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란 진정 어려운 모양이다. 한국 시간으로 11월9일, 백만장자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확정됐다. 그는 온갖 추문과 실수를 딛고, 심지어 공화당 주류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다. 백인(클린턴보다 21%포인트 더 얻었다), 남성(12%포인트), 대학 중퇴 이하(8%포인트), 65세 이상(8%포인트)이 그를 지지했다. 지역적으로는 러스트 벨트(과거 철강과 자동차 산업이 발전했지만 쇠퇴해서 녹이 슬었다는 뜻)에 속하는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미시간 주가 트럼프 쪽으로 돌아섰다.

토마 피케티는 미국 하위 90%의 소득과 부가 1970년대 중반부터 상대적으로 계속 오그라들었고, 심지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림 몇 장으로 보여주었다. 트럼프를 지지한 세력들은 바로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세계화의 패배자들은 자신들의 영락(零落)이 아시아 국가의 불공정 무역, 멕시코 등의 불법 이민자 때문이라고 믿게 되었다.

고립주의·보호무역주의·인종주의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런 흐름은 지난 6월 브렉시트 투표에서도 나타났다. 기실 세계화에 대한 불만은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1999년 시애틀의 대규모 시위나 2011년 오큐파이 운동, 스페인과 그리스의 포데모스나 시리자 운동 등도 이런 흐름에 속한다. 폴라니는 시장 원리로 사회를 조직하려 들면 사회는 갈기갈기 찢기고 결국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운동이 일어난다고 갈파했다. 여기에는 진보적인 흐름도 있고, 브렉시트나 트럼프 지지와 같은 퇴행적 현상도 나타난다.

트럼프는 중국 상품에 대해 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때문에 공장 5만 개와 일자리 수천만 개가 사라졌다고 터무니없는 숫자를 내세우기도 했다. 아시아의 대미 흑자는 환율 조작과 ‘불공정 보조금’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개정하거나 폐지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중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1100만명에 이르는 멕시코 불법(무서류) 이민자를 추방하고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것도 멕시코 돈으로.

물론 세계 최강의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서 이런 깡패 같은 일을 함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이미 증가하기 시작한 반덤핑 조사와 보복관세 부과에 탄력이 붙을 것은 분명하다(2015년 한국은 조사 7건과 보복관세 6건을 얻어맞았는데 이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한국은 중국·이스라엘·타이완과 더불어 환율 조작 1차 조사 대상국이다. ‘환율 슈퍼 301조(BHC법)’를 당장 적용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한국이 1달러당 1000원이어야 할 환율을 1300원으로 조작해서 1000억 달러의 불공정 이익을 거뒀다고 미국이 판단하면 그 액수만큼 한국 상품에 무차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아무래도 껄끄러운 중국 대신 본보기로 한국이나 타이완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나라들도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로 맞선다면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세계경제는 깊은 침체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광장에서, 망국을 딛고 새로운 공화국 세울 강령을 만들자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워 미군 주둔비용을 전담하도록 강요할 테고 한·미 FTA의 제조업 분야 수입관세를 높이려는 재협상도 요구할 것이다. 이에 맞서 한·미 FTA 폐기를 내걸고 지적재산권·서비스·투자 분야의 개정(예컨대 투자자·국가제소권의 삭제)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철수도 하고 싶으면 하라고 맞서야 한다. 하지만 지난 4년간 국정 농단을 되돌아볼 때, 박근혜 정부가 사드 포대를 더 설치하고 최신 무기를 더 수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믿겠는가? 이 와중에도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고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있지 않은가?

2016년 11월12일 100만 촛불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절망의 수렁 속에서 피어난 장미꽃이다. 박근혜씨의 업무를 당장 정지시키고 진정한 공화국의 미래를 설계하자. 지난 50여 년간의 수출 주도·내수 억제·부채 주도 성장정책은 이제 불가능하다. 현재의 승자독식형(단순 다수대표제) 대의민주주의도 손을 봐야 한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으로 깡패 국가의 위협에 맞서고, 남북의 평화체제도 이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도, 어떤 당이 집권해도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강령을 광장에서 만들자. 망국을 딛고 새로운 공화국을 세울 마지막 기회다.

기자명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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