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렸던, 새누리당의 고정 지지층 크기로 간주되던 숫자다. 고정표 35%를 가진 새누리당은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선거를 이길 수 있는 ‘신이 내린 정당’으로 불리곤 했다.

5%. 11월4일 나온 11월1주차 한국갤럽 주간 정례조사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다. 김영삼 대통령이 외환위기 당시 받아들었던 6% 기록을 깬, 한국갤럽 조사 사상 최저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통치 불능 상태다. 같은 조사에서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도 18%로 추락했다. 2004년 탄핵 역풍 때와 같은 수치다.

35%와 5%의 간극은 지나치게 크다. 장기적으로 어느 쪽이 현실에 가까울까. ‘최순실 쇼크’가 지나가면, 청와대와 여당은 고정 지지 기반을 복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최순실 쇼크가 새누리당의 고정 지지층을 허물어뜨리는 지각변동을 만들어낼까. 최순실 정국 이전부터 새누리당의 고정 지지 기반은 천천히, 하지만 눈에 띄게 침식되고 있었다. 최순실 쇼크가 갑자기 덮쳐온 지진이라면, 이미 지반이 취약해져 있었던 것이 위기관리마저 파산한 대형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연합뉴스비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위)는 하나’라며 퇴진을 주장했다.

새누리당 ‘다수파 연합’의 핵심은 지역으로는 ‘PK·TK 동맹’, 세대로는 ‘5060 동맹’이었다. 그런데 이 다수파 연합의 양대 축이 눈에 띄게 흔들린다. PK가 지역동맹에서 이탈하는 기류가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5060 동맹도 위태롭다. 50대를 확고한 새누리당 지지 기반으로 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PK의 이탈은 2016년 총선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40곳 선거구에서 반(反)새누리당 계열 후보(더불어민주당·정의당·무소속)가 11곳을 이기며 대약진했다.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새누리당은 세 지역 평균 40.4%를 득표했다. 2012년 총선에서 50.8%를 얻은 데 비해 10%포인트가 빠졌다.

아래 〈표〉는 한국갤럽 매주 정례조사를 월 단위로 통합한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동안 국정 지지도 추이를 보여준다. 아래에서부터 전국 평균 지지도, 부산·울산·경남 지지도, 대구·경북 지지도다. 지지도 추이를 보면, 모든 달에 예외 없이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전국 평균’ 순서로 지지도가 높다. 그런데 부산·울산·경남의 지지도 추이는 상대적으로 전국 평균에 더 가깝게 움직인다.

 

여론 추이를 추적해온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산·울산·경남 젊은 층에서 새누리당 정당 일체감이 빠르게 옅어지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고령층이 정당 일체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전국 평균보다는 정권 지지 성향이 약간 높지만, 젊은 층이 버텨주지 않아서 TK(대구·경북)보다는 눈에 띄게 낮은 경향을 보인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세대동맹의 해체다. 5060 세대동맹은 새누리당이 2012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이 세대동맹의 위력은 한국의 노령화 추세로 더 주목받았다. 유권자의 인구 구성비에서 5060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는 데다가 이 세대는 투표율도 젊은 층보다 높다. 5060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이 앞으로도 다수파를 유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선 이후 적잖이 쏟아졌다.

하지만 세대 문제를 다룰 때는 두 가지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우선, 사람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이를 ‘연령효과’라고 부른다. 만일 모든 유권자가 이 연령효과에만 영향을 받는다면, 노령화는 곧 보수 정당의 장기 집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연령효과 외에도 ‘코호트(cohort) 효과’라는 변수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 세대’는 강한 반공 의식과 안보에 우선순위를 두는 정치관을 공유하는 코호트다. 코호트 효과는 그 세대 특유의 사고방식과 정치 성향을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하는 경향을 설명한다.

한국 유권자에 어떤 효과가 더 결정적인지는 정치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주제였다. 논문 ‘세대 균열의 구성 요소:코호트 효과와 연령효과’(이내영·정한울, 2013)는 패널 추적조사를 근거로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했다. 60대 이상에서는 연령효과가 주로 작동하지만, 50대에서는 연령효과와 코호트 효과가 동시에 작동한다는 가설이다. 즉, 현재의 50대는 나이 듦에 따라 보수화되는 궤적이 윗세대보다 느리다.

논문은 5년 단위로 세대를 쪼개어 2002년, 2007년, 2012년 대선 투표 성향 자료를 만들었다. 그 결과가 아래 〈표〉다. 각각 진보 후보 지지율에서 보수 후보 지지율을 뺀 것으로, 선이 위로 올라갈수록 진보 성향이 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7년 대선은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어서 모든 연령대가 다 보수로 쏠린 선거다.
 

 

 

 

 


수도권 중장년층 이탈이 새누리당에 결정타

1968~1977년생은 2017년 대선 해를 기준으로 40대에 해당한다. 2012년 대선(당시 35~44세)에서 이 세대는, 10년 전인 2002년(당시 25~34세)에 보여준 확고한 진보 지지 성향을 거의 회복했다. 2017년 기준으로 60대인 1948~1957년생의 궤적은 정반대다. 이 세대는 이명박 후보가 압승한 2007년보다도 2012년 대선 투표 성향이 더 보수적이다. 연령효과가 뚜렷이 작동했다.

가장 흥미로운 궤적은 1958~1967년생 그룹이 보여준다. 2017년 대선의 향방을 쥐었다는 50대가 이들이다. 이들은 2002년 대비 2012년 대선에서 보수화하기는 했다. 하지만 2007년의 쏠림에서는 빠져나와서 진보 쪽으로 이동했다. 윗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궤적이다. 이 세대에서는 연령효과와 코호트 효과가 동시에 있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50대를 쪼개보면, 50대 전반(1963~1967년생)의 유턴 현상이 더 뚜렷하다. 이들은 2012년 대선 때는 40대 후반으로, 1987년 민주화를 20대 시절에 경험한 세대다. 이 세대가 50대 전반으로 진입해 치러지는 선거가 2017년 대선인데, 특히 이들이 젊은 시절의 투표 성향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50대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꽤 있다. 2016년 총선 출구조사에서 50대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39.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총선의 51.5%와는 차이가 컸다. 이 현상이 새누리당이 당면한 문제의 핵심이다.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50대는 새누리 다수파 연합의 일원이 아니라 여야의 격전지가 된다.

이 양대 축이 흔들린 데 더해서, 당파성보다는 전략적 투표 선택 성향이 강한 수도권 중장년층의 이탈이 올해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결정타를 날렸다. 수도권 전략투표층은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한 2007년에 새누리 지지 블록에 결합했다가, 보수 집권 동안의 국정 결과물에 따라 가장 먼저 이탈했다.

이 구조적 위기로부터 아주 역설적인 구도가 등장했다. 새누리당이 수도권 참패로 내몰리면서, 총선 이후 당내 권력의 무게중심이 격전지인 수도권보다는 고정 텃밭인 영남권으로 쏠렸다. 친박계의 주도권은 극적으로 강화되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이 가장 큰 세력이 선거 이후 입지가 오히려 크게 넓어졌다. 강성 친박계인 이정현 당 대표 선출은 그 역설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연합뉴스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 대표회의실에서 자신의 사퇴와 비대위 구성을 촉구하는 원외당협위원장들을 면담하고 있다. 2016.11.15

 


기묘한 악순환이다. 다수파 연합이 흔들리면 아슬아슬한 지역구부터 피해를 본다. 전국 민심과는 동떨어진 ‘텃밭’ 출신 의원의 비중이 높아진다. 민심과 동떨어진 강경 드라이브나 패권주의가 등장할 가능성도 따라서 높아진다. 이에 민심은 실망하고, 다수파 연합은 더 흔들린다.

 

 

 


위기가 강경파 득세를 부르고, 강경파 득세가 위기를 부른다. 이 과정을 통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새누리당의 지반을 최순실 쇼크가 덮쳤다. 기초체력이 떨어진 새누리당은 일사불란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기보다는 자중지란으로 미끄러져가고 있다. 2012년 총선을 앞둔 당시 한나라당의 위기 국면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빠르게 당을 수습하고, 당시 주류였던 친이계가 큰 저항 없이 비주류 친박계에 주도권을 넘긴 장면과는 차이가 크다.

정치권 인사들은 두 가지 결정적인 차이를 지목한다. 첫째, 2012년 한나라당의 비주류는 박근혜라는 강력한 대선 주자를 갖고 있었다. 지금 비박계는 그게 없다. 구심점이 없으니 주도권을 가져오기도, 집단행동을 기획하기도 어렵다. 둘째, 2012년 한나라당 주류인 친이계에 비해, 2016년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계에 ‘신념형 정치인’이 더 많다. 민심에 대한 반응성이, 수도권 지역구가 대부분이던 당시 친이계보다 떨어진다. 이러면 위기 대응도 ‘결사 항전’ 쪽으로 흐르기 쉽다. 10월24일 청와대 문건이 담긴 ‘최순실 PC’ 최초 보도 이후, 새누리당은 단결도 분열도 불가능한 교착 상태다.

‘부패해도 유능하다’는 보수 신화 깨져

보통의 여론이 한국 보수에 대해 갖는 몇 가지 신화가 있는데 “좀 해먹을지언정 유능하다” “국가관이 투철하다” “경제는 보수가 잘한다” “안보는 보수다” “보수는 질서 있고 일사불란하다” 등이 대표적이다. 대체로 박정희 대통령에 우호적인 시민들이 이런 이미지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이 기초체력 떨어진 새누리당에 닥친 최순실 쇼크는, 보수 정당의 처지에서 보면 가장 곤란한 형태의 충격파였다.

‘유능’ 코드는 ‘무자격자에게 국정을 통째로 내맡긴 지독한 무능’으로 산산조각 났다. ‘국가관’ 코드는 ‘사적 인연을 국정으로 끌어들인 사사로움’ 앞에 힘을 잃는다. ‘경제’ 코드는 정부가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기금을 조성한 반(反)기업적 스캔들로 치명타를 맞았다. ‘안보’ 코드마저 위태롭다. 국방부의 대북 비밀접촉 보고 내용이 담긴 문서까지 최순실씨 손에 넘어갔다는 보도는 안보 이슈에 민감한 지지층을 당혹하게 했다. ‘일사불란’ 코드는 그야말로 웃음거리가 될 운명이다.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이 비선 실세의 의견을 참고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조종당한 것 아니냐는 스캔들은 보수적인 유권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권위와 안정감을 산산조각 낸다. 박정희 향수로부터 구축된 보수의 자부심이, 그 딸의 집권기에 파산 위기로 몰렸다.

대통령 지지도 5%는 지나치게 낮은 수치여서 오래 유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정층 35%’가 고스란히 복원될 가능성도 높지는 않다. 폭발적인 충격파와 장기적·구조적 뒤틀림이 동시에 찾아왔다. 새누리당의 숙제가 간단치 않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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