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펴냄부모는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 음식, 장난감, 옷… 무엇 하나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대신해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보여주듯 때로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 역시 “내게 생각할 것을 이토록 많이 안긴” 아이 덕분에 면역과 예방접종의 세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자는 집단 면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백신 접종률이 떨어지면 집단 면역도 무력화된다.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접종하면 바이러스가 이동하기 어려워진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증명해 나가는 책이다.

우리는 왜 구글에 돈을 벌어주기만 할까안현효 지음, 위고웍스 펴냄“‘인지 자본주의’를 인정하면 기본소득 위한 돈을 마련할 수 고전파 경제학의 핵심 이론인 차액지대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 역사와 그 대안을 탐구한다. 이 책에 따르면 국가와 시장,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조화·타협에 기반한 복지자본주의 모델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복지자본주의가 유지되려면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일자리 소멸과 함께 가난이 축적되는 반면 지식정보 기업들이 그토록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런 현상을 ‘인지 자본주의’라는 낯설지만 직관적인 개념으로 친절하게 풀어주면서 그 논리적 결론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차액지대 개념과 초미니 자본주의사, 기본소득론을 쉽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강간은 강간이다조디 래피얼 지음, 최다인 옮김, 글항아리 펴냄SNS에서 번져 나간 ‘_내_성폭력’ 해시태그에 대해 흔히 접할 수 있는 반응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터질 게 터졌다.” 이는 성폭력이 도처에 만연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가 저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가해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가해 사실을 밝히기 위한 지난한 과정은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책 제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다. 여성 대상 범죄 사건 전문 변호사이자 법학자인 저자는 ‘강간은 강간이다’라는 당연한 명제가 어떻게 부인되고, 힐난받으며, 호도되는지 밝혀나간다. 강간 사건을 가능한 한 모든 층위에서 조명한다.

재미가 지배하는 사회오팡시브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드라마 〈추노〉를 연출한 곽정환 PD는 “드라마도 저널리즘이다”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김태호 PD의 〈무한도전〉을 때로 저널리즘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텔레비전이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각성시키는 촉매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문화 연구의 대세는 대중문화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고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는 쪽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시작된 이런 문화 연구를 프랑스의 연구 그룹 OLS는 계간지 〈오팡시브〉에서 풀어냈다. 이들은 광고가 개인을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퇴행시키고 기업의 공급을 소비자의 욕망으로 치환한다고 본다. 그리고 개인은 값싼 재미에 만족하며 저항하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화윤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미국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있다. 1966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이라는 탐사보도로 다나카 총리의 사임을 이끌어냈다. 일본의 대표 탐사보도 기자였던 저자는 이후 우주·뇌·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도 이제 70대 중반을 넘겼다. 여전히 현역이다. 자신의 병든 몸마저 취재 대상으로 삼았다. 몇 년 전 방광암에 걸리자, 발병부터 수술과 이후 치료 과정을 취재해 다큐멘터리로 보도했다. 다치바나 다카시 책을 거의 다 읽은 처지에서, 나이 든 부모를 업을 때 가벼워진 몸무게에 마음이 아프듯,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쪽이 시렸다.

미국의 한반도 개입에 대한 성찰장순 지음, 전승희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저자는 4·19 직후 민주당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장면 박사의 넷째 아들이다. 평생 학문의 길을 걸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뿌리째 흔든 한국전쟁의 기원을 파헤치는 일은 필생의 숙제였다. 한국전쟁 발발의 궁극적 원인은 결국 ‘세계 패권에 대한 미국의 비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소련의 팽창을 억지하고 아시아 친미연합 수립을 위해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속지 총독으로 임명했다. 갓 해방된 한국은 새로운 속지 총독 일본에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보수적인 양반 엘리트와 매판 재벌, 친일 협력자까지 재기용됐던 배경에 바로 미국의 기획이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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