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점입가경이다. 매일 새롭고 충격적인 내용이 밝혀지고 있다. 특검 수사가 현실화되자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소는 못 했지만 대통령을 사실상 피의자로 판단했다. 법원에서 기소된 사실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기소한 내용만이라면 형량이 별로 무겁지 않을 것이라서 추가적인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탄핵 절차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현행 대통령제가 얼마나 문제가 많고 위험한 제도인지 여실히 드러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왕조 시대처럼 거의 모든 권력을 거머쥐고 군림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유사한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견제장치 없이 대통령 한 개인의 민주적 사고와 능력에만 의존하는 대통령제의 취약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중심제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독재국가의 정부 형태다. 그리고 이원집정부제는 거의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체제다. 대통령중심제의 문제점은 아무리 대통령이 무능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쫓아낼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탄핵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이 되기 때문에 직무 정지된 대통령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통령제는 승자독식 구조로서 권력 독점의 폐해가 망라된 정치제도다. 패배한 후보자를 지지한 유권자의 의견은 무시된다. 또한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에 의한 부패, 권력의 사유화, 정책의 공공성이 사라진다. 선거 과정에서는 포장된 이미지로 인해 대통령 개인의 능력 검증이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 여성, 지역적 이점, 보수 세력 그리고 정치권력의 도움으로 선거에서 신승할 수 있었다. 허상의 정치가 승리한 셈이다.

대통령제는 정책의 일관성도 없다. 같은 정당에서 계속 집권을 하더라도 새로운 대통령 개인 중심으로 정권인수팀이 짜여서 과거 정책은 폐기되고 새로운 정책이 수립된다. 그러나 이는 5년짜리 정책일 뿐이다. 그 결과 고위 공무원들의 줄서기 행태가 5년마다 반복된다.

ⓒ시사IN 신선영11월26일 제5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날 전국적으로 190만명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일부에서는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주장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대통령이 8년을 한다고 생각하면 재앙이다. 우연히 최순실의 태블릿 PC 자료가 보도되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현직 대통령이라는 이점과 권력기관을 동원하고 갖가지 허상의 이미지를 연출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선하려 할 것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보면 동원 가능한 수단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도 위장된 대통령중심제나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치보다도 더 중요한 외교와 국방 업무를 맡긴다는 것이 언어도단임을 알 수 있다. 내치와 외치는 구별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권한 분할, 그리고 두 권력자 주변인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은 정쟁의 지속 상황을 만들 것이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실패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직선으로 뽑은 대통령과 역시 선출된 수상 사이의 권력 분쟁이었다. 이원집정부제는 정치체제의 본질적 속성을 외면하는 정치꾼들이 선호할 제도에 불과하다.

4년 중임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는 문제 많아

대안은 의원내각제로의 개헌뿐이다. 동시에 득표율과 정확히 일치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로의 개편이 필수 전제조건이다. 단일 정당의 집권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므로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 권력의 집중을 막고 타협과 조정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인 장관과 정무차관의 임명을 통해 공직 사회를 통제함으로써 권력의 향배만을 좇는 관료 조직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검찰 역시 의회의 통제를 받아 중립적인 조직으로 재탄생하도록 할 수 있다.


주말마다 백만의 촛불이 광화문을 밝히는데 야권은 정치적 대안과 야권 공조를 통한 구체적 프로그램이 너무 엉성하다. 대권 주자들이 각자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을 한다면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 야당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이른바 대선 잠룡들이 시위 행렬에 참가해 즐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현 상황을 풀어나갈 구체적 방안과 탄핵 정국 이후에 대한 견해를 밝혀야 한다. 만일 개헌이 현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4년 중임의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라는 정치체제를 선택할 바에야 지금 이대로가 오히려 낫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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