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권부의 상징 백악관에서 한 블록 정도 걸어가면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 이른다. 국회의사당으로 연결된 이 거리의 양쪽에는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그중 1717번지 건물이 요즘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민주·공화 양당 대선 후보의 정권 인수위원회가 건물의 두 개 층에 각각 입주해 있기 때문이다. 연방수사국(FBI)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가 막판 선거 지형을 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11월8일 대선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정권 인수위원회가 주목 대상이다.

지난 8월 중순 출범한 클린턴 인수위원회는 전문 인력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이끄는 100명 규모의 트럼프 측 인수위원회보다 훨씬 단출하다. 현재 클린턴 인수위원회는 최우선 과제로 잠재적 입각 후보에 대한 각종 자료를 수집·검토 중이다. 상원의 까다로운 인준 절차를 감안해 상원 소관 위원회에도 장관 후보감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정부의 경우,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자리만 장관·차관 등 40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 1000개 정도는 상원의 인준이 필요하다.

ⓒAFP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 후보와 켄 살라사르 정권 인수위원장(오른쪽)이 선거 유세를 하는 모습.
클린턴 정권 인수위원회가 바빠지면서 워싱턴의 이름난 로펌 변호사들도 덩달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미 잠재 후보 10여 명이 시간당 수백 달러에서 최고 1000달러까지 지불하며 변호사를 고용한 상태다. 자신의 경력을 사전 검증해서 납세나 금융거래 부문의 결격사유를 찾아내고 제거하기 위해서다. 특히 미국과 아시아 등에 변호사 1000여 명을 거느린 대형 로펌 ‘퍼킨스 코이(Perkins Coie)’가 인기다. 이 로펌의 정치 부문 책임자인 마크 일라이어스는 현재 클린턴 선거본부의 법률고문을 맡고 있다.

클린턴 정권 인수위원회를 이끄는 실무 사령탑은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과 오바마 행정부 1기 때 내무장관을 지낸 백전노장의 정치인 켄 살라사르다. 그 밑으로 토머스 도닐런(전 국가안보 보좌관), 제니퍼 그랜홈(전 미시간 주지사), 니라 탠든(보건 분야 전문가·미국진보센터 소장), 매기 윌리엄스(하버드 대학 정책연구소) 등 4명이 공동위원장으로 포진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입 인사 가운데 미국진보센터(CAP) 소속의 전·현직 연구원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2003년 존 포데스타 전 백악관 비서실장이 설립한 CAP는 미국의 다양한 싱크탱크 가운데서 가장 진보 성향이 강한 연구소다. 민주당 행정부 혹은 당 출신 고위 관료들을 대거 영입해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AP Photo대형 로펌 ‘퍼킨스 코이’의 정치 부문 책임자 마크 일라이어스(가운데)는 클린턴 선거본부의 법률고문을 맡고 있다.
고위직 유임시키면 ‘오바마 3기’ 될 수도

미국에는 순조로운 정권 이양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법률이 두 개 있다. 2010년 발효된 법률에 따르면, 총무처는 각 정당의 정권 인수위원회가 활용할 수 있도록 사무실은 물론 각종 사무집기와 컴퓨터 등 행정지원을 해야 한다. 2015년 발효된 법률에 따르면, 현직 행정부는 대선 투표 당일로부터 최소 6개월 이전에 백악관과 연방정부의 업무 인수·인계를 위한 위원회를 각각 설치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해당 위원회를 이미 구성해 가동해왔다. 오바마-클린턴 양측의 정권 인수·인계 대표는 매주 목요일 상설회의에 참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 대선에서 클린턴이 승리하면 기존 민주당 행정부의 연속인 만큼 인수 작업도 그만큼 수월할 전망이다.

클린턴 정권 인수위원회는 내년 1월20일 대통령 취임식 이전까지 공약 이행 준비 작업 및 3000개 이상인 정무직 인선에 집중하리라 보인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 후보들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수위원회 업무의 생명은 철저한 보안이기에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없다. 다만 주요 언론들이 일부 인사를 특정 고위직에 유력한 것으로 거론하고는 있다. 국무장관 후보로는 국무부 차관을 지낸 웬디 셔먼, 부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번스, 커트 캠벨 전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이 잠재 후보로 꼽힌다. 국방장관 후보로는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을 지낸 미셸 플러노이가 1순위로 꼽히는 가운데 잭 리드 상원의원, 애덤 스미스 하원의원 등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핵심 각료만큼이나 비중이 큰 백악관 비서실장과 국가안보보좌관을 누가 맡을지도 관심거리다. 현재 비서실장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론 클라인 변호사다. 그는 클린턴의 대선 TV 토론 준비 작업을 총괄했다. 일부에서는 클린턴 캠프의 좌장인 존 포데스타가 에너지 장관으로 가지 않을 경우 비서실장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국무·국방 장관 못지않은 권력 핵심부인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예일 대학 법대 출신 변호사로 대법관 서기와 국무부 핵심 공직을 두루 거친 제이크 설리번이 1순위에 올라 있다. 그는 2008년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을 때 인연을 맺은 뒤 클린턴의 국무장관 재직 시절에 비서실 차장 및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지냈다. 특히 그는 2013년 11월 타결된 미국·이란 핵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 협상단의 일원으로 핵심적 구실을 맡기도 했다.

오바마에서 클린턴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행정부의 연속성 덕분에 고위직 인선 과정이 단순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새로운 인물을 고르고 상원 인준을 받는 데 드는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기존 고위직 인사들을 그냥 유임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 등 일부 장관이 유임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예컨대 새로운 인물을 법무장관으로 지명했다가는, 공화당이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과의 관련성을 문제 삼으며 지명자의 인준을 질질 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린턴이 기존 인사들을 대거 유임시킬 경우 ‘오바마 3기’라는 오명에다 자신의 색깔을 지닌 행정부를 꾸릴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실제 클린턴은 집권 시 각료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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