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은 자꾸 엉뚱한 길을 가리켰다. 지적도에 의존해 낯선 산길로 향했다. 해발 750m의 강원도 평창군 용평읍 도사리 산191 일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오솔길을 한참 올라간 후에야, 벌거벗은 산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6만여㎡ 경사지에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흙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현장 사무실은 굳게 잠겼고, 건물 인근에 버려진 2011년 달력만 세월을 가늠케 했다. 등기부등본에 기록되어 있는 이 황량한 땅의 주인은 바로 정유라씨다. 최순실씨가 2005년 매입한 곳이다. 이혼 전 정윤회씨와 최순실씨가 공동 소유했다가 정씨는 2011년 일부를 딸에게 넘겼다. 정유라씨는 2015년 12월8일 이 땅을 담보로 28만9200유로(약 3억6600만원)를 대출받았다.

인근 주민들은 이곳을 ‘도사리 말목장’으로 부르지만, 애초에 이 현장은 단순한 목장으로 설계된 게 아니었다. 〈시사IN〉이 입수한 ‘도사리  말목장’ 설계도(아래 그림)에 따르면, 이곳에는 ‘마장마술 승마장’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말을 기르는 마사는 말 46마리가 머물 수 있게 설계됐고, 약 2500㎡ 규모인 실내 마장과 약 600㎡ 규모인 실외 마장 등 총 7개 동을 만들 계획이었다. 관리사무실과 사료·퇴비용 건물도 따로 지을 계획이었다. 실내 마장은 가로 80m·세로 30m 규모로 지을 계획이었는데, 이 구조는 마장마술 경기가 펼쳐지는 국제규격(가로 60m·세로 20m) 승마장과 흡사하다. 외부인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점은 부대시설 계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말을 46마리나 사육할 수 있는데도, 주차 공간은 겨우 9대만 수용 가능하다. 숙박시설이나 식당·매점 등도 미비했다. 설계도면은 이곳의 애초 목적을 ‘말을 사육하고 관리하면서, 소수 인원을 위한 마장마술 대회 연습시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김동인정유라씨를 위한 마장마술 승마장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강원도 평창군 도사리 일대 땅. 정씨는 이 땅을 담보로 28만9200유로를 대출했다.

최순실씨가 보유한 평창 땅은 모두 두 곳이다. 2005년 매입한 도사리 승마장 외에도 인근 이목정리 일대 1만8713㎡를 2002년에 사들였다. 현재 시점으로 따져보면 두 곳 모두 동계올림픽 개발 호재를 누리지 못했다. 도사리와 이목정리 지역을 확인한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잘못된 정보로 샀거나, 아니면 그냥 가지고 있었던 땅 같다”라고 말했다. 장평리의 한 공인중개사도 “최순실씨가 매입했다는 땅은 모두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곳이라 (그곳을 구입했다는 언론 보도에) 좀 의아했다”라고 말했다.

승마장 계획부터 중단까지 3년이 걸렸다. 마사와 마장을 비롯한 기본 건축설계는 2009년 말에 이뤄졌다. 이때는 정윤회씨와 최순실씨의 자녀인 정유라씨(당시 정유연)가 본격적으로 승마를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당시 정유라씨는 선화예중에 재학 중이었는데, 성악에서 승마로 진로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마장 건축 설계자는 정수장학회 출신

승마장 공사가 중단된 데에는 기대했던 투자가치를 누리지 못한 점도 작용했다. 당시 승마장 설계에 참여했던 한 현장 관계자는 “2012년 초에 중단되었다. 그땐 정윤회씨와 최순실씨가 이혼 전이라 정씨를 주로 봤는데, 공사비가 15억원에서 20억원이 소요된다는 말을 하자 난색을 표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말대로 공사를 진두지휘한 이는 정윤회씨였다. 이 관계자는 “뉴스에 나오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빌딩(미승빌딩)에도 몇 번 찾아갔다. 최순실씨는 공사가 최종적으로 중단될 즈음에 한 번 만났다”라고 말했다.

정윤회·최순실씨가 딸을 위한 승마장을 지으려다 공사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중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평창 땅에는 몇 가지 다른 의혹이 뒤따른다. 애초에 승마장을 위해 구입한 땅이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구해둔 땅을 승마장으로 전환하려다 접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한 관계자는 “김진선 조직위원장한테 잘못된 투자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때문에 김 위원장이 낙마했다는 말도 돌았다”라고 말했다. 김진선 전 위원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최순실과는 일면식이 없다. 퇴임 당시 남긴 퇴임사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진선 위원장의 후임인 조양호 위원장한테도 이 땅의 불씨가 튀었다”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최순실씨가 이 땅을 조양호 위원장에게 매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조 위원장의 낙마에 그런 점도 작용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최순실·정윤회씨가 2009년부터 2012년에 걸쳐 강원도 평창군 용평읍 도사리에 지으려 했던 승마장 설계도.


평창 승마장 개발과 관련해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이 있다. 〈시사IN〉 취재 결과, 승마장 건축설계를 담당했던 S건축사사무소 대표 이 아무개 소장이 정수장학회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상청회’의 간부를 지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32년간 이사장을 맡은 ‘한국문화재단’에서도 6년간 감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박 대통령은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신당을 창당할 당시, 이곳에서 탈당 선언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문화재단은 정수장학회 출신 인사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한 창구 구실을 했다. 박 대통령의 ‘5인 스터디 모임’ 일원이자 ‘숨은 조력자’로 유명한 최외출 전 영남대 부총장이 이 재단의 이사로 참여했고,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후임인 김삼천 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감사를 맡기도 했다. 평창 승마장이 무산된 직후 이 아무개 소장은 2012년, 본인 소유의 S건축사사무소를 폐업했다. 이듬해 2013년 9월, 국토교통부는 이 소장을 제12기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는 또 한 대형 부동산신탁회사에도 2014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사외이사와 감사로 이름을 올렸다. 〈시사IN〉은 이 소장에게 설계 수주와 공사 진행 과정을 묻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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