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낯익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2002년작)와 똑같다. 박 감독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동명 작품(1979년작)에 대한 오마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두 영화의 스토리는 전혀 다르다. 이 소설이 바로 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작품의 원작이다. 1976년 1월, 제74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최근 역사비평사의 별도 브랜드 ‘모비딕’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소설은 1963년 일본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을 소재로 삼았다. 다섯 명의 목숨을 빼앗은 연쇄살인마 니시구치 아키라(소설 속 이름은 에노키즈 이와오)는 당시 78일 동안 살인과 사기를 저지르며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주 행각을 이어갔다. 일본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 12만명이 동원되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한 해 앞둔 시대의 풍경과 수많은 인물 군상이 가로 세로로 엮인다.

작가는 이 사건을 소설로 쓰기 위해 당시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그 자료가 노트 30권 분량에 이른다.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을 탄생시켰다. 40장으로 구성된 작품에는 사건의 관계자들이 화자로 등장한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이런 구성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구성이 촘촘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등장인물이 많고 낯선 일본인 이름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도 한다. 그래도 판별하자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큰 편.

작가 후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문학은 인간이라는 불가사의한 생물의 정체에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느냐에 의의가 있다.” 한 인간이 무자비하게 낭떠러지로 치닫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서늘하다. 소설을 읽는 중간 중간 눈을 들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떠올린다. 언젠가 누군가 권력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저지른, 이 기괴한 ‘연쇄 범죄’를 작품으로 써내길 기대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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