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라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문을 열었다. 산간 오지 중 오지로 꼽히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자리 잡았다. 가다가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곳이다. 문수산·구룡산·각화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수목원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이미 숲 천지인 곳에 들어선 수목원인 셈이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광릉수목원에 이어 두 번째 국립수목원이다.

수목원은 아직 미완성이다. 내년 하반기 정식 개장을 목표로 지난 9월 임시 개장했다. 일부 시설은 한창 조성 중이다.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한 사람 200명만 전기자동차를 타고 수목원을 관람할 수 있다. 사전 예약 없이 방문한 사람은 일부 시설만 둘러볼 수 있다. 그래도 아시아 최대 수목원의 위용을 먼저 보고 싶은 사람들로 평일에도 예약이 꽉 찼다.

주변은 벌써부터 들썩들썩한다. 정식 개장 전인데도 수목원 이름을 단 펜션, 식당 등이 여러 곳 들어섰다. 이렇다 할 유명 관광지가 없는 봉화군은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수목원 동쪽 10㎞에 있는 천년 고찰 부석사가 있지만 행정구역으로는 경북 영주시다. 코레일의 경우 봉화군 내 기차역을 연계한 수목원 관광상품 개발도 고려하고 있다. 봉화군은 춘양역·승부역·분천역 등 영동선 기차역을 12개나 지나는 기차 강세 지역이다.

ⓒ시사IN 이명익지난 9월 서울 잠실야구장 3700개와 맞먹는 규모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춘양목’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들어섰다.
막상 수목원을 찾아가 보면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은 아니다. 전체 면적 5179ha로 서울 잠실야구장 3700개와 맞먹는 넓이라지만, 실제 탐방 가능 지역은 200ha 정도다. 물론 이 정도 탐방구역 규모로도 아시아 최대인 건 맞다. 광릉수목원 탐방구역보다 두 배 넓다. 전기자동차를 타고 1~2시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는 면적이다. 탐방구역 바깥은 죄다 산지다.

봉화군 춘양면은 예로부터 소나무로 이름 높았다. 이곳에서 자라는 ‘춘양목’은 나무가 곧게 자라는 데다 잘 썩지 않아 한옥을 짓기에 으뜸이었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이 춘양목을 품에 안았다. 수목원 부지 내에 ‘문화재용 목재숲’이 있다. 이 지역이 수목원 적지로 최종 선정된 이유다. 탐방 구간 부지가 밭과 과수원이어서 산림 훼손이 적다는 점도 작용했다.

세계 모든 식물종자 보관할 ‘시드볼트’ 조성

수목원은 설립 단계부터 눈길을 끌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호랑이숲’ 조성이 화제였다. 수목원 내 3.8ha(약 1만1495평) 부지에 호랑이가 살 수 있는 숲을 조성해 방사한다는 계획 때문이었다. 1920년대에 멸종된 토종 호랑이를 복원하겠다는 프로젝트였다.

환경단체가 반발했다. 동물원 사파리 같은 곳을 왜 국립수목원에서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논란이 일었지만 호랑이숲 조성은 현실화됐다. 기자가 직접 확인해보니 숲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우리였다. 주변에 펜스를 둘러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수목원 측은 내년 정식 개장에 맞추어 호랑이 10마리를 이곳에 풀어놓을 예정이다.

ⓒ시사IN 이명익
ⓒ시사IN 이명익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는 식물종자를 영구 저장하는 ‘시드볼트(Seed Vault)’라는 시설이 있다(맨 위). 이 체험 전시관에서 어린이 관람객이 전시된 자료를 관람하고 있다(위).
백두대간수목원의 설립 취지는 가상하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에 자생하는 고산식물을 보존하자는 취지였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터전을 잃고 있는 고산식물의 보호막이 되어준다는 계획이다. 산림환경연구동·알파인하우스 등 고산식물 연구단지가 수목원의 주요 시설 가운데 하나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수목원 탐방구역 끝까지 가면 ‘시드볼트(Seed Vault)’라는 지하 시설이 있다. 말 그대로 ‘씨앗 저장고’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물자원 멸종에 대비해 전 세계 모든 식물종자를 이곳에 영구 저장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노르웨이가 이와 비슷한 시설을 만들었지만 농업용 종자에 국한했다. 이곳이 ‘한국판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이유다.

세계 각국의 관심도 크다. 영국 왕립 밀레니엄시드뱅크는 백두대간수목원의 시드볼트 시설에 감탄해 종자 기증 등 협력을 약속했다. 오스트리아·알제리·튀니지 등에서도 협력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식물종자 약 3만 점이 이곳에 보관 중이다. 향후 전 세계 식물종자 200만 점 보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사IN 이오성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조성되는 ‘호랑이숲’은 동물원 사파리와 다를 것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수목원을 둘러보다가 어리둥절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년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정식 개장할 때 법인 소속이 된다는 것이었다. 산림청이 국비 수천억원을 들여 지은 ‘국립’수목원을 법인화한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백두대간수목원 설립 계획이 나온 것은 2009년이었다. 시드볼트 건설 등 연구·식량 보존에 방점을 찍는 국립수목원을 만든다는 계획이 이때부터 나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2013년 행정자치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백두대간수목원을 법인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림청 기관으로 출범할 경우 공무원 숫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 인력 활용 면에서 법인이 자유롭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이었다.

산림청은 난색을 표했다. 수목원 시설을 법인화하는 것은 전에 없던 발상이었다. 그러나 행자부 방침은 변함없었다. 결국 현재 산림청은 법인화를 골자로 한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수목원정원법)’을 입법 예고한 상태다. 법률안에 따르면 새로 설립되는 법인명은 ‘한국수목원관리원’이다. 이사장 1명을 포함한 13명의 이사와 감사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중요한 것은 돈과 관련한 대목이다. 법률안은 ‘운영비는 국가 등으로부터의 출연금·보조금 및 위탁업무에 따른 수입금 등으로 충당하도록 하는 한편, 산림청장이 기후·식생대별 국립수목원의 운영·관리 업무 등을 한국수목원관리원에 위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이라고 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 한국수목원관리원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이야기다.

법인화는 두 가지 문제점을 내포한다. 우선 시드볼트 같은 비영리 종자 보존시설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식량주권 문제가 날로 중요해지는 지금, 나라 간의 식물종자 거래는 예민한 문제다. 시드볼트는 설립 초기부터 어떤 형태의 연구 또는 활용 없이 오직 종자 보관 기능만을 수행한다고 천명해왔다. 그래야 외국의 종자은행 등이 안심하고 씨앗을 ‘무상 기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호랑이숲’ 조성해서 수익 창출에 활용하나

법인화 이후 민간 성격이 두드러질 경우 외국에서 한국의 시드볼트를 불신할 공산이 크다. 산림청 관계자는 “외국의 종자 기증 여부가 불투명해질 경우 다른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뚜렷한 대비책이 없다. 자칫 시드볼트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산림청 내부에서도 나온다.

또 다른 문제는 백두대간수목원이 수익 창출에 방점을 찍고 운영되는 것 아니냐 하는 염려다. 호랑이숲 등 인기를 끌 만한 시설이 조성되는 만큼 적잖은 이용요금이 책정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법인으로 문을 연 국립생태원(환경부 산하)의 경우 입장료만 5000원(성인 기준)이다. 국립광릉수목원 입장료(1000원)와는 차이가 크다. 백두대간수목원 역시 법인화한 시설의 전례에 따라 이용요금이 책정될 수밖에 없다.

백두대간수목원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립수목원 법인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2021년 세종시에 건설될 국립중앙수목원, 전북 부안에 들어설 국립새만금수목원(사업 추진 중)이 모두 법인화로 추진돼 한국수목원관리원에서 운영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수목원관리원이 공공수목원(시립·도립 등) 상당 부분을 포괄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조심스럽게 나온다.

우리 사회가 수목원을 공공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연원을 따지자면 1999년 임업연구원 소속이던 광릉수목원이 산림청 소속으로 바뀌면서 국립수목원으로 승격된 것이 첫걸음이다. 이후 환경·생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수목원의 위상도 높아졌다. 숲해설사 같은 직업군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국립수목원 법인화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윤충원 교수(공주대 산림자원학과)는 “수목원은 눈앞의 수익 창출이 아니라 미래 자원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국가가 더 큰 책임을 져도 모자랄 판에 법인화로 무엇을 얻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나랏일이 꽃과 나무에게도 닥쳤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