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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발 급발진 한국차의 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공약이 한국 자동차 산업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이 한·미 FTA를 종료시키거나 북미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면 현대·기아차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6년 11월 30일 수요일 제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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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운동 시기에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집중 공략한 덕분에 대승을 거두었다. 러스트 벨트는, ‘녹(rust)으로 덮인 지대(belt)’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때 자동차 등 제조업 중심으로 번영하다가 쇠락해버린 지역이다. 일리노이·인디애나·미시간·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 주 등을 포괄한다. 트럼프는 이 지역의 노동자와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다른 나라에 빼앗긴) 미국의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고 선동해 표를 긁어모았다. 여기서 ‘다른 나라’는 멕시코나 중국·한국 등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을 가리킨다.

현대·기아차와 부품업체 등 한국의 자동차 관련 회사들이 미국에 제품을 파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한국 내의 공장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한다. 둘째,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 중인 멕시코에 공장을 세운다. 셋째, 미국 현지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한다.

트럼프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길을 차단하면서 세 번째 통로를 열 것이다.

ⓒAP Photo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철저한 보호무역주의자다.
첫 번째 길(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송)을 막으려면, 한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수입관세를 올리면 된다. 2012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되고 있다. 발효 이전의 관세는 2.5%였다. 발효 이후 승용차의 대미 흑자 규모는 2011년의 83억 달러에서 지난해 163억 달러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의존도도 심화됐다. 두 회사가 미국에 판매한 자동차 가운데 ‘한국에서 만든 제품’의 비중은 현대차 44%, 기아차 63%다. 미국의 자동차 수입관세가 인상될 경우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에 ‘환율 조작국’ 등의 혐의를 씌워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도 있다.

마침 트럼프는 “한·미 FTA가 10만 개의 미국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라며 재협상을 공약해왔다. 한국 정부가 재협상을 거부하면, 한·미 FTA를 ‘종료’시켜버리면 된다. 절차도 간단하다. 서면으로 한국 정부에 ‘협정 해지’를 통보하기만 하면 180일 이후 종료된다. 이 기간 한국 정부는 미국에 협의(재협상)를 요청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으로 관세양허(협정 쌍방이 관세를 어느 수준 이하로 억제하는 것)가 중단될 경우, “(한국의 전체 산업에서) 2017~2021년 5년간 총수출 손실 269억 달러, 일자리 24만 개가 없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수출 손실 가운데 절반가량이 자동차 산업(133억 달러)에서 발생한다. 이로 인해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도 11만9000개 정도 없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두 번째 길(멕시코를 통한 대미 수출)을 차단하는 방법은, 북미자유무역협정(미국·캐나다·멕시코 간) 재협상 혹은 폐기다. 트럼프는 멕시코 자동차에 대한 수입관세(현재 0%)를 35%로 올리겠다고 공언해왔다. 멕시코는 한국과 달리 자립적인 자동차 산업 기반을 만들지 못한 나라다. 대신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멕시코에 조립공장을 세워서 수출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멕시코가 수출기지로 떠오른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멕시코 자동차 부문의 시간당 임금은 8달러로 미국(46달러)의 6분의 1 정도다. 또 멕시코는 이른바 ‘FTA 대국’으로 미국·유럽연합 등 무려 44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 등 44개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비해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는 20개국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포드·GM은 물론이고 한국 기아차, 일본 혼다·마쓰다, 독일 폭스바겐·아우디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멕시코에서 완성차를 양산하고 있는 이유다.

멕시코 조립공장 통한 우회 수출도 타격

이런 흐름에 트럼프가 쐐기를 박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멕시코를 통해 가장 널리 접근하려는 시장이 미국인데, 멕시코산에 대한 수입관세를 35%로 올리면 가격 우위가 사라져버린다. 미국의 투자 전문지인 <모틀리 풀(Motley Fool)> 11월13일자에 따르면, 포드의 중형 세단인 퓨전을 멕시코에서 생산하면 미국에서 만든 같은 차량보다 대당 1200달러 정도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다. 현재 퓨전의 미국 평균 시장가는 2만2500달러인데, 멕시코산 퓨전에 35%의 관세를 매기면 대당 납부액이 7875달러에 이른다.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고 가동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아차의 예상 손실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멕시코의 누에보레온 주에 연산 4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설립해 올해부터 가동해왔다. 생산된 자동차 가운데 20%는 멕시코 내에서, 나머지 80%는 주로 미국에 수출한다.

ⓒ연합뉴스
11월1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선적 부두에 수출할 자동차들이 정렬해 있다.
트럼프의 공약이 실현되면 결국 미국 현지에 조립공장을 설립해야 안심하고 이 나라에 자동차를 팔 수 있게 된다. 부품업체들도 완성차 업체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야 할지 모른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국에 각각 1개씩 현지 공장을 소유하고 있다. 앨라배마 주의 현대차 공장은 연산 37만 대 규모, 조지아 주의 기아차 공장은 연산 34만 대 규모다. 한국산과 멕시코산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가 대폭 오른다면 한국보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비중을 더 높이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업체들도 멕시코의 공장을 포기하고 자국에 새 공장을 지어야 할 것이다. 그 덕분에 미국 자동차 부문의 일자리가 일시적으로 늘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기업 측면에서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모두 1750만 대 정도의 자동차가 팔렸다. 비교적 호황이다. 미국 내의 자동차 공장들도 대부분 가동률을 80% 이상(손익분기점)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차 수요에도 오르내리는 주기가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국 시장의 신차 수요가 내년까지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오는 2018년부터 줄어들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에 새로 공장을 지으려면 한 곳당 10억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생산기지가 완공되어 신차를 양산하는 시점에 수요가 이미 하락 중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업체들로서도 멕시코라는 ‘저임금 FTA 대국’에 수출기지를 설치하는 것으로 미국 시장의 불황 가능성에 대비해왔다. 트럼프의 멕시코 압박은 미국 업체들에게도 ‘위험 분산’의 옵션을 차단시키는 조치다. 더욱이 멕시코 공장에서 주로 생산하던 서민용 중소형 자동차를 미국에서 만들면 생산비용 상승으로 인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한편 트럼프는 자동차에 대한 환경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한편 오바마 민주당 정권의 숙원사업인 친환경 자동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 등) 육성 정책을 사실상 폐기할 계획이다. 이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쇄도하고 있지만, 현대·기아차로서는 뒤처졌던 차세대 자동차 관련 기술 개발을 만회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물게 환영할 만한 트럼프의 공약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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