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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분당, 개헌 모든 가능성이 열렸다

역풍을 우려해 탄핵을 주저했던 야당이 탄핵을 힘 있게 추진하고 있다. 민심의 변화 때문이다. 탄핵안 투표 이후 새누리당 분당 움직임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이때부터 개헌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6년 12월 06일 화요일 제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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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졌다. 탄핵 이외의 선택지는 제거됐다. 이제 박근혜 게이트의 결말은 탄핵 가결이냐 부결이냐로 좁혀졌다. 검찰은 최순실씨 공소장에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주범’으로 적시했다. 야 3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탄핵 추진에 합의했다. 예상 시점도 정기국회 회기 내인 12월2일 또는 9일로 멀지 않다.

새누리당의 분열도 시작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은 11월22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다음 날인 23일에는 정두언 전 의원 등 원외 당협위원장 8명이 탈당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11월2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내 비박계를 결집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에 최순실씨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밝힌 1차 대국민 사과가 10월25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탄핵’은 야권에서 금기어였다. 이후 사태 전개 과정에서도 탄핵을 먼저 언급한 쪽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계였다. 야권은 ‘거국내각과 2선 후퇴’ ‘하야’ 등을 요구하며 탄핵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전선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탄핵은 야 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를 아우르는 반(反)박근혜 대오의 단일안이 되었다.

ⓒ사진공동취재단
11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촉구 민중총궐기대회 모습. 박근혜 대통령이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민심은 탄핵 찬성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탄핵 외의 다른 변수를 모두 제거한 주역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2차 사과 발표(11월4일) 나흘 후인 11월8일, 거국내각 구성과 2선 후퇴를 요구받던 박 대통령은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가 추천한 후보를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총리가 내각을 ‘통할’하는 것은 헌법에 나오는 표현으로, 사실상 현상 유지, 즉 대통령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시 야당이 주장하던 2선 후퇴의 핵심은 인사권, 그중에서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인사권이었다. 대통령이 검찰 권력을 놓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2선 퇴진과 거국내각이라는 타협안은 소멸했다.

같은 이유로, 자진 하야도 대통령이 택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대통령이 국정 정상화나 보수 정당 부활과 같은 공적 가치를 고려한다는 징후는 없었고, ‘자기 보호’가 핵심 관심사라는 것이 사태가 전개될수록 뚜렷해졌다. ‘자기 보호’를 위해서는 직을 반드시 유지해야 했다. 박근혜 청와대와 새누리 친박계는 정치적 해법을 모두 봉쇄한 후 “차라리 탄핵하라”고 나서는 농성전을 택했다.

야권이 11월 중순까지 탄핵 카드를 주저했던 이유의 핵심은 여론 지형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반대는 높지만 탄핵이라는 고도의 결단에까지 여론 합의가 된 상황은 아니었다. 여론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을 추진했다가 부결되는 날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야권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연합뉴스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발표 모습. 이때 한 말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 딜레마를 풀어준 이도 박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정치적 해법을 내팽개치고 제도적 권한에 기대어 ‘농성전’을 벌이자 여론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11월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100만 인파를 기록했던 촛불집회는, 숨고르기 격이었던 11월19일 오히려 전국으로 확산되어 기세를 이어갔다. 11월 넷째 주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대통령 업무 수행 지지도는 4%로 역대 최저치를 또다시 고쳐 썼고, 새누리당도 역대 최저치인 12% 지지율로, 국민의당에도 뒤진 3당으로 추락했다(31쪽 상자 기사 참조).

여론 압박이 고조되면서, ‘농성’에 들어간 대통령만 제외하고 당·정·청이 동시에 흔들렸다. 검찰은 박 대통령에게 11월29일까지 대면조사를 받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또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집중했다. 검찰의 ‘반란’으로 탄핵 명분이 두터워졌다. 주말 촛불의 기세를 확인할 때마다 새누리당은 휘청거렸고, 결국 탄핵 추진 선언이 새누리당 안에서 터져 나왔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이 나란히 사의를 표하면서 박 대통령의 ‘최종 방어선’마저 흔들렸다(박 대통령은 11월25일 최재경 민정수석에 대한 사표를 반려했다).

탄핵 주저하던 야당, 여론 힘입어 강공으로

무너진 권력 기반에서 터져 나오는 검찰 수사와 같은 결과물이 다시 반박근혜 여론을 공고하게 다졌다. 11월21~22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회의 탄핵 추진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78.4%였다. 대통령 거취를 묻는 질문에도 즉각 하야(40.2%), 일정을 예고한 퇴진(35.3%), 국회의 탄핵 추진(15.9%)을 합쳐, 응답자 중 91.4%가 하야 또는 탄핵에 찬성했다. 11월 말이 되자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쳐서는 안 된다는 여론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공수가 뒤바뀌었다. 이제 야 3당은 탄핵을 추진하다가 설사 부결된다고 해도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통령 퇴진이 국민적 합의가 된 만큼, 부결의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부결시킨 쪽이 지게 되었다. 이것이 청와대가 탄핵을 도발하던 11월 초순과의 결정적 차이다. 이제는 친박계가 “특검 수사 이후에 판단해야 한다”라며 시간 벌기에 나선다. 야 3당에서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면, 이제 남은 변수는 새누리당 분열의 폭과 깊이다.

가장 깊은 단계의 분열은 분당(分黨) 수준의 대규모 탈당 사태다.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계 인사들은 “탄핵에 찬성할 의원이 확인된 숫자만 40여 명이다”라고 말한다. 40명이라면 단숨에 ‘제4지대’를 꾸릴 만한 숫자다. 이 계산이 옳다면 기본 원료는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분당 수준의 집단행동은 의원들에게 꽤 큰 결단을 요구한다. 먼저 깃발을 들고 나섰다가 동료들이 뒤따라오지 않으면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해체를 주장하며 선도 탈당한 김성식·정태근 당시 국회의원은 후속 탈당이 미풍에 그치면서 광야에서 고립됐다.

집단행동을 확실히 보장하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유력한 대선 주자가 있거나, 특정 지역 기반과 같은 확실한 비빌 언덕이 있거나, 높은 결의를 공유하는 결사체가 있어야만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등장한 국민의당은 대선 주자(안철수)와 지역 기반(호남)과 결사체(김한길계)를 어느 정도는 갖춘 덕에 더불어민주당의 중력을 벗어나는 ‘탈출 속도’를 내는 데 성공했다.

ⓒ연합뉴스
11월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현재 새누리당 비박계는 셋 다 어정쩡하다. 선도 탈당을 감행한 남경필 지사는 대선 주자로는 경량급이다. 탈당 후에도 비빌 언덕이 되어줄 지역 기반은 오히려 친박계가 보유하고 있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신뢰가 두터운 고도의 결사체로 보기는 어렵다.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한 여론 압박을 받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집단 탈당이 바로 발생하지는 않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인사들은 당권을 탈환하거나 적어도 ‘탈출 속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결정적 변곡점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게 탄핵 투표가 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탄핵 투표에서 당내 반박근혜 세력의 규모가 숫자로 드러나면, 그때는 집단행동을 조직하기가 더 쉽다.

개별 의원에게 집단 탈당은 대단한 도박이지만, 탄핵 찬성 투표는 부담이 덜하다. 탄핵 찬성파 새누리당 의원의 관점에서 보면, 탄핵이 부결되는 순간 이중으로 곤란한 처지가 된다. 반란 세력의 크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되므로 당내 권력투쟁에서 밀린다. 또한 분노한 여론이 새누리당 전체를 향해 폭발하면, 친박계 주류와 공멸할 위험이 있다. 더욱이 탄핵 투표는 무기명 투표다. 이래저래 탄핵 찬성파는 본심과 다르게 탄핵 반대에 투표할 압박이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 찬성표는 실제 탄핵 찬성파의 규모에 가깝게 나오리라는 관측이 많다.

친박계는 탄핵 투표 때 집단 퇴장할 수도

탄핵 최후 방어선인 친박계 일각에서는 탄핵 투표에서 집단 퇴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러면 본회의장에 남아 있는 자체로 찬성 의사를 공개하는, 사실상 공개 투표로 바뀐다. 탄핵 찬성파가 찬성투표를 하는 데 느낄 부담이 너무 적으니 최대한 부담을 얹어주겠다는 셈법이다.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이를 두고 “초헌법적 방식으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의견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매일같이 요동치는,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국면이지만, 여야 모두 탄핵안 가결을 예상하는 기류가 적지 않다. 새누리당의 탄핵 찬성파가 본심과 달리 투표할 유인이 크지 않아서다. 야 3당과 야권 성향 무소속이 모두 탄핵 찬성표를 던진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는 새누리당 이탈표 28표가 필요하다. 돌발 변수를 감안해 40표가 안정권으로 거론된다. 다만 비상시국회의가 주장하는 “찬성파 40명”이라는 숫자가 신뢰할 만한지가 변수로 꼽힌다.

야 3당의 계획대로 12월2일이나 9일에 탄핵 투표가 실시되고, 거기서 탄핵 찬성이 200표를 넘긴다면, 그 이후는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넘어간다.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은 예측하기 어렵다. 잠복해 있지만 미묘한 이슈도 있다. 개헌이다. 대통령 퇴진에 고도로 집중된 현재 여론 지형에서는 함부로 개헌 논의를 꺼내기 어렵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으로 낙인 찍혔다가는 분노의 또 다른 타깃이 될 수 있다. 개헌론자들도 우선은 탄핵 논의를 먼저 내세운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탄핵안이 가결된다고 가정하면, 그 상태에서 가장 유리한 것은 대선 지지율 선두권을 형성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다. 문 전 대표는 ‘탄핵 후 조기 대선’으로 가는 경로가 변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길이 될 수 있다. 11월25일 수원 경기대에서 열린 시국대화에서 문 전 대표는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론을 경계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책임론을 물타기하며 정권 연장을 하겠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 시도를 ‘꼼수’로 규정하면서 개헌론을 선제 차단했다.

현 구도를 타파하려 하는 세력들은 현상 변경의 동력이 간절히 필요하다. 그 때문에 개헌을 매개로 고리를 걸 수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개헌론을 들고나왔고,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개헌론자다. 새누리당 출신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손학규·김종인 등 야권의 비(非)문재인 지도자 그룹도 개헌론자다. 개헌론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후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들끓는 민심에 답한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만일 탄핵 이후 구도를 ‘개헌론=변화, 개헌 반대=변화 거부’로 끌고 갈 수 있다면, 개헌론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개헌론이 ‘정치인들끼리의 권력 나눠먹기 시도’로 비친다면 역풍에 노출된다. 들끓는 민심의 향방을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서 두 경로 모두가 열려 있다. 주로 비문재인 진영에서 활동해온 야권의 한 전략통은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세론에는 못 미치는 지지율로 섣불리 현상 유지를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에 휩쓸릴 수 있다. 지금 가진 자산으로, 꼭 개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 오히려 대세론으로 올라설 길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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