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 목사는 새누리당의 구원투수로 꼽힌다. 최근 친박과 비박 중진 6인 회의에서 난파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을 이끌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로 이름이 거명되었다. 여권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통하는 그는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윤리위원장과 2007년 이명박·박근혜 대선 후보 경선 검증위원장을 지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때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이기도 한 인명진 목사를 11월24일 만났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 위법행위 위헌 확인 헌법소원 및 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청구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국회에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데 별도로 헌법소원과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낸 이유는?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될지도 불분명한 상태라서 시민단체라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 퇴진을 실제화하자는 것이다. 또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일부 헌법재판관 임기 문제 등으로 혹시 절차가 미뤄질지 모른다. 박 대통령 직무를 중단시키고 나라를 정상적으로 끌어가게 해야 한다. 국민이 언제까지고 주말마다 촛불 들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시사IN 조남진
사퇴를 거부하는 박근혜 대통령 뒤에 누가 있다고 보나?

차라리 정말 누가 나라를 생각해서 박근혜 대통령 뒤에서 제대로 민심을 전달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니까 제대로 보필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과거에도 소통이 안 됐지만 이번 최순실 사건을 보니 더욱 심각해졌다. 자기들 잘못을 숨기려고 뒤에 숨어서 박 대통령을 앞세워 무모하게 국민과 정면 대결하려고 하는데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쩌려고 이러는지 걱정이다.

그게 누구라고 보나?

나는 이미 2년 전 정윤회 문건 파동이 났을 때 그 배후가 김기춘씨와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이라며 이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번에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 본인은 부인하지만 새누리당 안팎의 많은 사람이 김기춘씨를 지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김기춘 같은 사람의 조언을 받는지, 참 이해할 수가 없다.

최근 김기춘 전 실장은 “나는 최순실을 모른다. 무능하다고 해도 할 말 없다”라고 부인하던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다. 누가 그 말을 믿겠나. 나는 김기춘 전 실장을 포함해 박 대통령을 옹립했던 소위 원로 7인회 멤버들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국민한테 자기들을 믿고 박 대통령을 지지해달라고 했던 분들 아닌가. 그럼 이제라도 나와서 공개적으로 얘기를 해야지 왜 대통령과 비밀리에 얘기하는가. 7인회가 “대통령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성명도 내고 그래야 책임 있는 자세 아닌가.

ⓒ연합뉴스김기춘 전 비서실장(뒤)은 사퇴를 거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김기춘 실장과 문고리 3인방 사퇴를 공개 촉구했다가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나?

인터넷 SNS 같은 데서 나에 대한 욕설과 비방이 난무했다. 마치 유신 시대로 돌아간 듯한 공포를 느꼈다. 여권에 있는 사람들이 내 안위를 걱정해줄 정도였다. 그때마다 얘기했다. 내가 박 대통령 아버지하고도 평생을 싸운 사람인데 무엇을 무서워하겠나. 내가 잘못 말한 게 뭐가 있나. 당시 박근혜 대통령한테 아무 말도 못하고 찬양 일색이던 사람들이 요새는 돌아서서 비판하는 걸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 하는 비판의 10분의 1만 했어도 박 대통령이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2년 전 최순실씨의 존재를 알았는가?

최순실씨가 뒤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정윤회씨 정도는 파악했다. 내가 2007년에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할 때 대선 경선 후보 검증을 하면서 자료를 보니까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었다. 가령 박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최태민씨의 사위 정윤회씨가 비서실장을 맡았다. 정치적으로 관여한 흔적이 여러 군데에서 보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았던 건 대통령이 한 일을 보면 여러모로 징조가 이상하다, 뭔가 문제가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이 보좌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2007년 대선 후보 검증위원장 시절 조사 결과 ‘최태민 목사’의 정확한 신분이 뭐였나?

목사라는 것은 확실히 사기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목사가 된 사람이 아니라 자칭 목사라고 불렀다. 최태민씨가 목사가 되기 전에 영세교를 만든 것까지 확인했다.

ⓒ연합뉴스11월24일 인명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위법행위 위헌 확인 헌법소원 및 직무정지 가처분 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당시 대선 후보 검증위원장으로서 박 대통령에게 최태민 관계도 물었는데?

요즘 언론에 나오는 최태민씨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질문은 다 했다. 같은 당에서 후보 검증하는 것이라서 공격보다는 해명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로 정제된 질문을 했다. 그런데도 박 후보가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가지고 질문했는데, 가령 유신 시절 대통령 공보비서관이던 선우련씨가 1977년 9월20일자 비망록에 “박정희 대통령이 최태민 목사를 거세하라고 지시했다”라고 쓴 자료를 보여주면서 물었다. 박 후보는 “아버지가 검찰도 중앙정보부도 아닌 일개 비서관에게 그런 지시를 했을 리가 없다”라고 부인해버렸다. “박 후보께서 최태민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센서티브(민감)하냐?”고 넘어가긴 했지만 그 후로도 늘 꺼림칙했다.

뭐가 꺼림칙했는가?

증거가 있는 것은 인정을 해야 신뢰감을 줄 것 아닌가. “내가 나이가 좀 어려서 잘 몰랐고 또 어머니도 돌아가신 뒤 경황이 없어 최태민 목사와 그렇게 되었던 거 같다” 같은 답변이라도 했더라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부인하니까 “내가 보기에 박 후보가 최씨 일가와 악연인데, 이게 계속해서 이어지면 인생의 큰 짐이 되겠다. 그리고 박 후보가 나라를 만드는 권력을 갖게 되면 나라도 참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겠다. 불행해질 수 있을 거 같다”라는 얘기를 해줬다.

새누리당 중진 의원 모임에서는 인 목사를 유력한 비대위원장 후보로 꼽던데?

무슨 일만 생기면 왜 허락도 안 받고 내 이름을 자꾸 올리는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솔직히 현재 새누리당이 비대위를 만들고 누구한테든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주세요” 할 수 있는 상황만 되어도 상태가 꽤 괜찮은 경우다. 이미 실기했다. 남은 것은 당을 나누는 일밖에 없다. 분당하는데 들어가 얼쩡거리다가 벼락 맞을 일 있나.

분당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 당에 비대위원장이 들어간들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비대위원장이 쓸 수 있는 주요한 카드가 대통령 탄핵이다. 국민들 눈에 “새누리가 탄핵에 앞장서? 달라졌네”라고 비치자면, 사실은 당이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도 있고, 탄핵을 무기로 대통령과 담판을 할 수도 있다. 이 카드를 김무성 전 대표가 이미 써버렸다.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에 탄핵 반대가 상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탄핵 얘기를 했다는 것은 뭘 뜻하겠나. 탄핵을 기준으로 당을 가르자는 것이다. 분당하자고 마음을 먹은 거라 분당이 안 되는 것도 이상하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김용태 의원 등 선도 탈당파들도 있다.

새누리당 내분은 분당으로 정리될 것이다. 친박 중심으로 당에 남고, 나간 사람들은 제3지대에서 개헌을 고리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려 하지 않겠나. 제3지대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보는 사람들이 뭉칠 것이다. 정치적으로 매우 흥미 있는 지대이므로 소위 잠룡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탄핵 카드를 쓴 김무성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어떻게 보나?

그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적도 없고, 새누리당에서 공식 후보로 거론한 적도 없는데 뭘 내려놓았다는 것인가. 김 전 대표가 분권형 개헌 얘기 하는 것을 봐라. 분권제에서는 대통령에게 아무 실권이 없기에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결국 본인이 개헌한 뒤 실권 총리를 하겠다는 얘기 아닌가. 김무성 전 대표는 내려놓은 게 없다. 대선 불출마 선언은 정치적인 속임수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어떻게 보나?

그 사람이 버틸수록 당은 갈라진다. 집 짓는 것도 어렵지만 부수는 것은 더 어렵다. 특히 새누리당 같은 경우는 더 그렇다. 그런데 이정현 대표 체제로 하루가 더 연장될수록 새누리당이 쉽게 무너져 나간다.

이정현 대표 본인의 판단에 따라 버티기에 들어간 것일까?

이정현 대표는 박 대통령을 보호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버틸수록 도움은커녕 오히려 박 대통령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박 대통령도 이정현 대표를 끌어안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정국을 풀어내는 문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이정현 대표가 스스로 물러나면 된다. 이정현 의원이 여당의 대표라는 것 자체가 새누리당의 불행이고 코미디 아닌가.

탄핵 정국에서 야당의 대응을 어떻게 보나?

지난 총선에서 국민이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민심이 있다. 지금 대통령은 정신 놓고 있고, 여당은 싸움질만 하고 있는 판인데 이런 때일수록 야당이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 이 시국에 국민이 야당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신뢰감을 주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해 보인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 앞에 설계와 계획을 얘기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 눈에는 야당이 권력만 잡으려고 행동하는 것으로 비친다. 상황에 따라서는 앞으로 박근혜나 여당에 대해 들었던 촛불이 야당을 향하지 말란 법도 없다.

검찰 수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되었다. 검찰 조사도 거부하고 있는데.

검찰과 특검이 수사해서 명명백백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의 혐의가 드러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박 대통령을 처벌하자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닌가. 다만 어떻게 물러나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 할 때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명예롭게 퇴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불행하게 끌어내리면 상당히 많은 사람,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이 어려서 부모 여의고 더 불쌍해졌다는 지지층도 있는 판인데 이 사람들에게 한이 된다. 다음 정부에 계속 부담이 되고, 우리 사회의 주름살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되 한이 맺히지 않게 잘 물러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 방법이 뭐라고 보나?

현실적으로 탄핵밖에 없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동안 국정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정치적 절충안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바로 헌법 개정이라고 본다.

개헌을 결부하자는 것인가?

대다수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빨리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문제는 물러나게 만드는 방법이다. 탄핵 절차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헌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내년 4월쯤에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 국회 주도 헌법 개정 시안은 지금 다 만들어져 있고, 국회의원 200명 가까이가 개헌에 찬성한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선거 시기를 앞당기면 된다. 자연스럽게 박 대통령의 임기를 종식시킬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건 애국심이었다. 자기를 믿고 투표한 많은 국민, 그 가운데 특히 유세 때 시장에서 장사하던 아주머니, 식당에서 물 묻은 손으로 박 대통령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의 얼굴을 박 대통령이 떠올려야 한다. 그들이 느끼는 참담함, 허탈감을 깊이 생각해, 자기의 안위를 생각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애국심을 발휘해 모든 걸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의 형사처분은 퇴임 뒤 별개로 책임질 문제다.

이 와중에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국방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 내용은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바대로 나올 것이다. 정당하고 떳떳하면 왜 필자도 공개하지 못하겠는가. 대통령 하야 촛불집회에 학생과 교사들까지 나서는 판국에 국정화 강행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어리석은 짓이다. 다음 정권에서 어떤 사람도 그 교과서로 공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화는 쉽게 폐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일 군사협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쉽게 폐기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인데 이 시국에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했으니 누가 책임지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야당이라도 그걸 붙잡고 따지고 막아야 되는데 국방부 장관 데려다놓고 한두 마디 물어보고 그만뒀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권력이나 탐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직접 나가보았나?

매번 나갔는데 이 현실에 대해서 슬픔과 자긍심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평생을 내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고생도 하고 매도 맞고 그렇게 살았는데 미래 세대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주려고 그랬는가 자괴심이 앞섰다. 한편으로는 우리 국민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대통령과 지도자들은 저런 수준이지만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훌륭한 나라라는 자부심도 들었다. 헬조선이라고 하지만 집회에 나온 청년들의 눈에서 희망을 보았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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