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태양열·바이오매스·지열·풍력 등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예외다. 독일이나 미국처럼 100% 신·재생 에너지 도시라는 꿈조차 꾸지 못한다. 그럼에도 작은 실험이 일어나고 있다. 도시는 아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섬에서 100% 신·재생 에너지 자립을 꿈꾸고 있다. 죽도·가파도·가사도·울릉도 등이다. 그 가운데 한 곳인 죽도를 찾아 신·재생 에너지의 현재를 따져보았다.

충남 홍성군 남당항을 출발한 배가 속력을 냈지만 많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10분여 뒤 섬에 닿았다. 부두에 내리자 태양광 모듈이 장착된 작은 전자 광고판이 보였다. ‘100%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서해안 첫 번째 자립 섬’이란 문구가 있었다.

행정구역상 죽도는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에 속해 있다. ‘안면도 동쪽’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다. 안면도와 홍성군 사이에 있는 바다가 천수만인데, 죽도는 천수만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육지에 둘러싸인 죽도 앞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한 날이 많다. 전체 면적은 15만8600㎡(약 4만8000평)로, 섬을 일주하는 데에 2시간이 채 안 걸린다. 주민 70명가량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시사IN 신선영신·재생 에너지 섬으로 거듭난 죽도의 태양광 발전소를 하늘에서 본 모습.
한산했던 죽도가 주목받은 것은 지난해 5월18일 신·재생 에너지 자립 시설이 완비되면서부터다. 섬에는 모두 650여 장, 201㎾ 규모 태양광 모듈이 설치됐다. 이 섬에서는 전례가 없던 큰 공사였다. 70명이 사는 외딴섬에 27억원이라는 ‘거금’이 투입됐다. 에너지관리공단과 충청남도, 한화S&C가 함께 재원을 분담했다. 현재 발전소 관리는 충남 홍성군에서 담당하고 있다. 죽도의 에너지 자립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기업의 대형 합작 프로젝트다.

에너지 자립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 ‘에너지 의존’ 체계부터 알아야 한다. 국내 전력 공급은 단일 계통이다. 각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중앙에서 전국 각지로 퍼뜨리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국토의 변두리에 있는 도서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 섬 대부분은 뭍에서 송전선을 연결해 전력을 얻고 있다. 다만 지형상 송전선 연결이 곤란하거나 전력 사용량이 적은 곳에서는, 육지에서 디젤 연료를 운송해 섬 안에서 전력을 만들어 쓴다. 송전선을 연결하든 연료를 가져오든 에너지를 육지에서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같다.

죽도는 원래 디젤 발전을 하던 곳이었다. 디젤 발전기는 섬 안에 있었지만, 그 원료는 뭍에서 실어온 것이었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디젤 발전기 소음에 시달렸다. 지난 5월부터 가동된 태양광 발전기는 원료가 자연에서 나온다. 소음이 없어지고, 환경오염도 줄었다. 국내 단일 계통 전력체계에서, 에너지 자립 섬이란 말은 곧 ‘친환경’을 내포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 섬의 태양광 발전 설비는 흔히 볼 수 있는 태양광 장치와 어떻게 다를까? 가장 큰 차이는 ESS(Energy Storage System)다. ‘에너지 저장장치’를 뜻하는 ESS는, 말 그대로 태양광으로 생산된 전력을 저장하는 구실을 한다. ‘전력 저장’ 기술은, 일조량에 따라 전력 공급이 들쭉날쭉한 태양광 발전의 결정적 단점을 보완한다. 낮에는 남는 전기를 ESS에 저장해두고 밤에 꺼내 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장마철처럼 오랫동안 태양이 내리쬐지 않는 기간에도 ESS로 얼마간 버틸 수 있다.

죽도 태양광 발전만의 다른 특장점도 있다. 자동 발전제어 시스템이다. ‘100% 신·재생 에너지 자립 섬’을 목표로 했지만, 아직 죽도 전력발전소는 기존 디젤 발전기를 없애지 않았다.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서다. ESS가 바닥날 정도로 일조량이 떨어지는 비상시에 대비해 여전히 소규모 디젤 발전을 가동하고 있다. 낮 기준 ESS 용량의 21%, 밤 기준 35% 이하로 축전량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디젤 발전기가 돌아간다. 총발전량이나 ESS 잔여 축전량 따위 주요 지표들은 발전소 내 모니터에 24시간 표시된다. 김동규 죽도발전소 소장은 “자동 발전제어 시스템 덕에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실제로 디젤 발전기를 돌리는 일은 거의 없다. 5월 이후 90%가량을 신·재생 에너지로만 해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태양광 발전 해도 전기요금은 그대로

발전소 운영 주체는 홍성군이지만, 장비 설치를 총괄한 것은 한화S&C였다. 한화S&C 측은 사업비 27억원 중 16억원을 댔다. 지자체 사업에 대기업이 발 벗고 나선 이유가 있을까? 한화S&C 출신으로 지금은 충남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있는 권오근 창업지원팀장은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한화연구소가 있고, 충북 진천·음성에는 태양광 셀 모듈 공장이 있다. 대전과 충북의 연구·제조 기관을 활용해 충남 죽도에서 사업화로 구현하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들의 삶에는 변화가 생겼을까? 일단 디젤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소음에서 벗어났다. 디젤 발전을 하던 때처럼 전기가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된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한 주민은 “(태양광 발전) 설명회 때는 전기료를 내린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안 내렸다”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피부에 와 닿는 전기료 인하 효과를 바랐다. 에너지 자립으로 전기 연료 값이 들지 않는데도 전기요금을 낮추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죽도발전소와 홍성군, 충남창조경제혁신센터 측 관계자들은 “전기료를 낮추면 주민들이 전기를 과하게 쓰게 되고 전력 사용이 늘면 태양광 발전으로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전력 사용이 예상 밖으로 늘어 태양광 발전만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디젤 발전기를 더 많이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자립의 의미는 퇴색되고, 사실상 전시행정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접근 방식 자체가 ‘한국적’이라 아쉬운 대목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100% 신·재생 에너지 도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분야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시 기획’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시사IN〉 제477호 ‘미래를 다투는 독일 도시들’ 기사 참조). 보이지 않는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민들과 ‘디테일’을 바꾸는 플랜을 마련하고 함께 바꿔나가야 하는데, 한국은 철저히 에너지 분야에 한정해 접근했다. 마을 전체가 주민들과 함께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 있고, 모든 주민들은 다음에 자신이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참여해야 하는데, 주민들을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게 하는 것도 ‘한국적’이다. 그런 점에서 ‘신·재생 에너지 자립 섬’으로 첫발을 뗀 죽도는 갈 길이 아직 멀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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