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월급명세서를 살펴보라. ‘장기요양보험료’라는 항목이 있다. 매달 내는 국민건강보험료에 6.55%(2016년 요율)를 곱한 금액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누구나 내는 이 보험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원이 된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동시에 노인장기요양보험 가입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다. 2003년 처음 추진기획단이 꾸려진 이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국회를 통과되면서 구체화됐다. 본격 시행된 것은 2008년 7월1일부터다.

장기요양보험의 수급 대상자는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이라도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앓는 사람 중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다. 심신 상태·기능 저하의 정도에 따라 1~5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종류와 범위가 달라진다. 급여는 크게 요양보호사가 집에 찾아와 목욕·식사 등을 도와주는 재가급여, 요양원 등에 입소하면 지원되는 시설급여로 나뉜다. 많은 노인과 간병 가족이 이 제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시사IN 이명익병상에 누운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
그러나 부족한 점이 많다.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는 재가 서비스는 등급이 높아도 하루 최대 4시간만 이용할 수 있다. 보호자가 잠깐 외출은 할 수 있어도 직장에 나갈 경우 그 공백을 메우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9월부터 ‘24시간 방문 요양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한 해 6회로 제한된다. 어차피 ‘가족 부양’이 없으면 작동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노인요양 시설로 지급되는 시설급여는 눈먼 돈이 되기 일쑤다. 요양보호사 수를 부풀리거나 유령 입소자 명단을 만드는 식으로 장기요양보험 허위·부당 청구를 한 노인요양원이 2014년 조사 대상 557곳의 64.1%인 357곳에 달했다. 공공의 돈을 받는 노인복지 시설이 사실상 돈벌이를 위한 개인 영리사업체로 전락한 것이다.

2008년 6월 1244개였던 노인요양원은 작년 7월 4999개로 늘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시설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인 A등급을 받은 기관은 지난해 14.1%에 그쳤다. 최하위권인 D·E 등급이 42.4%를 차지한다. 이런 곳에서 터져 나오는 노인 학대 사건은 심심치 않게 사회면 사건·사고 뉴스란을 장식한다. 경기도 한 노인복지 시설 사회복지사는 “요양원들 대다수가 노인을 돌봄 대상이 아닌 장기요양보험 급여를 갖고 오는 돈지갑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요양원 대다수가 노인을 돈지갑으로 본다”

차라리 내가 모시고 말지 싶어도 일과 병행할 방도가 없다. 정부는 가족의 질병·사고·노령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할 때 사업주가 이를 허용하라는 ‘가족돌봄휴직’ 조항을 2012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추가(제22조 2항)했다. 여기에도 조건이 많다. 휴직을 사용하기 30일 전까지 신청해야 하며 연간 최장 90일로 제한된다. 대체인력 채용이 불가능한 경우,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등에는 사업주가 거부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무급이다. 실제 근로 현장에서 이 제도가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 사업주가 부당 거부하는 사례는 없는지 정부는 관련 통계조차 없다.

2014년 ‘노년기 가족 돌봄의 위기와 지원방안 연구’를 진행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최인희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돌봄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당연히 가족이 해야 할 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고령화 시대에 늘어날 수밖에 없는 노인 돌봄 부담을 가족에게 얼마나 지우고 또 사회는 얼마나 지원할지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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