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 또 쌤한테 일렀어?” “아 진짜 ××.” 저만치서 들리는 아이들의 대화가 발을 무겁게 한다. 올 한 해 내내 붙들고 고민했던 문제이다. ‘은따(은근히 따돌림당하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평범한 학생이지만 사소한 이유로 친구들에게 ‘은따’로 찍힌 아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자신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아이, 그래서 점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 는 휴대폰 안 냈어요.” 이렇게 친구들의 작은 비행을 신고하는 학생은 이들 세상에서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다. 이 같은 제보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학생은 공격 대상이 된다. “야, 너 죽을래?” 장난기를 머금은 윽박지름에 반응이 크면 다수의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느낀다. 그 장난은 전염되듯 퍼져서 ‘은따’라 불리는 대상이 새로 만들어진다.

한번은 영훈이(가명)가 유선이(가명)의 안경을 빼앗아 도망을 갔다. 유선이는 약이 올라 엉엉 울어버렸다. 물건을 빼앗아간 영훈이에게 한마디 하려던 순간, 뒤에 앉아 있던 지훈이(가명)가 “뭐 그런 거 가지고 우냐”라며 유선이에게 비아냥거렸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화살은 장난을 친 아이가 아니라 우는 아이에게 날아왔다. 아이들은 모두 유선이를 비웃었다. 분명히 ‘정상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만은 단단히 주의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보경 그림


먼저 내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릴 때 친구가 실내화 주머니를 빼앗아 30분 동안 잠적한 적이 있어. 그 친구는 단순한 장난이었겠지. 그런데 실내화 주머니가 없어서 신발도 갈아 신지 못한 채 학교에 우두커니 남은 내 기분은 어땠을까? 친구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집에서 부모님은 기다릴 테고…. 그때 나도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나왔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지금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판단하게 했다. 학생들은 “죄송해요”라면서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 수업 후 한 아이는 “쌤 멋있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효과는 잠시뿐이었다. 아이들은 이후에도 계속 ‘반응이 좋은’ 친구를 상대로 비슷한 장난을 쳤다.

은따는 왕따와 같은 집단 따돌림과는 양상이 좀 다르다. 은따라 불리는 아이들은 왕따와 달리 친구가 있다. 공부도 못하는 편이 아니고 집안 형편이 크게 가난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친구들이 사소한 행동을 트집 잡는다. 한두 번의 놀림이 날카로운 말로 변한다.

그러다 보니 의지할 곳은 선생님이다. 은따를 당하는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담임 선생님이나 교과 선생님을 찾아가서 수다를 청하는 일이 많다. ‘징징대는’ 이 아이들의 신호는 내가 보기에 도와달라는 ‘SOS’다.

‘쟨 왜 저래’ 말 한마디가 만드는 따돌림

많은 어른들처럼, 아이들도 ‘약간 다른’ 친구를 잘 수용하지 못한다. 책만 읽는다고, 안 씻는다고, 못생겼다고, 잘 운다고, 목소리가 작다고 등등 갖은 이유로 친구들을 따돌린다.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이정국 외 지음, 레디셋고 펴냄)라는 책에서 저자들은 집단 따돌림의 문제를 조명하면서 한 정신과 전문의의 분석을 인용했다. “한국 사회는 정상의 범주가 너무 좁다.” 서구 기준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성격이 한국의 조직 문화에서는 왕따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몰아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아이씨, 진짜’라든가 ‘쟨 또 왜 저래’ 같은 말 한마디면 된다. 이처럼 주류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아이는 의지를 잃을 것이다.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내 편이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끔찍한 일이다.

공동체 교육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외면해도 마지막까지 지지해주는 한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지지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너를 마지막까지 지켜줬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 그것이 생명존중 교육, 인성 교육, 학교폭력 예방 교육 등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지지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도 교사의 임무이다.

기자명 차성준 (포천 일동고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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