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힘은 핵무기보다 무섭다고 한다.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해온 북한 역시 시장화의 거센 흐름을 거역하지는 못한다. 북한의 시장화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무너진 한국 대북정책이 새롭게 출발해야 할 지점이다. 핵·미사일 대처 방안으로 사드라는 ‘하드웨어’보다는 남북 교류를 통한 ‘소프트웨어’ 대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는 대목이다. 2009년부터 매년 4개월씩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체류하며 북한 시장화 추세를 연구해온 정은이 경상대 교수를 만났다. 정 교수에게 북한의 실물경제 상황을 물었다. 정 교수를 끝으로 지난 8월부터 연재한 ‘사드 해법 연쇄 인터뷰’를 마친다.


북한 시장화는 현재 부동산 개발이 꽃을 피우는 단계까지 진행된 것 같다.

삶에 여유가 생기면 맨 먼저 먹는 것, 다음에 입는 것, 가전제품, 타는 것 등을 산다. 마지막으로 주거공간을 신경 쓴다. 화폐가치로 먹는 것을 1단위라고 보면 옷은 10단위 정도이고, 가전제품과 타는 것은 100~1000단위이다. 집은 그 이상이다.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북한의 실물경제가 접어든 것이다.

ⓒ시사IN 조남진정은이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통일부 자문위원. 중국 베이징 대학 한반도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일본 니가타 ‘환일본해경제연구소(ERINA)’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초빙연구원.
언제부터 개인이 아파트를 지어 분양했나?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다(임금·물가의 인상과 공장·기업의 독립채산제를 도입한 조치). 지방에서도 2000년대부터 개인들이 아파트를 많이 짓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후반 지방에서도 기존 집을 철거하고 새집을 짓는 현상이 나타났다. 북한은 널린 게 땅인데 굳이 철거를 하는 이유는 입지 조건이 좋은 곳에 집을 짓기 위해서다.

평양과 지방은 입지 조건이 다를 것 같은데?

지방은 시장이 중요하다. 시장 주변은 집주인이 워낙 높은 가격을 불러 개발이 오히려 지연되기도 한다. 반면 평양은 전기와 난방이 중요하다.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동평양은 우리의 강북, 서평양은 강남이다. 서평양 중에도 본평양이 따로 있다. 중구역·평천구역·모란봉구역·보통강구역이다. 이쪽 아파트 한 채가 10만 달러(약 1억1700만원)면 동평양 통일거리는 2만 달러 정도다.

남의 집을 사서 철거하고 새 아파트를 지을 경우 절차나 보상 문제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부동산 개발업자가 돌아다니다가 입지가 좋은 집을 발견하면 새 아파트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한다. 막상 짓고 나면 인기가 없는 최고층의 ‘비상품방’으로 몰아버린다. 중국은 아파트를 지을 때 상품방(상품으로 시장에 내놓는 방)과 비상품방으로 나누는데, 북한에서도 유사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분쟁이 심할 텐데 조정은 어떻게 하나?

평양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주택위탁관리소 에 중재인이라는 분쟁 조정 공무원이 생겼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주택 개발을 할 수 있나?

허가받는 게 어렵지 않다. 주택 거래도 이미 합법화됐다. 2014년 10월 직접 집을 팔아본 사람으로부터 이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 돈 100위안(약 1만7000원)이면 명의변경을 해준다. 집을 짓는 데 돈도 별로 안 든다. 입지만 좋으면 1층만 닦아놓아도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 돈으로 나머지 건물을 올리면 된다. 지방의 경우 2만 달러면 6층짜리 아파트 두 동을 짓는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적게 드는 것 아닌가?

땅이 무상이고 인건비도 안 든다. 중국처럼 내부 인테리어를 할 필요도 없다. 인테리어는 입주자들이 하게 되어 철거민은 분양을 받아도 돈주에게 되팔 수밖에 없다.

ⓒ정은이 제공북한 신의주시의 2011년 모습(위)과 최근 모습(아래). 신의주시는 2011년만 해도 주로 단층집이 많았다. 최근에는 도심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는 언제부터 등장했나?

화폐개혁(2009년 11월) 직전, 즉 2007~2008년쯤이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치로 부가 재분배되면서 이때쯤 돈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중국의 부동산 개발 경험이 들어오는 것과 함께 개발업자도 생겨났다.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무역일꾼이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무역으로 돈을 번 다음 돈이 되는 부동산 개발까지 겸한다. 단둥에 나오면 중국의 친척이나 무역 파트너들이 집을 사거나 아파트를 지으라고 성화다. 권력층에 안면이 넓어서 허가받는 데도 유리하다. 무역일꾼을 앞세워 간부들도 뛰어든다.

중국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인 5·24 조치 이후 중국에서 모든 것이 들어오고 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중국의 실내장식 자재가 들어왔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100%다. 대문도 전부 중국 것이다. 북한에서 지어진 아파트와 중국 아파트가 재료와 모양이 똑같다.

중국의 대북 사업자들이 광산 투자에서 부동산 투자로 갈아타는 추세라던데?

광산 개발이 돈도 많이 들고 사기도 많이 당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부동산 개발로 갈아타는 추세다. 2005년부터 광물자원 수출이 시작돼 대중국 수출에서 무연탄 비중이 45%를 차지하지만 2013년을 정점으로 광물 가격이 폭락했다. 그때 부동산 개발 쪽으로 방향 전환이 일어난 것 같다.

외국인도 투자할 수 있나?

1~2년 전부터 북한 현지 투자자에 한해 100㎡ 정도는 살 수 있게 허용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살 수 없어서 북한 내 친척 명의로 사는 경우도 있다. 임가공·에너지 분야 등에 투자하면서 일부러 많은 토지를 확보해 장기 사용권을 획득하기도 한다. 북측 무역 파트너에게 철근과 시멘트를 사주고 아파트가 지어진 뒤 이윤을 나누기도 한다.

ⓒ정은이 제공최근 평양에 있는 경공업 기업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위는 평양에서 생산된 커피믹스.
신의주에 새로 아파트가 많이 올라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2010년에 조사할 때만 해도 거의 단층집이었는데 2012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아파트 한 동 건설하는 데 5~10년씩 걸렸다면 요즘은 6개월이면 다 짓는다. 단둥 국제여행사가 지은 호텔 빼고 전부 아파트다. 중국 물자로 짓다 보니 도시 색깔이 중국처럼 바뀌었다.

다른 곳은 어떤가?

평양도 중국에서 많이 들어갔다. 청진에도 새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남포에서는 용도 변경까지 하면서 아파트를 짓기도 해 깜짝 놀랐다.

한 채에 1만~1만5000달러 하는데, 그만큼 수요가 많기 때문인가?

입지 조건이 좋은 곳은 대부분 돈주들이 구입한다. 그래서 ‘돈주 아파트’라고 한다. 철거 직전 집들의 사용권만 전문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탈북자를 둔 가정을 ‘한라산 줄기 가정’이라고 하는데 이들도 주요 수요층이다. 탈북자들이 돈을 보내주면서 입지 좋은 데 집을 사라고 하기도 하고, 집 사려고 하는데 돈 좀 보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북한 시장화가 진행된 지 20여 년 지났다. 별문제 없는 건가?

우려스러운 점들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시장의 양극화다. 외화거래 시장과 북한 내화로만 거래되는 시장으로 나뉘고 있다. 부동산이나 기름(휘발유) 장사는 100% 외화로 거래된다. 주로 당 간부들이 참여한다. 서민들은 북한 돈으로만 거래하는 장마당에 매달려 살고 있다. 문제는 이 시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점에서 한계인가?

예전에는 중국에서 물건 들여오면 10~30배 까지 이익을 남겼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된다. 물건은 넘치는데 서민들의 구매력이 뒷받침이 안 된다. 2000년에 무역회사들이 대량으로 물건을 들여오면서 사실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사가 안 된다는 불평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0년쯤부터다. 단둥에 나오는 무역일꾼들도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수요를 읽을 수 있을까 궁리한다.

최근 물가와 환율이 안정적이라는 보도가 많아졌는데.

외화가 많아져서 물가가 안정됐다는 주장도 있으나 장마당의 상품이 포화 상태라 가격이 오르지 않는 측면이 크다. 결국 구매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얘기다.

결국 공장 가동률과도 직결되는 문제 같은데?

그렇다. 〈노동신문〉에 기사화된 기업들 중 탈북자 조사를 해보면 가동이 중단된 곳이 많다. 남포제련소 등 특급 기업소를 없애버린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고용에 의한 생산이 안 되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7·1 조치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변했다. 북·중 무역이 많은 역할을 했다. 북한의 외화 원천 중 하나다.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해줬다. 국가가 더 이상 배급을 줄 수 없어서 국민에게 노동력 제공을 요구할 수 없게 됐다. 준조세 성격의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청진시의 경우 공무원 월급을 매일 장마당에서 걷는 장세와 자전거와 짐 보관료를 걷어서 충당하고 있다. 지방 간부들도 시장이 유지되어야 자기 주머니에 돈이 들어온다. 문제는 어디에서 생산의 활로를 열어갈 것인지 하는 건데, 최근 커피믹스 등 평양에 있는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서 식품을 생산하는 것을 보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기업 한 곳에서만 300가지가 넘는 식품을 생산한다.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은 경공업에서 기업 활동이 살아날 것인지가 관건이다.

시장 침체로 중국산의 인기도 시들해졌나?

전에는 중국산이면 아무거나 팔렸다. 너무 싼 물건을 마구잡이로 들여오다 보니 이제는 중국 상품의 신뢰가 무너졌다. 물론 아직도 신의주를 통해 중국산 옷이나 기성 제품이 많이 들어온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 70%는 질은 낮아도 평성시에서 생산되는 옷이나 가공제품으로 생활한다. 7차 당 대회에서 국산화를 강조했는데 가공식료품은 대부분 국내산이다.

한국산에 대해서는 어떤가?

한국 상품은 너무 좋다고 한다. 가격 안 물어보고 산다고 할 정도다. 북한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서는 대북제재 국면에서 중국 사람들이 북한산 광물질을 후려치기하는 데 대한 반감도 크다. 중국이 지금은 우리보다 북한과의 교역이 우위에 있고, 남북 교역은 단둥을 중심으로 삼각무역으로 할 수밖에 없어서 제한적이다.

ⓒ정은이 제공2013년 9월 중국 단둥에서 촬영한, 대북 지원 당시 사용한 국내산 쌀포대 자루.

한국산 물품 중에서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화장품이나 옷 같은 것들이다. 새 옷은 단가가 안 맞아 못 들어가고 주로 중고 옷들이 중국을 거쳐 북한에 들어간다. 중국산은 한 번만 입어도 쭉쭉 늘어나는데 한국산은 중고 옷도 아무리 빨아도 색깔이나 옷태가 그대로 유지된다. 옷값을 제대로 받으려면 한국산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검열 때문에 라벨을 사선으로 오려서 갖고 있다가 팔 때 맞춰 보인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 개선으로 이어질 것 같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세계식량기구(WFP)를 통해 식량 지원하는 것보다 개성공단 물건이 훨씬 파급 효과가 컸다. 대북 원조를 퍼주기라고 했는데 사실은 시장에서 가치가 매겨져 한국산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10년 전 대북 지원 쌀 포대 자루가 여전히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10년 이상 써도 끄떡없을 정도로 질기다 보니 여전히 돌아다닌다.

5·24 조치 이후에도 한국산 물건이 들어가나?

단둥을 통해 들어간다. 전에는 주로 한국 대북 사업자들이 기여를 많이 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약 1년간은 삼각무역을 통해 명맥을 이어갔는데, 어느 순간 화교나 조선족들이 치고 올라와 한국 대북 사업자들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북한 시장화를 고려한 ‘대북정책 2.0’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북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 그들에게 맞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어떤 부분을 필요로 한다고 하면, 그 속에서 교육하고 공유하고 실험을 해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할 뿐 아니라 개성공단과 비슷한 남북 경제협력지대를 많이 만들 필요도 있다. 직접교역이든 간접교역이든 물자가 흘러야 한다. 그다음 단계로 기술 지원이나 기업가가 배출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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