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세 살 소녀 수린(신은수)은 엄마를 잃고 나서 아빠와 멀어졌다. 새로 전학 온 학교에는 친구도 없다. 그런 수린에게 옆 반 성민(이효제)이 처음 말을 걸어주었다. 둘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같이 산에 올랐다. 성민의 친구 태식과 재욱도 함께였다.

그때까지 〈가려진 시간〉은, 조금은 〈마이 걸〉 (1991) 같았고 어딘가 〈스탠바이 미〉(1986)도 닮았다. 풋풋한 연애담에 짓궂은 모험담이 더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숲속에서 작은 구멍 하나를 발견한 뒤부터, 구멍으로 들어간 성민과 수린이 물웅덩이 앞에 나란히 선 그때부터, 영화는 더 이상 〈마이 걸〉이 아니며 〈스탠바이 미〉와도 멀어진다.

수린만 남겨두고 감쪽같이 사라진 세 아이. 며칠 뒤 수린 앞에 나타난 남자(강동원). 자기가 성민이라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믿어주고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수린. ‘남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를 감싸려다 함께 위험에 빠지는 소녀’라는 점에서, ‘영화의 후반부가 〈늑대 소년〉(2012)을 떠올리게 한다’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건 2년 전 그날, 그 바다가 집어삼킨 배 한 척이었다. 다시는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다시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마치 형벌처럼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바다 아래의 이미지였다.

시간이 멈춘 성민의 세상에선 온갖 사물이 공중에 떠 있다. 아이들의 책이, 가방이, 신발이, 그 밖에도 많은 소지품이 마치 물속을 떠다니는 부유물처럼 허공에 떠 있다. 그렇게 떠다니는 물건들 사이로 곧 친구도 떠다닌다. 고립된 시간을 버텨내지 못하고 먼저 눈을 감은 재욱이가 무릎을 감싼 채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성민의 머리 위에 떠오른다. 그렇게 부유하는 친구를 보며, 좀처럼 우는 법이 없던 태식마저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가려진 시간〉의 이 모든 장면들이 난 참 슬펐다.

마침내 기적처럼 살아 돌아올 거야

물속에 뛰어든 아이의 시간만 다르게 흐른다는 것. 그 아이가 속한 세상의 시간만 멈춘다는 것. 이곳 아이들의 시간은 내일로 흐르는데 사라진 아이들의 시간만 ‘그날’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아이들이 발버둥 친다는 것. 그러다가 마침내,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다는 것. 〈가려진 시간〉의 이 모든 판타지가 난 또 많이 아팠다.

“수린아, 여긴 매일 똑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어. 태식이랑 난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 시간이 많으니까 허송세월하지 않으려고 나름 공부도 하고 있고. 가끔은 무서워. 이러다가 옛날 일들 다 까먹게 될까 봐. 그래도 난 괜찮아. 꼭 돌아갈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곳에서 성민은 일기를 쓴다. 이곳에 남은 수린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다. 소녀에겐 다행히 그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를 쓴 친구가 직접 들고 온다. 무사히 어른으로 자라서 돌아온다. 손을 잡고 나란히 서서 파도가 멈춘 바다를 함께 바라본다. 수많은 유족들이 매일 밤 꾸었을 꿈이,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은 아직도 놓지 못했을 희망이, 영화에서는 참 예쁜 모습으로 실현된다. 좋은 영화가 늘 그러하듯, 상상이라는 붕대로 현실의 상처를 감싸주는 것이다.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진 않았을 터이다. 나 역시 의도를 갖고 세월호와 연결 짓지 않았다. 영화도, 나도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한 시대의 트라우마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러할 수밖에 없는, 아무리 피해 가려 해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