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민에게는 잊지 못할 ‘13일의 금요일’이 있다. 지난해 11월13일 밤 9시께 파리 시내 중심부 식당과 카페, 경기장 그리고 공연장에서 시민 130명이 동시 다발 테러로 희생되었다. IS를 추종하는 테러범의 소행이었다.  범인들은 시리아 여권을 갖고 있었다.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 외부에 있던 자살폭탄 테러범의 시신 근처에서 시리아 여권 2개가 발견되었다. 여권에 표기된 이름은 각각 모하마드 알마흐무드, 아흐메드 알무하메드였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그리스 레로스 섬을 통해 마케도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를 거쳐 서유럽으로 온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세르비아에서 망명 신청을 했다. 테러가 벌어지기 한 달 전이다. 이들의 동선은 시리아 난민이 유럽으로 가는 루트와 정확히 일치한다. 유럽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여권이 필요한 난민은 암시장에서 여권을 사면 그만이다. 시리아 서북부 도시 이드리브에서 독일로 온 아흐메드 씨 가족도 암시장에서 여권을 샀다. 그는 지역에서 제법 부유한 편이라 가능했다. 여권이 있으면 위험한 육로나 뱃길을 피할 수 있다. 그의 가족은 터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독일로 입국했다. 여권을 산 곳은 터키였다. 그가 페이스북을 통해 암시장 여권 업자에게 연락하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알려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아내와 세 아이의 여권을 인편으로 받았다. 여권 하나 가격은 1300유로(약 160만원). 그는 “여권을 내겠다고 목숨 걸고 다마스쿠스까지 가는 멍청한 짓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들 뿐이다”라고 말했다.

ⓒEPA1월15일 이라크와 시리아와 요르단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접경지 하달라트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요르단 입국을 기다리고 있다.

아흐메드 씨가 가진 여권은 분명 ‘진짜’다.  여권 용지가 시리아 외교부 사무실에서 어둠의 경로를 타고 흘러나온다. 이런 백지 여권에 진짜든 가짜든 신분만 기입하면 된다. 그러니 위조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IS도 이런 여권 수만 개를 암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벌어들인다. 여권 1개에 1500유로(약 190만원), 아흐메드 씨가 구입한 가격과 비슷하다. IS는 점령지인 라카나 알레포에서 신분증을 만드는 기기를 확보했을 가능성도 있다.  

터키에서 그리스를 거쳐 유럽에 도착한 중동 난민은 이미 6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신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난민은 터키 서부 해안에서 어둠을 틈타 고무보트 등을 타고 그리스의 여러 섬으로 밀입국한다. 이들은 임시 난민등록소에서 지문을 등록하고 여행허가증을 받는다. 그리스의 여행허가증 발급 절차에는 허점이 많다. 그리스 당국자들은 내전 상태인 시리아 정부에 문의할 수도 없다. 문의한다 해도 여권 자체가 백지 여권이라면 확인할 길이 없다. 그리스는 재정 위기를 간신히 견디는 중이어서 여기에 투입할 예산도 없다.

그리스에서 여행허가증을 발급받은 난민은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를 거쳐 헝가리나 크로아티아 등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시리아 여권과 그리스 당국이 발급한 여행증명서, 지문 확인만 있다면 무사통과다. EU 역내에서는 검문 절차 없이 국경을 왕래할 수 있는 솅겐 조약(인적 교류를 위해 국경 철폐를 선언한 국경 개방 조약)도 한몫한다.

유럽이 지난해 시리아 난민을 우선 수용하자 다른 국가의 난민까지 시리아 여권을 사려고 혈안이 되었다. 터키나 다른 유럽행 통로 국가에서 시리아 여권이 수천 개씩 유통 중이다. 불가리아에서는 시리아 여권 1만 개가 적발되었다. 이라크나 수단·리비아·이집트 출신이 주로 시리아 여권을 산다. 아프가니스탄 국적인 바쉬르 씨(27)는 터키로 와서 시리아 여권을 샀다. 그는 “시리아 여권은 유럽으로 가는 티켓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다. 유럽행 이주민 5명 중 1명이 시리아 출신인데 유럽 국경 검문소에서 난민의 90%가 시리아 여권을 내밀고 시리아인이라고 우긴다.

아프리카 출신도 암시장에서 시리아 여권 구매

유럽 수사 당국은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에 가담하려던 또 다른 IS 대원 아델 하다디와 무하마드 우스만을 체포했다. 다행히 살아 있는 상태에서 붙잡아 이동 경로와 여권 구입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다디와 우스만은 알제리와 파키스탄 출신의 IS 조직원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년 전 IS 대원이 되려고 시리아 라카로 건너갔다. 하지만 미군과 연합군, 러시아군과 시리아 정부군 등의 공습이 극심해지자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다디와 우스만은 여느 시리아 난민과 똑같이 터키 이즈미르를 거쳐 난민선을 타고 그리스로 들어갔다. 이미 이들은 IS 수뇌부로부터 유럽 테러 지령을 받은 후였다. IS 수뇌부인 아부 아흐메드는 유럽으로 건너간 조직원들이 밀입국 업자와 접촉하고 차량을 대절하는 것까지 모두 관리했다. 장 샤를 브리사르 프랑스 테러분석센터장은 “아부 아흐메드가 파리 테러의 핵심 인물이다. 조직원을 모집하고 자금을 제공하고 훈련을 담당했다”라고 말했다. 하다디와 우스만도 아부 아흐메드에게서 시리아 여권을 받았다. IS 조직원들이 유럽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진짜’ 여권을 이용해 시리아 난민으로 둔갑한다는 악몽은 현실이었다.

ⓒAP Photo2015년 11월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상 최악의 연쇄 테러가 발생해 130명이 희생되었다.

하다디와 우스만은 지난해 10월 말 그리스에서 2000유로를 지급받아 난민 경로를 따라 유럽 내륙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파리 테러 다음 날인 지난해 11월14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난민 지위 신청서를 내고 수주간 난민 센터에서 기다리며 다음 지령을 기다렸다. 그러다 지난해 12월10일 오스트리아 당국에 체포된 것이다. 유럽 수사 당국은 이들을 통해 유럽 내에서 IS 수뇌부의 지령을 받으며 암약하는 조직원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IS가 보안을 위해 사용한 수법은 치밀했다. 조직원에게 다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와 돈만 준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심어둔 사람들과 연락하게 해 최종 목적지까지 가게 한다. 이들은 같은 팀 안에서도 서로 가명을 쓰며 신원을 철저히 숨겼다. 서로 바이버와 텔레그램, 와츠앱 등 여러 SNS 메신저를 사용하며 연락을 취했다.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화 내용을 암호화하기도 하고 발신자 번호와 위치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앱을 사용했다.

지난 6월 시리아인 3명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테러를 일으키기로 모의한 혐의로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독일 내 각기 다른 3곳에서 체포되었다. 이들도 그동안 시리아 난민 행세를 했다. 지난 8월에는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의 올 시즌 개막전에서 테러를 계획했던 시리아 난민이 독일 수사 당국에 체포됐다. 바이에른 뮌헨과 베르더 브레멘의 분데스리가 개막전을 겨냥해 테러 계획을 짠 정황이 드러났다.

독일은 지금까지 100만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했다. 문제는 이들 중 누가 난민이고 누가 IS 대원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독일에 안착한 시리아 난민 무스타파 씨(47)은 “독일 사람들이 IS 조직원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그들이 아랍어도 할 줄 모르고 생김새도 전혀 다른데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내년 4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대표의 지지율이 상승세다. 마린 르펜의 선전 배경에는 테러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혐오감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에서는 무슬림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늘고 있다. 난민 수용에 가장 적극적이던 독일과 스웨덴은 파리 테러 이후 난민 입국 심사와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독일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극우 신생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시리아 난민은 ‘독이 든 스키틀즈’?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선거 전부터 “난민은 자칫 ‘트로이 목마’로 변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한술 더 떠 시리아 난민을 ‘독이 든 스키틀즈(사탕)’에 비유한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만약 스키틀즈 한 그릇이 있는데, 내가 당신에게 이 중 단 3개가 당신을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한 줌을 가져가겠는가? 이것이 바로 시리아 난민 문제다”라고 썼다. 미국 50개 주의 절반에 육박하는 24개 주가 이미 시리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AP Photo1월13일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터키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마드 광장을 방문해 묵념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터키 이스탄불 한복판 관광유적지인 술탄 아흐마드 사원 앞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벌어져 독일인 관광객 10명이 숨졌다. 이 테러의 범인은 사건 1주일 전 터키 당국에 시리아 난민으로 등록했다. 터키나 국제기구 어느 곳에도 IS 대원이나 요주의 인물 명단에 오른 적이 없는 이였다.

지난 2년간 터키에서 붙잡힌 IS 대원은 5310명이나 된다. 그만큼 터키에서 IS가 활개를 치고 다닌다. 국경 인근 마을이 IS에 협조적인 데다 국경이 900㎞나 되다 보니 IS 대원을 색출하기 힘들다. 이들이 터키까지만 가면 위조된 시리아 여권이나 기타 공문서를 갖고 유럽에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은 총 272만5000여 명으로 터키는 난민이 가장 많은 나라다. 이 중에 IS 대원이 몇 명인지는 알 수가 없다. 터키 정부는 고육책으로 올해 들어 난민 수백명을 시리아로 강제송환했다. 이들은 다시 죽음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진 셈이다. 앰네스티는 이러한 강제송환은 국제법을 어긴 것이라고 터키 정부를 비난했다. 하지만 터키의 주부 에피페 씨(30)는 “나도 내 아이들과 이웃을 지키고 싶다”라며 정부를 두둔했다.

요르단의 경우 전체 국민의 20%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이 유입되었다. 재정 부담과 안전 문제로 요르단은 지난 10월 더 이상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국경을 폐쇄했다. 하니 물키 요르단 총리는 “요르단은 시리아 난민을 더 이상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라며 두 손을 들어버렸다. 요르단과 시리아 국경 무인지대에는 난민 약 7만5000명이 갇히고 말았다. 이들은 물과 음식을 제공받지 못한 채 겨울을 맞게 생겼다.  

유엔 난민기구(UNHCR) 홈페이지가 공개한 시리아 난민 수는 2011년 내전 발발 후 지난 7월까지 총 480만8229명이다. 이 사이에 교묘하게 섞여든 IS 대원들은 지금도 조용히 그들의 계획을 실행 중인지도 모른다. 이 피해는 가뜩이나 고통스러운 난민의 몫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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