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쇼크는 유럽도 비켜가지 않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언론도 그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다. 11월8일(현지 시각) 제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그 자체로 유럽 대륙에도 큰 불안감을 불어넣었다. 그리스의 재정 위기를 시작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찾아온 불안정한 경제 상황, 시리아 난민 문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테러에 이르기까지 ‘지뢰밭 정국’인 데다, 유럽과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던 트럼프의 미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를 두고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트럼프는 유럽에게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피즘’은 유럽도 덮쳤다. 브렉시트 이외에도 헝가리에서는 10월2일 유럽연합(EU)이 제시한 난민 할당제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전체 투표율이 유효 기준선인 50%에 미치지 못해 투표 자체가 무효가 되었다. 또 오스트리아 극우 정당 자유당(FPO)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대선 결선까지 진출하는 등 유럽에서도 유럽 회의주의(Eurosepticism)와 국가주의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분열이 시작되고 있다.
 

ⓒAP Photo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

미국 주재 프랑스 대사 제라르 아로는 트럼프 당선 뒤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짧은 글을 남겼다. “브렉시트와 이번 선거 이후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세계는 우리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새로운 미국 대통령에 대한 프랑스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대사로서 맡아야 할 중립적 의무를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은 뒤 삭제했다. 곤란한 처지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위한 축하 화환만을 준비해놓았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을 두고 “프랑스가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라며 앞으로 일어날 불화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동안 트럼프는 프랑스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2012년 프랑스의 경제 상황을 “프랑스 총리의 세금 부과로 인해 프랑스는 AAA 등급을 잃었다. 프랑스는 기업들과 부를 빠르게 잃어갈 것이다”라며 프랑스 정부의 경제정책에 끊임없이 비판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트럼프는 2015년 프랑스 테러에 대해 “그들의 영토에 (무슬림) 출입을 허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브렉시트를 유발한 원인이기도 하다”라면서 프랑스의 이민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프랑스 비판하던 트럼프 당선에 올랑드 당황

내년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프랑스도 트럼피즘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현 올랑드 정부에 대한 불신, 경기 침체, 실업이라는 경제적 어려움과 난민·테러 등의 사회적 갈등으로 좌파 진영이 열세를 보이고 있다. 우파와 극우파 사이에서 차기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그중에서도 더욱 짙은 우파 성향을 띤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로 우세를 보이던 중도 우파 알랭 쥐페 후보자가 우파 대표로 당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까지 나왔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맞지 않았던 것처럼, 현재 프랑스 여론조사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니콜라 사르코지는 ‘트럼프 효과’를 놓치지 않으려고 “엘리트 계층에 대항하는 국민”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국민전선의 대표 마린 르펜은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라고 외치며 정치적·당파적·경제적 구속에서 ‘자유로운’ 자신을 트럼프와 동일시했다. 일각에서는 사르코지와 알랭 쥐페 지지자들 간의 분열로 인해 극우파인 마린 르펜 후보가 내년 5월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알랭 쥐페, 니콜라 사르코지와 달리 마린 르펜 후보는 트럼프와 같이 국가주의 경향을 띠고 있어서 그 영향력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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