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회 철이다. 학부모는 오지 말아달라는 완곡한 내용의 통신문이 왔다. ‘국·영·수’보다 ‘음·미·체’를 중시한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시고 두어 해 동안 학부모 공개 학예회를 재미나게 본 터라 아쉬웠다.

하지만 수긍이 갔다. 아이들끼리 노래 부르고 발차기 뽐내고 손가락 마술쇼 하고 아이돌 춤을 추며 대미를 장식하면서 충분히 신나고 즐거울 때 유독 흐름을 끊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녀 순서를 앞두고 교실 무대 가운데로 들어와 스태프처럼 활동하시는 분들 말이다. 심지어 앞의 아이가 피리를 다 불지도 않았는데 등받이 없는 의자에 날개만 한 리본이 달린 드레스를 입고 앉아 첼로 연주를 해야 한다는 분들, 영어 자작시 낭송 배경음악을 꼭 고성능 스피커를 연결해 틀어야 하는 분들. 통신문에는 “학부모께 부담을 드리지 않기로 했다”라고 나와 있지만, 한마디로 “설치지 말라”는 소리였다. 생큐 교장쌤!

학부모 부담만 던 것이 아니다. 교사들도 공개수업이나 참관수업을 앞두고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괜히 신경 쓰고 애들 잡을 일도 생긴다. 이해한다. 우리도 집에 손님 오면 그러니까. 현명한 교사는 적절히 준비하지만 그렇지 않은 교사도 있다. 그런 반이면 주로 임원인 아이의 학부모가 교실 청소와 미화, 수업 준비물 및 아이들 지도까지 ‘피박’을 써야 한다.

ⓒ김보경 그림
다문화를 주제로 한 공개수업을 앞두고 담임교사한테서 아이들이 입을 각국의 의상을 빌리거나 만들어오라는 ‘부탁’을 받은 어느 학부모는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 옷을 구했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어느 나라 옷을 입히느냐로 다른 학부모들의 불만과 원성이 나오자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이 생겼다는 후문이다. 그 반 아이들은 몇 날 며칠 책걸상 밀어놓고 교실에서 ‘런웨이’ 연습을 해야 했고, 그 학부모는 빠지는 머리카락을 속절없이 흩뿌리며 그 수발을 다 들어야 했다. 이런 ‘선의의 도움’을 드린 뒤에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우리 반 아무개 등등이 왜 이렇게 내 속을 썩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러려고 교사 했나 자괴감이 든다’는 하소연을 참을성 있게 들어줘야 했다.

최근에 이런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행동을 일컫는 적절한 표현을 찾았다. ‘순실한 행동.’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한마디로 ‘어이 순실’이다.

순실한 행동은 학부모 단톡방에도 이어진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면 제 휴대전화가 있건 없건 전화하고 문자하는 정도는 누구나 한다. 그런데도 굳이 초저녁부터 알림장 내용을 단톡방에 묻거나 모둠별 준비물을 점검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부득이하게 학부모 손이 가는 준비물은 요새 거의 없거니와 설령 있다 해도 아이들끼리 일단 교신하고 해결할 일이다. 아이가 까먹고 잠든 뒤라거나 퇴근 후 뒤늦게 확인한 상황이 아닌 초저녁 시간에 이런 내용으로 단톡방 벨이 울리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특혜받는 ‘찐따’보다 위대한 평민이 백배 낫다

아이의 일과를 이렇게 떠먹여주듯이 챙기다 보면 모둠 같은 데서 무언가를 정해야 할 때 “엄마한테 물어보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딱한 아이가 된다. 빨간 펜 첨삭지도와 떠받들림으로 점철된 양육 환경이 대를 이어 어떤 ‘찐따’를 만드는지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유명 대학 신입생 학부모들의 단톡방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대체 그 방에서는 무엇을 얘기하느냐고 물으니 어느 수업을 수강하는 게 점수 받기 좋은지, 어느 교수는 스타일이 어떤지 따위의 학업 정보를 교환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아, 어이 순실!  

이 와중에도 아이들은 실속을 챙기는지라 학예회 연습을 핑계로 ‘합법적으로’ 만나서 논다. 방과 후 시간이 안 맞으니 매일 저녁 7시에 후딱 밥 먹고 만나거나 주말에 내리 만나거나 한다. 내 아이는 몇 주째 토요일 오후 아파트 분수대에서 약속을 잡는 눈치다. ‘민중총궐기’ 수준이다. 만나서 놀고, 놀고 또 논다. 공개 학예회가 아니므로 연습은 대충 해도 된다는 걸 안다. 바람보다 먼저 눈치 까고 바람보다 먼저 논다. 과열 양상이 심해져도 학예회를 포기하지 않는 교장쌤의 깊은 뜻이 혹시 이건가. 특혜받는 ‘찐따’보다 위대한 평민이 백배 낫다. 백배 잘 논다.

기자명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