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의 한 빌라촌. 주식회사 ‘누림기획’이 위치한 4층짜리 빌라가 있는 곳이다. 1층에는 자동차 관련 업체 등 회사 4곳이 있었다. 2층부터 4층까지 회사를 나타내는 간판이 붙어 있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회사가 들어와 있을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모두 가정집으로 보였다. 2층에 사는 한 젊은 부부는 “1층 빼고는 다 그냥 가정집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누림기획은 등기부등본에 이곳을 주소지로 올렸다. 1층 건물에 입주한 한 업체 관계자는 “며칠 전까지 그쪽(누림기획) 사람이 계속 드나드는 걸 보았다”라고 말했다.

누림기획은 장시호씨가 관여한 스포츠 마케팅 회사다. 장씨는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조카다. 최순실씨의 언니 최순득씨의 딸이다. 장씨와 제주도 서귀포시 고급 빌라에서 함께 살며 집안일을 돕던 임 아무개씨가 누림기획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누림기획은 지난해 7월15일 설립되었다. 같은 날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동계영재센터)도 설립되었다. 누림기획의 전신은 주식회사 라임프로덕션이다. 라임프로덕션에도 장시호씨 측근들이 사내이사로 올라 있다. 이들 회사와 동계영재센터는 사람뿐 아니라 사업상으로도 얽혀 있다. 동계영재센터의 예산이 누림기획으로 흘러들어 가기도 했다. 동계영재센터가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제출한 ‘2015년 동계스포츠 영재 선발·육성 프로그램 운영 지원 정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누림기획에 5732만원이 지급되었다.
 

ⓒ시사IN 조남진2014년 9월20일 인천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을 마치고 언론 인터뷰 중인 정유라씨(앞)를 지켜보는 장시호씨.

이 밖에도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더스포츠엠(SPM)에도 장시호씨 측근이 포진해 있다. 이 회사의 실소유주도 장씨로 의심받는다. 동계영재센터 이 아무개 과장은 〈시사IN〉 기자와 만나 “채용 공고 사이트를 보고 동계영재센터에 들어왔다. 일을 하던 중 장시호씨가 회사를 하나 만드니 명의를 빌려달라고 해서 가족과 상의한 끝에 더스포츠엠 등기에 이름을 올렸다”라고 말했다.

누림기획·라임프로덕션·더스포츠엠·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교집합은 장시호씨다. 장씨를 비롯한 최순실씨 일가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이권 사업에 개입하기 위해 급조한 사단법인·회사라는 의혹을 산다.

장시호씨는 동계영재센터를 만들며 이규혁 전 국가대표 등 스타 선수를 끌어들였다. 스포츠 스타가 이사로 있다고는 하지만 새로 생긴 사단법인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6억7000만원에 가까운 예산을 배정했다(〈시사IN〉 제477호 ‘공주 뒤에 있던 그녀, 장시호’ 기사 참조). 사단법인 등록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동계영재센터 이사인 이규혁씨는 〈시사IN〉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일사천리로 되는 게 (내가 느끼기에도) 좀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유명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김종 문체부 차관 쪽에 부탁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장시호에게) ‘김종 차관님을 아느냐?’라고 물으니 (장시호가) ‘개인적으로 알지만, 그보다 훨씬 더 위를 안다’라고 말했다.”
 

장시호씨가 관여한 회사에 특혜가 계속 이어졌다. 주소지도 불분명한 누림기획은 지난해 10월 문체부가 주관한 ‘제53회 대한민국체육상’ 행사 진행 사업을 따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춰 건설 중인 강릉스피드스케이트장은 올림픽 이후 철거할 예정이었다가 지난해 4월 문체부가 올림픽 후에도 존치하기로 결정했다. 강릉스피드스케이트장을 동계영재센터가 사용하기로 변경되었는데 이 번복 결정에 장시호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장시호씨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장씨와 15년 지기인 한 관계자의 말이다. “장시호는 ‘이모(최순실)는 우리 엄마(최순득) 말에 꼼짝 못한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되기 전 엄마가 불러서 삼성동 (박근혜) 집에 김치 등 반찬을 가져다주는 심부름 간 적도 있고, 우리 엄마 김치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이 안 먹는다’는 말도 하곤 했다.”

장시호씨와 초기에 동계영재센터 설립 준비를 함께했던 또 다른 한 측근은 “장시호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품 사업에도 눈독을 들였다. 마스코트를 이용해 장갑이나 컵을 팔면 그게 얼마냐는 말을 자주 했다. 동계영재센터 관련 돈이 이제 겨우 5억~6억원으로 드러났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큰 이권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다 들통이 난 것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를 호랑이에서 진돗개로 바꾸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원래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까치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선정했다. 그런데 차은택씨가 추천했다고 알려진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진돗개로 마스코트를 교체하라고 직접 요구했다. 지난 4월 당시 김종덕 장관과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스위스의 IOC 본부까지 방문해 마스코트 교체를 요청했지만,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승인을 거부해 물거품이 되었다. 장시호씨 측근은 “진돗개로 마스코트를 교체하는 작업에 장시호씨도 관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장씨의 차명 회사 의혹이 있는 더스포츠엠의 등기상 설립 목적에 ‘로고 및 마스코트 제작’도 포함되어 있다.

사업체 공식 문건에는 ‘장시호’ 이름 없어

정작 이 모든 사업의 공식 문건에는 장시호씨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초기 동계영재센터 이사로 제안을 받았던 한 스포츠 인사의 증언은 구체적이다. 그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절대 자기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드러내며 일을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장시호가 모든 걸 다 지시했다. 한 번은 내게 흰색 2G 폰을 건넸는데 대포폰이었다. 사업 관련해서 연락할 때는 이 대포폰을 이용하라고 했다. 이것을 열어보니 번호가 딱 3개만 저장되어 있었다.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대포폰부터 반납하라고 했다. 막판에는 그 전화기로 김종 문체부 차관이 전화를 해왔다. 김 차관은 ‘왜 그만두느냐’고 하면서 최순실씨 아지트인 테스타로싸 카페로 오라고 했다. 최순실이 직접 전화해 화를 낸 적도 있다.”

이 관계자는 장씨의 차명 회사 의혹을 받는 누림기획과 더스포츠엠 직원들도 보안에 철저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장시호씨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지급한 휴대전화와 노트북으로만 업무를 보게 했고, 이메일 비밀번호도 2주에 한 번씩 바꾸게 했다”라고 말했다. 장시호씨를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장시호 주변 사람들이 부지런히 다니면서 증거인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검찰에 가도 걸릴 게 없다고 자신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11월18일 검찰에 소환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조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11월18일 뒤늦게 장시호씨를 체포했다. 앞서 11월16일 핵심 관련자인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다음 날 김 전 차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차관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동계영재센터에 삼성전자가 16억원을 지원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삼성의 후원금 5억원 규모보다 더 큰 금액이다.

검찰은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 총괄사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국제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사장은 지난 6월까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지냈다. 동계영재센터 설립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동계영재센터 이규혁 전무이사가 김재열 사장을 돈 문제로 만나러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정황들이 제일기획 압수수색과 김 사장의 소환 배경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규혁씨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시사IN〉은 이규혁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기자명 김은지·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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