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계에서 시작한 최순실발 비리 태풍이 평창동계올림픽까지 번지고 있다. 국정 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가 K스포츠재단·더블루케이 등을 이용해 평창동계올림픽의 각종 이권을 획득하려 했다는 증거와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의혹의 중심에는 ‘누슬리(Nussli)’라는 낯선 이름이 등장한다. 누슬리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벤트 시설 전문 건설사다. 누슬리는 최씨 일가가 추진하려던 사업의 실질적인 시행사다. 최순실씨가 소유한 더블루케이와 지난 3월 업무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 건설 사업에도 입찰과 부분 참여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IN〉 취재 결과, 누슬리는 단순히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 건설 사업만 목표로 한 게 아니었다. 〈시사IN〉이 확보한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에 따르면, K스포츠재단이 추진한 다른 사업에도 더블루케이와 누슬리가 파트너십을 이뤄 이권을 챙기려고 했다.

먼저 2016년 3월에 K스포츠재단이 작성한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기획안(〈그림 1〉)’을 살펴보자. 이 문건에 따르면 K스포츠재단은 전국 다섯 개 주요 거점 지역에 종목별 훈련시설을 마련하고, 선수를 육성할 계획이었다.
 

ⓒ연합뉴스11월9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해외 언론인에게 시설 안내를 하고 있다.

문제는 1차 사업지인 서울·경기 지역이다. 문건에 따르면, 나머지 네 개 지역은 기존 체육시설을 그대로 활용하도록 되어 있지만, 유독 서울·경기만은 기획의 방향과 크기가 달랐다. K스포츠재단은 경기도 하남시 일대에 5000여㎡ 규모의 다목적 체육관을 새로 건설할 방침이었다. 이 신규 체육관 건설에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누슬리다. K스포츠재단은 “토목건축의 비효율성을 타개할 수 있는 스포츠 시설 전문 건설회사(스위스의 Nussli 社)의 기술을 사용”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제목만 보면 이 기획이 엘리트 체육인재 육성을 위한 큰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된 기획안 가운데 두 장이 누슬리에 대한 설명과 홍보로 가득 차 있다. 지역별 세부 계획도 신규 시설을 만드는 서울·경기 지역만 다룰 뿐, 나머지 4개 지역은 단순히 나열되어 있는 수준이다. 애초에 이 기획이 ‘하남 체육관 건설’과 ‘누슬리 사업자 선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다.

이 문건 한편에는 “Nussli 社의 국내 영업권을 보유한 ㈜더블루케이 社와 협력하여 시설 건립 추진”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K스포츠재단이 산출한 하남 체육관 공사 및 운영 예상 소요비용은 약 119억원. 이 가운데 시설 건립에 예상되는 비용은 약 60억원(추정치)인데, 기획안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이 돈의 상당액은 누슬리와 더블루케이로 흘러가게 된다.

더블루케이가 누슬리의 한국법인까지 준비한 정황도 드러났다. 〈시사IN〉이 확보한 ‘기획 제안별 진행 상황(〈그림 2〉)’이라는 더블루케이 내부 문건을 보자. 3월28일에 작성된 이 문건은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의 각종 기획 진척 상황 및 담당자가 명시되어 있다. 한 파일에 두 단체의 기획 진척 상황이 함께 담겨 있고, 고영태씨 등 최순실 주변 인물이 두 단체 모두에 담당자로 적시되어 있다.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순실씨가 관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 더블루케이는 누슬리와 크게 프로젝트 4개를 함께 추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누슬리 한국법인 설립이다. ‘Nussli Korea 설립 방안 협의 중’이라는 세부 내용을 보면 더블루케이와 누슬리가 단순한 발주-시행 관계 이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누슬리 끼고 대형 프로젝트 4건 도모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는 왜 하필 국내 건설사가 아닌 누슬리에 집착했던 것일까? 평창동계올림픽에 관여했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누슬리가 부각됐다고 주장한다. 청와대 전 고위 관계자는 “평창동계올림픽 예산이 모자랐고, 사업비를 줄일 방안을 강구하던 과정에서 누슬리가 언급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K스포츠재단 관계자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이 관계자는 “최순실씨가 평창 올림픽 참여 업체들이 이미 다 정해져 있어서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체부를 통해 평창 올림픽에 가변식 좌석 등으로 공정을 바꿔서 누슬리를 끼워넣으려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기획안’이라는 제목의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위). K스포츠재단과 진행하는 사업 내용이 담긴 ‘기획 제안별 진행 상황’이라는 제목의 더블루케이 내부 문건(왼쪽).

이 문서에도 누슬리의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 사업 참여가 언급되어 있다. “3월24일 ‘개·폐회식장 가변석 가설 부문’에 대한 의견을 Nussli에서 대림산업에 공식적으로 Letter 보냈음.” 이 내용은 더블루케이와 누슬리가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 오버레이(Ovelay:설치 후 철거되는 시설. 임시 관중석 및 부속시설) 부문을 적극적으로 노렸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누슬리는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사업에 끝내 참여하지 못했다.

최순실씨가 관여한 누슬리의 사업 참여 시도는 결과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에 차질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후폭풍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찍어냈다는 의혹이다. 5월3일 조 회장이 갑자기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자, 소관 부서인 문체부는 단 몇 시간 만에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후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사퇴 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지면서, 누슬리 사업자 참여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게 사퇴 이유라는 의혹이 일었다. 이에 조 회장은 11월3일 “(언론 보도가) 90% 맞다”라며 당시 외압이 있었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역시 최씨 일가가 이권을 노려 개입한 탓에 올림픽 준비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나온다. 원래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은 올림픽 이후 철거하기로 예정되었지만,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경기장을 존치하기로 결정을 뒤집었다. 경기장 존치로 건설과 설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을 올림픽 이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서 사용키로 했다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바로 최순실씨의 조카인 장시호씨가 만든 사단법인이다.

동계올림픽 준비가 차질을 빚으면서 ‘테스트 이벤트’를 제대로 열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동계올림픽 주요 시설은 원래 국내 대회-해외 테스트 이벤트-피드백-개선 순서로 준비한다. 11월25일부터 내년 4월까지 총 26개 대회가 일종의 ‘리허설 대회’를 치르지만, 아직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은 국내 경기도 치르지 못한 채 완공이 미뤄지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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