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세계적인 식당 평가서인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 편이 11월7일 발간된 직후부터 비릿한 소문이 나돌았다. 서울 편 발간을 위해 한국 정부기관이 프랑스 미쉐린 측에 돈을 썼다는 이야기였다. 의혹이 커지자 최근 문체부는 “광고비조로 돈을 집행한 건 맞지만, 미쉐린 측과의 비밀유지 계약에 따라 액수는 공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정부기관이 세금으로 집행한 돈의 규모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힘에 따라 논란은 더욱 커졌다.

〈시사IN〉은 〈미쉐린 가이드〉 발간 과정을 잘 아는 정부기관 관계자로부터 “한식재단에서 2억원, 한국관광공사에서 2억원을 〈미쉐린 가이드〉 광고비로 집행했다”라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기관 내부자로부터 확인한 이야기다. 내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라고 밝혔다. 〈미쉐린 가이드〉에 집행된 정부 예산 액수에 대한 증언이 구체적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합뉴스11월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발표회. 식당 총 24곳이 선정되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미쉐린 가이드〉 발간 과정도 은밀하게 진행됐다. 정부기관 내 문서에서 〈미쉐린 가이드〉를 ‘M사’로 표기하는 등 보안 유지에 힘써왔다. 가이드북 출간 막판에는 최대한 〈미쉐린 가이드〉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시사IN〉은 한식재단과 한국관광공사에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한식재단은 “미쉐린과의 비밀유지 계약에 따라 액수를 밝힐 수 없다”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관광공사는 “광고비에 대해 아는 바 없다”라고 답했다.

공정한 식당 평가서를 자임하는 〈미쉐린 가이드〉가 해당 국가의 돈을 받고 움직였다는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한식의 인기를 반영해 서울 편 발간을 결정하게 되었다”라는 미쉐린 측의 설명이 무색해진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광고비 4억원이 들어갔다는 것도 문제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제대로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11월17일 〈미쉐린 가이드〉는 갑작스레 서울 편 홈페이지에 ‘〈미쉐린 가이드〉 광고정책을 알려드립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레스토랑과 호텔 광고를 싣지 않으며, 광고주는 편집 정책에 관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기관으로부터 광고비를 받았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게시물이다. 한국 정부기관과 국내 미식업계 전체가 외국의 한 상업지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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