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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낮게 가도 우리는 높게 듣자

싱어송라이터 아그네스 오벨의 음악은 소리로 풍경을 그려낸다. 생소한 클래식 악기를 끌어들여 황홀하고 환상적인 세계로 안내한다. ‘유리 시민’과 같은 존재인 현대인에게 안식을 준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6년 12월 09일 금요일 제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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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다. 국면이 해결될 기미가 좀체 보이질 않아서일까. 어느새 분노를 넘어 짜증이 밀려오면서 일상생활에서 내가 할 일에까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진실로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를테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4년 전인 2012년 12월19일, 그날도 다소 화가 나기는 했지만 술로 화를 풀고 잠만 잘 잤다. “뭐 큰일이야 있겠어?”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들 절절하게 경험하고 있다시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여하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국가의 일로 인해 잠 못 이룬 적이 없었던’ 내가 요즘 잠을 잘 못 자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이런 성향이 있었나, 깨닫게 해준 점만은 고맙다고 해야 할까.

ⓒEPA
싱어송라이터 아그네스 오벨.
이럴 때 필요한 음악은, 도리어 사회적 메시지가 증발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뭐, 간단하다. 저항 정신으로 똘똘 뭉친 음악을 들어봤자 머리만 더 아플 게 뻔하니까 말이다. 고상하고, 우아하며, 아름다우면 더 좋다. 이를테면 탐미주의를 음악으로 전이한 경우라고 할까. 다행히 최근 이런 경우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음악을 만났다. 아마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이라 할 아그네스 오벨의 신작 <시티즌 오브 글라스(Citizen of Glass)> (2016)이다.

아그네스 오벨의 음악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정말이지 신비롭다 할 목소리를 기반으로 하고, 클래식 쪽에서 많이 쓰이는 악기를 적극 도입해서 한껏 ‘품격’을 높였다. 일단 아그네스 오벨이 2013년 발표한 곡 ‘퓨얼 투 파이어(Fuel to Fire)’를 들어보라. 글쎄,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2010년 이후 이 정도로 황홀한 음악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영국 유력지 <가디언>도 그랬나 보다. <가디언>은 이 곡을 두고 “정교한 편곡으로 자신의 진짜 화력을 차곡차곡 비축해놓은 곡. 스트링과 피아노를 통해 진정 아름답고, 멜랑콜리한 사운드를 조각해내며 듣는 이에게 잔잔한 파문을 전달한다”라고 평했다. 별점은 4개였다.

새 앨범 <시티즌 오브 글라스>에서 아그네스 오벨은 이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사운드 스케이프(소리로 감지하는 풍경)’를 들려준다. 자신의 장기인 첼로와 바이올린, 하프시코드는 물론이요, ‘첼레스타’나 ‘트라우토니움’ 같은 생소한 악기까지 끌어들이며 음악에서의 클래식함을 깊이 있게 일궈낸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곡 ‘퍼밀리어(Familiar)’만 찾아서 감상해보길 바란다.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을 2016년이라는 시간적 좌표 위로 자연스럽게 끌어당겨온 듯한 이 곡 하나만으로도 게임은 끝났다고 확언할 수 있다.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을 2016년 버전으로

이어지는 곡들인 ‘이츠 해프닝 어게인(It’s Happening Again)’과 ‘레드 버진 소일(Red Virgin Soil)’도 아그네스 오벨의 음악적인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다소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첼로와 수려한 바이올린이 기본 뼈대를 이루고 여기에 미니멀리즘에 기초한 피아노 연주가 더해지면, 다음은 과연 아그네스 오벨이 여신의 포스를 풍기며 등장해 이 모든 걸 부드럽게 장악하는 마법을 부릴 차례다. 기실, 이 음반의 모든 곡이 이런 식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시종일관 영롱한 떨림으로 듣는 이를 매혹시키는 이 앨범,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그네스 오벨은 앨범 작업 전에 ‘유리 시민’이라는 개념을 접했다고 한다. 이것은 독일 쪽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SNS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현대인은 모두 ‘유리 시민’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관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그네스 오벨은 여기에서 다른 걸 봤다. 예술가로서 얼마만큼 투명하게 자기 세계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요즘처럼 짜증이 극성을 부릴 때에 권할 만할 탐미주의적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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