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슈너의 막강한 파워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대선 이전부터 트럼프 캠프의 인선을 좌지우지했다.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부통령 당선자)를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선정한 이도 그였다. 쿠슈너는 트럼프 당선자가 11월10일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 덕담을 나눌 때도 포착되었는가 하면, 며칠 뒤 트럼프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회동 때도 보란 듯이 카메라 앞에 섰다.
트럼프가 당선 직후 정권인수위원장을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로 전격 교체한 것도 쿠슈너의 ‘보복 인사’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경질된 크리스티 주지사는 뉴저지 주 검사였던 2005년, 찰스 쿠슈너라는 부동산 억만장자를 탈세 혐의로 기소해 감옥에 보냈다. 이 찰스 쿠슈너가 바로 재러드 쿠슈너의 아버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개 사업가의 아들에 불과했던 쿠슈너가 백악관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하게 된 것은 트럼프의 큰딸 이방카와 결혼한 덕분이다.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난 쿠슈너는 2005년 탈세 혐의로 옥고를 치르게 된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뒤 승승장구해왔다. 그는 하버드 대학 사회학과를 거쳐 뉴욕 대학 법대를 졸업한 만큼 ‘스펙’도 출중하다. 미국 부유층 자제의 명문대 기부입학 문제를 연구해온 대니얼 골든에 따르면, 쿠슈너가 하버드에 들어간 것은 부친이 250만 달러(약 29억원)를 기부한 덕분이다. 부친 찰스 쿠슈너는 뉴욕 대학 법대에도 기부금 300만 달러(약 35억원)를 낸 바 있다.
쿠슈너는 학업을 마친 뒤 상속받은 천문학적 재산을 무기로 뉴욕 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유력 주간지인 〈뉴욕 옵서버〉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하는가 하면, 2007년 당시로서는 기록적 금액인 18억 달러로 뉴욕 중심부의 고층 건물을 사들였다. 쿠슈너가 이방카를 만난 것도 사업상의 인연 때문이었다.
쿠슈너는 교제 2년째인 2009년 10월 이방카와 결혼했다. 당시에는 장인 때문에 정치에 발을 담그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터이다. 쿠슈너는 원래 비교적 조용한 성품으로 언론에 나서길 꺼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캠프에서 쿠슈너가 소셜 미디어와 연설문 작성 등에 관여하며 큰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의 신임도 단단해졌다. 쿠슈너는 대선 후 본업인 부동산 사업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최근 백악관 입성을 기다리게 된 것도 장인의 강력한 권유 때문으로 알려졌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는 사업할 당시 자녀들에게 주요 업무를 위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사위를 끌어들이는 것을 보니, 백악관도 사업할 때의 방식으로 운영할 모양이다”라고 분석했다.
최순실처럼 연설문 작성에 관여하며 승승장구
그러나 쿠슈너의 백악관 입성은 대통령의 친·인척 임명을 금지한 연방 법률 때문에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초,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은 친동생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미국 의회는 1967년, ‘연방 친·인척 등용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률에 따르면, 공직자는 자신이 지휘하거나 근무하는 정부 부처 및 기관에 친·인척을 임명하거나 그 승진에 관여할 수 없다. 실제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아들을 백악관 인턴으로 활용하려다 무산된 적도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부인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 직속 국민건강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소송으로 번졌으나, 재판부는 백악관과 대통령 집무실이 ‘연방 친·인척 등용금지법’의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클린턴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트럼프도 이런 선례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어떤 연방 기관에도 속하지 않는 자문기구를 만들어 사위를 등용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 자리가 무보수 직이라면 ‘연방 친·인척 등용 금지법’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다. 과거 백악관 윤리담당 수석변호사를 지낸 리처드 페인터 미네소타 법대 교수는 ABC 방송에서 “이런 편법이 법 취지를 분명 위반하긴 해도 백악관 공직 임명에 활용될 여지는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쿠슈너를 백악관에 영입할 경우 법률적 시비 못지않게 정치적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페인터 교수는 빌 클린턴이 비등한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힐러리를 백악관 공직에 앉히는 바람에 결국 소송으로 번지고, 의회에선 건강개혁 법안이 부결된 전례를 꼽았다. 쿠슈너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윤리담당 자문관을 지낸 노먼 아이젠 변호사는 ABC 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쿠슈너가 백악관 공직을 맡을 경우 법률 위반 여부를 따지는 소송이 벌어질 것은 자명하다”라고 밝혔다. 특히 쿠슈너가 자신의 부동산 재산을 처분하지 않은 채 고문직을 맡으면 ‘사업상 이해충돌 문제(자신의 부동산 가치를 올리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할 가능성)’ 때문에 형사 고발을 당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쿠슈너는 백악관 ‘비선 실세’로 존재감을 한층 뚜렷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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