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 옮김
살림 펴냄
에너지 없이 돌아가는 국가는 없다. 에너지는 언제나 국제정치의 제1 변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어느 원리주의 이슬람 왕가는, 사막에서 석유가 뿜어져 나온 덕에 난데없이 이슬람 세계를 대표하는 가문이 되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은 화석연료의 수호자다. 그는 기후변화가 미국의 제조업을 목조르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해 세계의 과학자들을 뒤로 나자빠지게 했다. 세계는 이 흥미진진한 새 리더 덕분에 한동안 고생 좀 하게 생겼다.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는 마치 트럼프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제목이다. 최전선의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는 물리학과 경제학을 넘나들며 에너지 이슈를 종횡무진 개관한다. 에너지에 대한 의견으로도 진보와 보수를 나눌 수 있다면, 그를 진보파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물리학을 무기로 원전을 찬성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공포가 터무니없이 과장되었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탈핵론자라면 더더욱, 일단 읽어보시라.

이 깐깐한 과학자는 그간 제기된 기후변화의 증거들 중 몇몇은 “충분하지 않다”라고 기각한다. 어떤 연구는 부도덕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미국 언론에서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그는 독립적으로 방대한 검증 연구를 설계하여, 기후변화는 대부분 인간에 의해 일어난 것이 맞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트럼프에게 누가 스무 번쯤 읽어줬으면 하는 대목이 여기다.

이 물리학자는 에너지 경제학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래서 이 책은 에너지의 물리적 속성과 현실의 이용 가능성을 동시에 포착하는 보기 드문 책이며, 덕분에 정책 아이디어로 이어질 재료를 가득 담고 있다. 읽고 나면 자신만만한 제목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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