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9일(현지 시각) 벌링턴 전력국에서 커미션(Commission) 월례회의가 열렸다. 커미션 위원들과 닐 런더빌 벌링턴 에너지국장이 참석했는데, 가브리엘 스테빈스 커미션 의장이 가운데에 앉았다. 위원들이 전력 관련 현안들을 질의하면 런더빌 에너지국장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역방송과 신문이 회의 과정을 취재했다. 시청은 월례회의를 영상으로 촬영했다.

커미션은 한국에는 없는 특수한 대의기관이다. ‘주민 대표’라고 번역하기에는 막강한 권한을 설명하기 어렵고, ‘위원회’라고 번역하면 주민자치의 성격을 놓친다. 커미션의 위원들은 자원한 시민 5명으로 구성된다. 시의원들과 벌링턴 전력국 간부들이 지원자들을 심사한 뒤 시장이 최종 5명을 임명한다. 벌링턴에는 전력뿐만 아니라 교통, 소방 등 다양한 부서의 커미션이 있다. 버몬트 주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도 분야마다 커미션이 있다. 각 지자체는 지역 특성에 따라 커미션을 설치할 분야를 스스로 정한다. 더러는 보드(board)라는 기구를 두기도 하는데, 성격은 커미션과 다르지 않다.

ⓒ시사IN 조남진벌링턴 전력 커미션은 시장이 바뀌더라도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한다.
무급 봉사직인데도 경쟁은 치열하다. 단순 자문기관이 아니라 막강한 실권을 갖기 때문이다. 민간 사업자나 시청이 지역에서 큰 사업을 하기 위해 밟는 첫 절차가 커미션 승인 요청이다. 가령 지역에 새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사업가는 커미션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시 의회의 심사조차 받을 수 없다. 커미션 승인 절차는 정경유착을 방지하며, 굵직한 사안에 대한 지역 여론을 탄력적으로 반영한다.

2000년대 초반 100% 신·재생 에너지 계획을 처음 제안한 게 벌링턴 전력 커미션이다. 이후 15년 동안 시장이 교체되는 가운데에도 커미션은 계획을 꾸준히 압박해왔다. 벌링턴이 다음 목표로 설정한 ‘넷제로’ 역시 커미션 회의에서 나왔다. 벌링턴 전력 커미션은 1년6개월 전 ‘넷제로’에 대한 설문조사를 주도했고, 압도적 찬성 의견을 근거로 시청에 건의했다.

스테빈스 의장은 커미션의 지위와 역할을 이렇게 표현했다. “커미션은 시청 아래에 있는 조직이 아니다. 벌링턴 시민들을 대표해 권력을 견제한다. 더 복잡하지만 일을 올바르게 만드는 곳이다. 민주주의란 게 그렇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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