기이기도 하지만 검찰총장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삼성, 그리고 검찰 내부를 단죄해야 한다. 지지율 4%짜리 식물 대통령의 뒤꿈치만 물어뜯고 끝내서는 안 된다. 이번에도 청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박근혜를, 부패한 재벌을, 정치 검찰을 만날 것이다.

특검팀에 윤석열 검사가 투입되었다. 그는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을 폭로하며 “(검찰)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윤 검사를 비롯한 특검팀은 이제 조직(검찰)보다 ‘국민의 명령’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구조하지 않으면 진실은 표류한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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