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은 작명에 신경을 썼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을 따라간 K스포츠재단의 태권도 시범단 이름도 직접 지으려고 했다. 회장이 내놓은 태권도 시범단 이름은 ‘The Blue(더블루)’였다. 지난 1월12일 설립한 회사 이름도 ‘더블루케이’였다. 독일에도 같은 이름의 ‘The Blue K’ 개인 회사가 있을 정도로 회장은 ‘The Blue’를 좋아했다. 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은 최순실씨를 ‘최 회장’이 아닌 ‘회장’이라고만 불렀다.

K스포츠재단 실무진이 반대했다. 블루는 파란색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어권에서 우울함도 뜻한다. 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은 내부적으로 태권도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사업을 펼쳤다. 국제 활동을 위해서 더블루가 주는 영어 어감이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이름은 ‘K-Spirit(케이스피릿) 태권도 시범단’으로 바뀌었다. K스포츠재단 업무에 밝은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영어 이름이 더 블루하우스니, 회장도 자꾸 자기가 실세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 ‘더블루’를 내세운 거 같다. 그렇게 지식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최순실씨는 K스포츠재단 운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임직원들은 그녀를 ‘회장’이라고 불렀다. ‘회장’은 메모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태권도 시범단 이름뿐이 아니었다. 최순실씨는 재단 운영의 핵심인 인사와 예산도 쥐고 있었다. 핵심 보직 인선은 최순실씨가 직접 했다. K스포츠재단 고위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입사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력서를 제출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에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중년의 여성이 혼자 나왔다. 주변에서는 누군지 알려 하지 말고 ‘회장’이라 부르라 했다. 이후 합격 통보는 ‘안 선생’에게 전화로 받았다. 자신을 청와대 안종범이라 소개하며 무슨 보직을 맡으라고 했다.”

최씨의 인사 기준은 독특했다. K스포츠재단의 인사 과정을 아는 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한때 이사장이 공석이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스포츠 경력도 있는 적절한 사람이 추천됐는데, 회장이 잘랐다. ‘MB 사람이라서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때는 왜 그러나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은밀히 움직여야 하는데 MB 쪽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아니까 피하려 한 것 같다. 그쪽 인사를 배제하다 보니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스포츠마사지를 하는 지인 정동춘 운동기능회복센터장을 데려왔다. 또 삼성 출신도 꺼려했다.”

최순실씨는 K스포츠재단 업무와 관련해 ‘메모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K스포츠재단 채용과 관련해 더블루케이 이사였던 고영태씨 지인 등이 K스포츠재단에 이력서를 냈는데, 이 이력서에는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면담 해보시고 결정하심이 날듯합니다(문장 그대로 옮김).’ 최씨의 메모였다.

최순실씨의 핵심 관심은 역시 ‘수금’이었다. 지난 1월 문을 연 K스포츠재단은 지난 8월까지 19개 기업한테서 288억원을 걷었다. 매달 꾸준히 돈을 모았다. 그만큼 K스포츠재단 실무자들도 바빴다. “얘기가 되어 있으니 가서 만나보라”는 최순실씨의 전화 지시가 잇달았다. 최씨가 기업으로부터 모금에 얼마나 집요했는지는 최근 논란이 된 롯데그룹한테 돈을 받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최순실씨의 핵심 관심은 ‘수금’

지난 3월17일 K스포츠재단 정현식 당시 사무총장과 실무진은 최씨의 지시를 받고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정책본부로 향했다. 그 자리에는 소진세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과 이석환 대외협력단 기업사회적책임 팀장(상무) 등이 나왔다.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과 롯데 쪽 설명을 종합해보면, K스포츠재단은 더블루케이에서 만든 자료를 근거로 롯데에 75억원을 요구했다.

롯데는 70억원을 제시했다가, 다시 모금액을 절반으로 내렸다. 이미 K스포츠재단에 롯데케미칼 이름으로 17억원, 미르재단에 롯데면세점 이름으로 28억원을 낸 사실을 강조하며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시사IN〉이 입수한 지난 3월28일 작성된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을 보면, ‘㈜롯데와 후원 가능 여부 및 금액 타진 협의→약 35억원(건설비의 2분의 1) 지원 의사 있으나 협의 후 알려주기로 함(32쪽 사진 참조)’이라고 쓰여 있다.
 

‘20개 시·도 스포츠클럽 지원 사업’이라는 제목의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

두 달 후 롯데그룹은 6개 계열사를 통해 70억원을 K스포츠재단에 보냈다. 그런데 K스포츠재단이 열흘 만에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6월 초 전액이 모두 반환됐다. K스포츠재단의 전 관계자는 “회장이 원래 목적 사업(경기도 하남시 대한체육회의 땅을 매입해 종합 스포츠클럽 건설)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액을 보관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니 반납하는 게 좋겠다고 지시해 이사회 결의 후 전액 송금 조치했다”라고 말했다. 반환 시점이 검찰의 롯데그룹 압수수색 전날이었다.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을 보면 최순실씨는 철저하게 현금을 원했다. 최씨는 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에게 부영그룹을 만나라면서 구체적인 ‘오더’를 내렸다. K스포츠재단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회장이 명확하게 선을 딱 긋고 이렇게 얘기를 하라고 지시했다. ‘가서 (부영이) 건물 지어준다고 하면 필요 없다고 해라. 무조건 현찰로 받아와라’”고 말했다.

최 회장의 ‘오더’에 따라 정현식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은 지난 2월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을 만나기에 앞서 정 사무총장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먼저 보고를 했다. 포스코 미팅에 관한 내용이었다. K스포츠재단 내부 문건인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포스코 사장과 미팅에서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와 체육은 관심 밖이라는 태도를 느꼈다(정현식)” “포스코 회장에게 얘기한 내용이 사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즉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안종범)”라고 쓰여 있다.

한 몸처럼 움직인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

그런 다음 안 수석은 이중근 부영 회장과 인사를 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는 않았다. 위 회의록에 따르면, 정현식 사무총장은 최순실씨의 지시에 충실했다. “건설회사라고 해서 본인들이 시설을 건립하시라는 것은 아니고 재정적인 지원을 부탁드린다(정현식)” “최선을 다해서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현재 저희가 다소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이중근).”

최순실씨의 K스포츠재단 개입 정황은 문서 곳곳에서도 보인다. ‘기획_제안별 진행 상황 20160328_종합’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는 한 회사처럼 움직였다. 더블루케이 업무를 대상 기관·프로젝트명·진행 현황·담당자로 나뉘어 기재해놓았다. 더블루케이 업무임에도, 담당자에는 K스포츠재단 직원들 이름이 쓰여 있었다.

K스포츠재단 업무 또한 마찬가지다. K스포츠재단 업무 담당자에는 고영태라는 이름이 있다. 고씨는 더블루케이 이사다. 대상 기관 ‘문체부’ 프로젝트명 ‘20대 시·도 스포츠클럽 지원 사업’에 고씨가 주요 업무 담당자라고 쓰여 있다. 이와 관련해 더 자세한 내용을 담은 ‘20대 시·도 클럽 지원 기획안’ 제목의 내부 문건을 보면, 신생 재단인 K스포츠재단은 문체부 지원 60억원짜리 프로젝트를 상정하고 전국 20개 도시에 스포츠클럽을 만들 방안을 구체적으로 기재해놓았다.
 

ⓒ연합뉴스최순실씨와 공모해 대기업에 거액의 기부를 강요한 의혹이 제기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20개 스포츠클럽의 필수 종목이다. 펜싱과 태권도였다. 필수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공모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필수 종목 선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펜싱:국내 비인기 종목임에도 불구, 세계 최정상 수준인 펜싱의 저변 확대를 통해 계속적인 선수 발굴과 세계무대에서 한국 펜싱의 위상 지속을 위함.”

K스포츠재단 업무에 밝은 한 관계자는 “당시 펜싱이 왜 들어갔는지 의문이었다. 알고 보니 펜싱을 필수 조건으로 넣자고 한 이가 고영태였다. 실제로 고씨는 미승빌딩(최순실 빌딩) 2층에 실내 펜싱장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고영태씨는 전직 국가대표 펜싱 선수였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최순실씨와는 반말을 쓸 정도로 막역했다. 더블루케이의 한 관계자도 “두 사람은 업무를 하다가도 서로 소리를 칠 정도의 사이였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내부자들의 증언과 문건 등은 모두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K스포츠재단의 회장이었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최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기자명 김은지·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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